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대함에 있어 소돔 성 사람들과 전혀 달랐던 니느웨 사람들의 태도
믿음 찬양 — 진정한 믿음 가져야 하나님의 칭찬 받네

1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여호와가 베풀어 주신 물이
솟아 나온 것은
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다윗이 기쁨에 넘쳐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한 것도
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욥이 온 산에 가득했던 우양과
많은 재산 잃고
온몸이 종기로 뒤덮인 것도
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욥이 여호와의 음성 듣고
영광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2
베드로가 예수를 따르고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스런 증거 한 것은
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요한이 인자의 영광스런 모습과
말세의 환상을 본 것도
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이방 백성들’이 계시받아
하나님이 육신으로 돌아와
사역하고 계심을 안 것도
역시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하나님 말씀에 매를 맞으며
위로받고 구원받은 사람도
모두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믿음으로 인한 것이네
매일 성경 _ 요한복음 20:29

과거 이 말씀을 볼 때는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어떤 글을 보게 되면서 도마는 한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경계(警戒)와 권고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먼저 말씀을 공유합니다. 『도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의심하는 유형을 대표한다. 그들은 의심이 많고 음흉하고 간교하여 하나님이 이룰 수 있는 일들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믿지 않고,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로 그들의 의심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의심 많고 간교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나아가 예수의 존재와 부활을 진실로 믿도록 기회를 주었다. 도마의 사건은 후세 사람들에게 의심 많은 자는 어둠 속에 빠지게 되니 도마와 같은 자가 되지 말라고 준 경고이자 메시지이다. 만약 너희가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도마처럼 주의 옆구리를 만져 보고 못 자국을 느껴 봄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늠한다면 하나님은 너희를 떠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에게 도마처럼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는 그런 자가 되지 말고 순수하고 정직한 자가 되라고 요구했으며,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오로지 믿고 따르는 자는 복되다고 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예수의 아주 작은 요구이고,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주는 교훈이다.』
확장 열람:믿음 찬양 — 진정한 믿음 가져야 하나님의 칭찬 받네
이 말씀을 보면서 도마와 같은 사람들이 실패한 원인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너무 간사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말만 들어서는 믿을 수 없고, 증거가 있어야 믿을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 믿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간사함 때문에 결국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 아니라면 전부 가짜 예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어도 전혀 믿지 않으며,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을 직접 보아야 믿을 수 있다며 자기 생각만을 고집합니다. 이런 사람의 생각은 도마가 가졌던 관점과 같지 않은가요?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기 생각과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큰 시류를 따라 지켜보기만 하면서 참도에 대해 알아보고 구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주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없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한복음 20:2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말세 사람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한 사람들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될 것입니다.
출처:하나님의 약속
요한복음 20장 29절을 통한 성찰: ‘주님을 보고 믿은 의심 많은 도마의 믿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지금은 말세 중에서도 마지막인 만큼 주님을 맞이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하루속히 구름 타고 오시길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더 간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재앙은 임박했지만 주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성경에 기록된 도마의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일하실 때, 도마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늘 의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도마는 자기가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도마는 예수님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도마의 사례는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경고성 메시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꼭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한다면, 도마와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태도로 임한다면 환난 전에 들림 받게 되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맞이하려면 도마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그런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할 때, 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요 20:25) 사실, 도마는 예수님을 따르던 시절에도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매우 깊이가 있고 유익할지라도 도마는 주님의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그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인지에 대해 구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주님을 오래 따랐지만 예수님의 참된 신분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늘 주님의 신분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도마가 믿음에서 실패한 근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활하실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주님이 부활했다고 말했을 때, 도마는 그 말을 믿지 않고 꼭 부활하신 영체가 자기 앞에 나타나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자기 눈으로 영체를 확인하고, 주님의 못 자국을 만지고서야 부활하신 사실을 믿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놓친 후였습니다.
