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비밀] 열 처녀의 비유 —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될 수 있는가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은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 마지막 때에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슬기로운 처녀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는 우리가 재림 주를 맞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글을 통해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와 함께 잔치에 들어가는 길을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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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 예언]계시록에 “더하지 말라”의 참뜻을 알고 주님을 맞이하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 한다면 우선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너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도 말라.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종하겠는가를 요구해야 한다. 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바이다. 사람은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는 것이다.』<하나님의 발자취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하나님 말씀 찬양을 흥얼거릴 때마다, 저는 늘 계시록의 더하지도, 제하여 버려도 안 된다는 성경 구절에 대한 그릇된 해석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해 하마터면 말세의 구원을 놓칠 뻔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책과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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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영광으로 오시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신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은밀하게 성육신하여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까?

문제: 주님의 약속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근데 당신들은 주님이 성육신하셔서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주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는데 주님이 성육신하셔서 은밀히 오셨다고 증거하는 것과 왜 다릅니까?

답: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신다는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주님은 신실하시기에 주의 약속은 어김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건 주께서 성육신으로 다시 오셔서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는데 이건 어떻게 들림받아 천국으로 들어가느냐와 관련됩니다. 성경을 자세히 찾아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주께서 성육신으로 다시 오신다는 명확한 예언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눅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눅 17:24~25) 이런 예언에 ‘인자가 오리라’ ‘인자의 강림’을 언급했는데 ‘인자’라 함은 사람에게서 태어나고,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만약 영이라면 ‘인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영이시니 ‘인자’라 칭할 수 없는 것처럼 천사를 본 사람도 있지만 천사도 영이니 ‘인자’라 칭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형상은 있지만 영체에 속한다면 ‘인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인자, 그리스도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으시고 평범한 정상 사람으로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인자가 오리라’ ‘인자의 강림’은 다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성육신으로 오시는 걸 말합니다. 특히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고 하신 것은 주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더욱 증명합니다. 만약 성육신이 아닌 영체로 나타나신다면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림받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틀림없이 성육신으로 다시 오시고 또한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실까요?”라고 묻습니다. 사실, 주님이 하시는 심판 사역은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고 성도들을 맞이하는 사역입니다. 주님께서 왜 말세에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말세에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제일 많은데 적어도 200곳이 넘고 주께서 성육신하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구절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사 2:4)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시 98:9)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계 14:7)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행 17:31)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요 5:27)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2)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벧전 4:17) 등등 이런 구절에서 분명하게 보다시피 하나님은 말세에 반드시 성육신으로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하셔서 말씀을 발표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구원하십니다. 다시 오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슬기로운 처녀로서 주님과 함께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또한 주님의 예언이 응한 겁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이런 슬기로운 처녀들은 주의 음성을 듣고 나와 영접해 자신도 모르게 보좌 앞으로 들림받아 주를 뵙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정결케 함, 온전케 함을 받아들여 최종에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서 타락 성정이 정결케 되고 하나님께 이긴 자로 온전케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주님의 약속을 받으려면 반드시 말세의 그리스도, 하나님 앞으로 와서 말세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체험해서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결코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가져온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말세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혐오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말세에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문이므로 아무도 피해갈 수 없으며, 아무도 그리스도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가 없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말씀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바로 천국의 대문이십니다.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하시는 심판 사역을 체험하지 않고 정결케 되거나 온전케 되지 못하면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신 권세입니다. 이건 주께서 다시 오실 때 반드시 성육신하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걸 증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사실입니다. 말세 역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건 사람의 상상일 뿐이지 절대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영광으로 오시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신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은밀하게 성육신하여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까
주님은 영광으로 오시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신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은밀하게 성육신하여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까?