주님을 맞이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도 도마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성육신으로 오셨다는 증언을 들어도 절대 믿지 않으며, 먼저 하나님의 음성이 맞는지 알아보지도 않습니다. 구름 타고 오시는 이가 아니면 절대 주님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고집하며, 부활하신 영의 모습으로 오셔야만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원인으로 아직까지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구름 타고 오신다는 예언을 붙들고 기다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에 관한 성경 구절에는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뿐 아니라 은밀히 성육신으로 오신다는 예언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계 16:15)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 17:24~25)등의 구절입니다. 여기에서 ‘인자’라고 함은 사람을 통해 태어난 정상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만일 영이나 부활하신 영체의 모습으로 구름 타고 오신다면 ‘인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예언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 환난 전에 성육신으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오심을 뜻합니다. 우리의 상상처럼 부활하신 그 영체로 구름 타고 오신다면, 주께서 은밀하게 임하신다는 예언은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과거 도마가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다는 예언을 믿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주께서 은밀하게 오신다는 예언이 성취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될까요? 도마처럼 실패의 길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이를 통해 주께서 재림하시면 그의 음성, 곧 말씀으로 우리를 향해 문을 두드리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도마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직 구름 타고 오시는 모습을 눈으로 봐야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이 육신으로 오셨다고 증언한다면 먼저 적극적으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들 때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맞이한 것이고, 주와 함께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요한도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보고, 그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으며, 마침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은밀히 오셔서 거하시는 동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오직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눈으로 봐야만 믿겠다면서 도마처럼 행동한다면, 정말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보게 될 때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이처럼 주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광경을 눈으로 보게 될 때는 모든 족속이 애곡하는 때입니다. 주님을 뵈올 때는 온 땅이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여기에서 모든 족속이 애곡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지막 때에 주님은 환난 전에 성육신으로 은밀히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알아본 후, 받아들이는 자는 슬기로운 처녀이고 들림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온 사람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하심과 정결케 하심을 통해 이기는 자로 만들어질 때,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은밀히 하는 사역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 뒤에 하나님은 대재앙을 내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는 일을 하십니다. 그때는 각 사람의 결말이 정해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환난 전에 이기는 자로 만들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남겠지만 구름 타고 오시기만 바라며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한 사람들과 나아가 말세에 오신 그리스도를 정죄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버림받고 내쳐지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징벌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환난 후 열방에게 나타나실 때, 그들은 말세에 오신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주님이심을 보게 되면서 슬피 울며 애곡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께서 구름 타고 오신다는 예언, 즉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라는 말씀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왜 땅위의 모든 족속이 다 애곡할까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만 공개적으로 주의 재림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성육신으로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진리를 선포하시어 말세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고, 환난 전에 이기는 자들을 만들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곧 계시록에 예언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온라인상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주님이 모든 사람을 향해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귀를 닫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도마처럼 꼭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환난 전에 주님이 은밀히 오셔서 하시는 구원 사역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나타날 때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때이므로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권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분명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지옥의 자손, 천사장의 후손,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르는, 이른바 성도라고 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될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을 믿고,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교만하며 자신을 과신하는데, 그런 인간 말종들이 어찌 예수에게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우리가 환난 전에 육신으로 은밀히 오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오직 구름 타고 오시는 하나님만 기다리다 화를 입는 사람이 될 것인지, 구름 타고 오시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주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하시어 하시는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회개 말씀]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구조(救助)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타락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예비한 것입니다. 그 구원에는 진리, 길, 생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알지 못한다면 구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1.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구원
율법시대에 있었던 인류는 초태생의 인류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 간음하지 말라는 것,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 나아가 제사 드리는 규례, 음식물에 관한 규례, 도적질 배상에 관한 규례, 가축을 잡는 것에 관한 규례 등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정확한 준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범하게 되면 벌을 받아야 했지만, 죄를 대신할 제사를 드리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명과 율법으로 사람을 단속하셨고,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계명과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율법시대의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2.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구원
율법시대 후기에, 점점 심하게 타락한 인류는 율법과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많은 일들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상 숭배, 음행, 악한 생각, 간교함과 거짓말 도적질과 강도, 횡령과 뇌물 수수 등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절름발이 우양과 눈먼 비둘기 등으로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예레미야 14:10)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곧 성육신하신 인자로 오셔서 인류를 위해 다시 한 번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곳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 내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며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온전히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은혜시대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주의 이름으로 회개의 기도를 하면, 죄 사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는 율법을 거슬러 정죄받고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의 사람에게 예비해 주신 구원입니다.
3.말세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구원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베드로전서 1:13)
어느 서적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패괴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말씀,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해야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다.』(<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예수님이 구속을 완성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사람의 죄의 뿌리는 아직 뽑히지 않아 패괴 성품이 여전히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만함, 스스로를 크다함, 이기적, 비열함, 간교함, 개인 이익주의 등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패괴 성품 때문에 우리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친구 간에도 서로 시기 질투하고, 경쟁하고 의심하고, 배신합니다. 나아가 가족, 친족 사이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정도입니다. 또 질병의 고통이나 재앙의 시련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또 열심히 헌신하며 사역하고 많은 힘을 바쳤음에도 바라던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불만불평이 터집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며, 낮에는 죄를 짓고 저녁이면 죄를 자복하는 삶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 하나님의 나라에는 더러운 사람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층 더 깊은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패괴된 성품이 정결함을 받으므로 완전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이처럼 하나님은 말세에 주님이 돌아와 심판하는 사역을 하나 더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모든 비밀을 열어 주시며, 우리의 모든 패괴함을 벗겨 버려 더는 낮이면 죄를 짓고 밤이면 죄를 자복하는 악순환에서 살지 않도록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예비하신 구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온전한 구원을 얻으려면, 누군가 하나님의 재림을 전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증언할 때, 마땅히 가난하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과거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람들도 메시야가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적극적으로 찾고 구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고 주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있을 주의 재림에 대해서도 우리는 과거의 사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을 얻을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 3장 2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추천 내용
십계명에 관한 성경 구절 ― 10 계명의 중요성
<
div style=”line-height:200%;margin-bottom:0;”>
하나님이 정하신 십계명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계명을 통해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준칙을 알게 됩니다. 십계명 내용을 읽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요구를 깨닫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갑시다.
연이은 재난은 주의 재림 징조입니다. 예수님 재림을 맞이할 방법은?
지금 보면, 갈수록 큰 재난이 닥치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미 중국을 넘어 전 세계 20여 개 국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감염자 수는 37,567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813명으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사망 인원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9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5900개 이상의 건축물(2204 가구 포함)이 불에 탔으며, 33명이 사망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0억 마리에 이르는 야생 동물이 죽었고, 산불은 아직도 진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월 18일 ‘100년’ 만에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지역은 정전으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고 있으며, 많은 담수 생물이 죽었습니다. 2020년 1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홍수로 수만 명이 집을 잃었고 사망자도 60명에 이릅니다. 이처럼 연이은 재난과 달이 핏빛 같이 변하는 네 번의 현상을 보면서 주 안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뤄졌는데, 혹시 주님이 오신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직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어디 가서 주님의 자취를 찾아야 하는가?’

확장열람: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이런 주제에 관해 우리는 말세에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께서 구름을 타고 가셨으니 오실 때도 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시록 1:7),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아직도 주께서 구름타고 오시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은밀한 재림입니다. 즉,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시록 16:1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누가복음 17:24~25)
이런 구절을 살펴보면 “도적 같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등의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말세에 주께서 재림하실 때, 조용하게 은밀히 오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자”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는 말세에 성육신하신 인자의 모습으로 은밀이 오심을 말합니다. 인자라 함은 사람을 통해 태어남을 말합니다. 부모가 있고 피와 살이 있는 몸으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는 구절도 말세에 주께서 인자의 모습으로 오심을 말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평범하고 범상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심지어 정죄하고 배척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또 많은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예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여 사역하실 때, 많은 사람이 그가 메시야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관념과 생각에 따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과 같습니다. 만일 말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모습인 영체로 오셔서 사역하시면 누가 감히 그를 인간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저버리겠습니까? 모두 땅에 엎드릴 것이니 하나님도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로써 말세에 주님은 성육신으로 은밀히 임하여 사역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마 말세에 주께서 은밀히 임하여 사역하시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겠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하나님의 예언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계획적이고 순차적으로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밀히 임하여 인류의 구원사역을 하신 다음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한복음 5:22) 이런 구절을 통해 말세에 하나님은 성육신으로 은밀히 오셔서 인류를 향해 말씀을 선포하시고, 심판하는 사역으로 그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속 사역의 기초에서 하시는 것으로, 인간의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하신 사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으로 죄는 속량받았지만 교만함, 간사함, 이기적 악독함 등의 사탄의 본성은 완전히 해결받지 못해 계속 죄를 범하고 다시 죄를 자복하는 상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세에 다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 사역으로 정결함을 받고 환난 전에 이긴 자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은밀하게 사역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지 않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거부하고 계속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정죄한 사람들은 말세 사역에서 드러난 가라지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통해 모든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착한 종과 악한 종, 진리를 사랑하는 자와 진리를 싫어하는 자를 나눈 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다음 주님은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열방에 보이시며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십니다. 그때면 성육신으로 재림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본인이 대적하고 내쳤던 분이 재림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면서 크게 후회하고 가슴 치며 이를 갈고 슬피 울 것입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예언이 온전히 이뤄지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시록 1: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밀히 오셔서 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통해 정결함을 받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주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성경 몇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이 구절에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는 내용은 주께서 말세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 주의 재림을 증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또한 주님은 그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맞이하시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유의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라고 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증언을 들으면 더더욱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 보고 하나님이 나타나 하시는 사역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듣는다면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간 것이자 주님의 재림을 맞이한 것이 됩니다.