어떤 분들은 “만약 주님께서 정말 성육신으로 오신다면 성경 곳곳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 각 사람이 보리라고 예언한 건 또 어떻게 해석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 주께서 구름 타고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신다는 예언들을 말씀하셨는데 이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주께서 은밀히 오신다는 예언은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계 16:15)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4)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2) 보시다시피 주님의 재림은 두 가지 방식인데 하나는 은밀하게, 또 하나는 공개적으로 임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말세에 성육신으로 은밀하게 강림하여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긴 자들을 만드신 후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이 끝나고 큰 재난이 내리고 하나님께서 상선벌악하시며 재난 뒤에 주님께서 구름 타고 만국 만민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십니다. 오늘 저희가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증거하는 건 주님이 은밀하게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성육신 하나님이 세상에 오시면 모습은 평범한 정상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있어 은밀한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참된 신분을 모르다가 인자께서 사역하시고 말씀하신 후, 그분의 음성을 분별하는 사람만이 그분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분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분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며 부인하고 거절할 겁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사역하실 때 겉모습을 보면 평범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통해 그분이 그리스도이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봤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은밀하게 사역하셔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단계인데 말씀을 발표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십니다. 이때는 주님이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이긴 자들을 만드신 후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이 끝나고 큰 재난이 내리고 하나님께서 상선벌악하시며 그 뒤에 만국 만민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때면 주님이 공개적으로 임하시는 예언이 응합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 24:3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계 1:7) 주께서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신다면 이치대로는 사람들이 다 기뻐해야 하는데 그럼 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해 애곡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은밀하게 오셔서 하신 구원 사역이 이미 끝나 상선벌악의 사역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을 거절한 사람들은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잃는 것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 즉 말세의 그리스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대적한 하나님이 바로 재림 예수이심을 보고 어찌 가슴 치며 통곡하고 이를 갈며 애곡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면 “모든 족속이 애곡”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많은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않겠지만, 나는 그래도 예수를 따르는 소위 각 성도에게 알리겠다. 너희가 육안으로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직접 볼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 너의 마음은 몹시 격동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는가,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볼 때는 네가 지옥으로 내려가 징벌을 받는 때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끝났음을 선고하는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는 때라는 것을. 왜냐하면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에 오직 진리만 발표되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조물주의 품속에 안기게 되었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그 사람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예수만 믿으면서 엄한 심판을 발표하고 생명의 참 도를 베푸는 예수는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다시 올 때에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된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방자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말세에 성육신하셔서 하신 은밀한 사역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며, 또한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 중에서 사람을 온전케 하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고,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을 받아들여 온전케 된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가장 복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하나님이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시는 이 사역을 놓친다면 최후엔 이를 갈며 애곡하고 슬피 울며 후회할 것입니다.

영화 대본 <경건의 비밀>에서 발췌

주님은 영광으로 오시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신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은밀하게 성육신하여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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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큐티]왜 그리스도를 진리, 길, 생명이라고 할까요?

문제:그리스도가 곧 진리, 길, 생명이고 이것은 성령의 증거이니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적 위인이나 예수님의 사도들이 한 말은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이 발표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만약 그들이 발표한 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들은 진리, 길, 생명일까요? 제가 보기엔 그들이 한 말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고 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하는데 왜 그들은 진리, 길, 생명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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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성경말씀]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아마 다들 성경에 적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다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곧 강림하실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한복음 4:7~10, 13~26, 28~29)

[오늘의 좋은 성경말씀]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오늘의 좋은 성경말씀]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위의 성경 내용을 통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린 이유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다

처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방비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상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몇 마디 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비범하다고 생각했고 그 후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고 일반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금의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속사정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일일 뿐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와 전혀 만난 적 없었던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문에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으며 예수님에게 어디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냐며, 산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 이렇게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한 마디가 여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실천의 길도 알려 주시어 하나님께 경배할 때 표면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는 말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은 크게 기뻐하며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동네로 달려가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짧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은 즉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속사정도 드러내시며 자신의 타락함도 드러내시고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와 곤혹도 해결해 주셔서 명확한 실천의 길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1.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구하다