- 추천 내용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그의 놀라우신 역사를 경험하고 축복받은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바로 왕의 제한과 통제를 이기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기꺼이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여 그의 자손이 큰 나라로 되게 하셨습니다. 욥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두 차례의 시험 앞에서도 굳게 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곱절로 받게 됐고,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주님이 자기 딸에게 들어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께 간구했고, 결국 믿음으로 말미암아 딸의 병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실한 믿음에 관한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야 직장에서 손해를 보거나 현실 생활에서 좌절을 당하거나 가정에서 힘든 상황을 겪게 되는 등, 많은 어려움과 연단을 겪어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으며, 굳세게 서서 참된 간증을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확장열람: 욥기 설교 —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 3가지 모습
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누군가는 ‘믿음’이라는 주제를 보면 매우 자신 있게 ‘나는 하나님을 100%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다.’ 또는 ‘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는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으니 주님께 회개하면 주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도 주를 향한 믿음이 아니겠는가?’ 혹은 ‘주님을 믿는 동안 나는 직장도, 가정도, 사업도 뒤로한 채 주의 일에 매진했다. 곳곳을 다니며 교회를 세웠고, 많은 고난을 받아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것도 주를 향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라는 등등의 말을 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는 신념은 진실합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주의 일을 위해 헌신하고 고난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그러한 것들이 과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실한 믿음을 상징할까요? 이 문제는 신실한 믿음과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토론하고 나눌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후, 예배는 물론, 전도 활동과 심방을 다니는 사역에 적극적이었고, 많은 고생이 따라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꺼이 육의 낙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저만큼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충성된 사람이며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과 가족이 아플 때, 아무리 기도를 해도 호전되지 않자 저는 낙담하고 실망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하나님께 왜 제 가족을 지켜 주지 않으시냐고 불평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제게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없음을 보게 됐습니다. 저의 믿음은 단지 가족이 평안하고, 몸이 무탈한 상황이 유지되는 조건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치 않는 상황이 닥치면 진정한 믿음의 분량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향한 제 믿음은 가여울 정도로 작고 자랑할 것이 못됨을 알게 됐습니다. 주변의 형제자매들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 행사나 회사의 일이 예배 시간과 충돌이 생길 때면, 자기 이익을 위해 예배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취직의 문제나 여러 가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면, 처음에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취직을 못하거나 상황이 잘 풀리지 않으면 주님을 원망하며 크게 실망감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고는 주변의 힘 있는 지인을 찾아 가거나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의 축복이 있을 때는 교회 일에 몹시 적극적이다가 집 안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거나 사업이 실패하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삶과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사실의 검증 앞에서 굳게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이 참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심을 인정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인정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상징하지 않으며,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이익을 취하는 기초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참되지 못합니다. 그럼 진실한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어떤 모습들이 진실한 믿음을 상징할까요?
진실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언제나 생명을 추구하고 너에게서 하나님의 사역이 행해지기를 추구하고, 또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알고 진리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네가 연단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 대해 의심이 생기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계속 진리를 실행하여 그를 만족게 하고, 깊은 곳에서 그의 뜻을 구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
이로써, 진실한 믿음이란 고난이나 연단, 좌절과 실패를 당하고 또는 몸과 마음이 큰 고통을 당하는 등 어떤 상황에 처해도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욥의 체험을 함께 살펴봅시다. 그럼, 진실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삭이 조금 자랐을 때, 하나님은 그 아이를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많은 사람의 생각과 잘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런 시험이 닥친다면, 무조건 하나님과 따지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선택은 모든 이의 예상을 빗겨 나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진심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려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세기 22:3, 9~10)
인간은 육에 속한 존재라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기면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프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따랐습니다. 그가 그렇게 이성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들 이삭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돌려 달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당연하다는 듯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며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더라도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진실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말리셨고, 그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크게 성하게 하여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2. 욥의 믿음
성경을 보면, 욥은 큰 부자였고 십여 명의 자녀와 많은 시종을 두었으며,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험과 공격으로,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었고 몸에 악창까지 났습니다. 이러한 시험으로 욥은 동방의 가장 큰 자에서 일전 한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였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비난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욥은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도리어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욥은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찾고 구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욥은 만사가 하나님께 달렸으니 자신에게 닥친 일도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욥은 수십 년의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소유한 모든 재산도 자기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다시 취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요건을 따지거나 불평하지 말며, 설령 자기 목숨을 취하신다고 할지라도 절대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욥의 간증 앞에서 사탄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고, 욥에게 곱절로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욥의 사례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갖추려면,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사를 주관하심을 믿으며, 피조물의 자리에 서고, 피조물로서의 이성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어떤 큰 시련이나 환란이 닥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 편에 서서 흔들림 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한 믿음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어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무신론 정권인 중국 정부의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가혹한 고문과 중형에 처해져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도 진실한 믿음을 갖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 가족이나 친구에게 버림받고, 혹은 여러 가지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따라가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진실한 믿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비춰 볼 때, 우리 자신은 과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까요? 대부분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100% 인정하는 믿음, 주님을 위해 전도하면서 고난을 조금 받고 정도의 믿음만 있을 뿐, 진실한 믿음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생기는가
그러므로, 진실한 믿음을 갖추려면 매일 마주하게 되는 사람이나 일 속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자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이 마련하신 상황이 아무리 내 뜻에 맞지 않고, 내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나아가 그런 환경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고심을 알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겪어 나가면 우리는 늘 얻는 것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도 진실한 믿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욥의 믿음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주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을 때, 조금씩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을 본받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려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어떤 고난이나 시험이 닥쳐와도, 우리의 육체나 마음이 몹시 괴로운 일을 당해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이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하나님의 주재와 섭리에 순종하며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님의 약속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0)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지 감추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의도적으로 어느 누군가를 피한 적도 없고, 스스로를 숨긴 적도 없다. 도리어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공개되어 있고, 숨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마주한다. 또한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 행해진다. 그는 이런 사역들을 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고,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인도하며 공급하고 있다. 좋은 환경이든 열악한 환경이든, 각 시대와 각 단계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다. 그의 생명이 쉼 없이 사람에게 공급되고 사람을 붙들어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은 감추어져 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살고 있고 하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이해해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자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면 바로 그의 결말이 임박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성품에 의해 심판받고 정죄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의식적인 협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 자기 마음속으로 상상한 하나님과 관념 속의 하나님,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만 믿는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또한 그에게 등을 돌리고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기 좋게 꾸미고 포장한다. 이러면서 자신의 믿음이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자신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 자신은 이들과 무관하며, 이들을 인도하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관념과 상상,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 내린 규정들이다. 일단 이들이 참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이들의 행위와 믿음과 추구하는 것이 정죄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깨닫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하며 기도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차라리 하나님이 허구적이고 공허하며 막연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차라리 하나님이 그들이 상상한 바와 똑같아서 그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끝없이 채워 줄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을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도록 하고, 축복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축복을 내리도록 하며, 역경이 닥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담대함을 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도록 말이다.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은혜와 축복의 범위에만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역시 상상과 글귀상의 말에만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또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 자신을 분명히 보고 싶어 하며, 하나님의 성품, 소유와 어떠함을 확실히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정복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바란다. 이 사람들은 심혈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마련해 준 환경과 하나님이 배정한 사람과 일, 사물들을 체험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구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본질을 가장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체험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참된 일면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확실히 거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생겨 그들이 더 이상 상상과 관념 속에서, 막연한 상태에서 살지 않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사람의 체험 과정에서 언제든 필요하고, 사람에게 평생토록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더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두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보이는 태도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싶고 하나님 자신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고 싶고 하나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차라리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패권을 다투고, 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심지어 부인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참된 하나님 자신이 자신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상상과 야심을 충족시키길 원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집과 생업까지 버릴지라도 악행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저지른다. 심지어 제물을 훔쳐 먹는 자들, 제물을 함부로 쓰는 자들도 있다. 또 어떤 자들은 뒤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어떤 자들은 지위를 이용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며 사람이나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여러 가지 방식과 수단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사람을 통제할 생각만 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고의로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대하게 한다. 이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저는 패괴된 사람입니다. 저 역시 패괴되어 교만하니 저를 우러러보지 마세요. 제가 일을 잘했다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이 저를 높여 주셨기 때문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무척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인 적도, 증거한 적도 없다. 그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껏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이라는 주제에 나오는 단어들은 간단해 보이지만 각자가 받는 의미는 서로 다른 것이다. 걸핏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죄일 것이고, 진리와 실제를 추구하고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기에 너희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멍해지면서 반발심이 잔뜩 생겨난다. 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주제라고 느낀다. 그 이유는 이는 그들에게 무척 유익한 주제로, 그의 생명 체험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자, 핵심 중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믿는 근간이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 주제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새겨듣고,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네가 이 주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취급하며, 어떻게 깨닫든지 간에 결코 이 주제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출처: 하나님의 약속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나요
3.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인지 가늠하는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