사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의 멸시를 받아왔고 이들은 서로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예상 밖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과의 대화를 거절하지 않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는 말씀을 듣자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내려놓고 예수님에게 영생의 물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차마 말을 못하는 속사정을 예수님께서 밝히셨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그 문제를 언급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과의 대화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곤혹을 해결해 주시고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깨닫고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진리를 구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말세이고 바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의 장점을 본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그리고 계시록에도 여러 곳에 예언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 3장) 여기서 우리는 말세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음성을 발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리를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길 바라십니다. 그래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이 재림하시어 음성을 발하신다고 증거하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을 본받아 그 말에 권능과 능력이 있는지 들어 보고 아무도 모르는 우리 마음속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지, 우리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실천의 길을 알려줄 수 있는지 들어 봐야 합니다. 마음과 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발하시는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1. 겸손한 사람이 되어 능동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겸손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자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다수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00년에 주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지만 이미 2019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한 것일까요?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예언은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는 모두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재림하시어 어딘가에서 사역을 하고 계시진 않을까요? 우리가 능동적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만약 우리가 겸손하게 구하고 주님께 자주 기도드리며 먼저 주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이끌어 주시어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나타나심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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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주님을 믿었고, 9살에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지역 지방 교회의 책임자이셨고, 예배 드리러 갈 때마다 늘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또 아동부 예배도 데려가고 가끔은 이모와 삼촌들과 함께 주일 성찬식에도 참석하였습니다. 집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늘 성경을 읽어 주거나 기도해 주었습니다. 차츰 저는 예수님이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친히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로 인해 주님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예수님의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었지만 저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학업이 갈수록 많아져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와 교내 활동에 참가하는 데 소모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밖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헛된 시간을 보내면서, 정작 성경을 읽거나 기도는 전혀 없이 이방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시절 저의 마음속엔 늘 뭔가 부족한 듯한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2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반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을 믿고 침례도 받았으니 이미 크리스천인데 정상적인 교회 생활도 없고, 일에 부닥쳐도 주님께 기도도 하지 않고 본인의 생활에 바쁘게 보내며 모든 시간을 개인의 취미와 생활에 헛되이 보냈어. 이러고도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괴로운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길을 열어 주세요.’ 우연한 기회에 외삼촌의 소개로 학교 부근에 있는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얼마 후, 제가 교회 생활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서 떠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방인 여자 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하루 종일 여자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육은 점점 방종하고 공부는 물론, 성경을 보거나 예배드릴 마음조차도 전혀 없었습니다. 설령 예배하러 가도 늘 형식일 뿐이였고 몸은 그곳에 있지만 마음은 여자 친구한테 가 있었습니다. 그때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연애할 때 적당한 선을 지켜야지 연애 때문에 주님을 멀리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지만 마음에는 온통 여자 친구로 가득 차 그분들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마음이 맞지 않아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늘 실연의 고통 속에 빠져 여자 친구와 함께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전에 먹고 마시고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보내느라 교회 생활을 포기하고 성경을 보지도 않고 주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던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다시 교회로 돌아왔지만, 연애로 마음이 방탕해져 주님을 멀리한 죄책감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자신의 이런 행실이 주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할뿐더러 주님의 노여움을 사고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울 때마다 주님께 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저는 진정 죄인입니다. 비록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고 저 같은 사람은 크리스천으로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지만 잠시의 위안만 얻었을 뿐, 마음을 온전히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 상태를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변화의 길은 찾을 수 없었고, 이런 것들은 저를 몹시 괴롭게 했습니다. 주변에 믿음이 좋은 형제자매님과 장로, 사역자에게도 물었지만 실행의 길을 가르쳐 주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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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교회에서 형제자매님이 누구누구는 ‘이긴 자’ 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에서는 듣기 좋은 말만하고 주님을 엄청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행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맞지 않았습니다. 교제할 때에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암암리엔 암투를 벌이고, 명예를 다투는데 어떻게 이긴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또 저의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교회의 사역자지만 역시 죄에서 살고 있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형제자매들 앞에서는 아주 유순하고, 친절하고, 인내심 있고, 굳셉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저와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바로 혈기를 내면서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는 그렇게 유순하고 인내심이 있으면서 왜 집에 오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건가요?” 하지만 어머니도 저의 물음에 답해 주지 못하고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너는 몰라, 말씀대로 행하기란 정말 너무 어렵단다.” 제 주변의 어느 형제자매님이나 목사와 장로도 사탄을 이기고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야 사탄을 이기고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진정한 의의에 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때에 늘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언제쯤이면 죄에서 벗어나 더는 죄를 짓지 않을까요? 주님, 저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세요.’

2018년 3월 말,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 양왕 자매님을 만났고 자매님의 홈페이지를 보고 그녀 역시 크리스천임을 알고 서로 친구를 맺었습니다. 대화에서 자매님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나눈 것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양왕 자매님이 저에게 자신의 사촌 오빠가 설교자인데 설교하는 것이 빛이 있다며 들어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사랑의 교회 사역자와 주변의 형제자매들 중 저의 곤혹을 해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저는 흔쾌히 더 좋은 빛 비춤과 인식이 있다면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듣기로 하였습니다.

장 형제님을 처음 만났던 날, 우리는 바로 신앙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형제님은 영적 서적 하나를 꺼내 들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면서 무엇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책 속의 말씀도 좋고 형제님의 교제에도 빛 비춤이 있어서 그와의 교제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장 형제님과 교제하는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다음 날, 장 형제님은 주님이 오신다는 것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성경의 예언들을 제게 찾아 주면서, 계시록 5장 5절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 성경 구절에 결합하여 교제해 주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책을 펼칠 수 있고 주님이 오실 때 우리에게 이 책에 숨겨진 비밀을 다 밝힐 것인데 이 책이 바로 하나님이 발하신 음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장 형제님은 또 저에게 구약시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반포해 사람들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인솔하여 무엇이 죄인지를 알게 하였고,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하신 것은 구속 사역으로 사람들이 죄를 알고 회개하는 것이었으며, 말세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 말씀도 하시고 새로운 계시도 있을 것이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럼 그 책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라고 하자 “그 책은 이미 펼치셨어요. 어제 읽어 드린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어린양이 펼친 책》 중의 내용이에요.” 형제님의 말을 듣고 저는 격동되어 “어제 교제해 준 내용이 바로 어린양이 펼친 책의 말씀이였군요. 그 말씀을 읽을 때 너무 좋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였네요.” 저는 그동안 곤혹스러웠던 문제들을 제기하며 형제님에게 교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틀 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저는 형제님에게 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늘 죄를 범하고 자백하며 사는 걸까요?” 그러자 장 형제님은 제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는 자는 속량받았고, 죄에 속하지 않고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모두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들은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렇다면 속죄 제물이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하였을 뿐이다. 사람에게 아직도 패괴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장 형제님이 교제해 주었습니다. “은혜시대 예수님은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음을 대표할 뿐, 우리 안의 죄가 없어졌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고 죄의 쾌락을 즐기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라고 하셨지만 정작 자신의 이익에 부닥치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원망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하심도 알지만 실생활 속에서는 늘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면서 자신보다 소질이 낮은 형제자매님들을 깔봅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 몸에 많든 적든 다 존재합니다. 비록 우리가 간혹 절제하기도 하고 육을 배반하기도 하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려는 등 겉면의 좋은 행위를 할 때도 있지만 어떠한 배경이 생기면 역시 고질병이 도지는데 진정으로 성품 변화가 될 수 없지요. 이것은 우리 안에 아직도 죄가 있고, 죄짓는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고,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죠.”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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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 답:

『“우리가 먼저 맞추지 말고 성령이 어떻게 하는가를 좀 봅시다. 진리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성령의 사역인가를 대조해보고, 성령 사역으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옳은가를 검증해 봅시다.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지 않았고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람은 참견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좋기는 그래도 성령이 하는 사역을 말해보고 하나님의 현재의 최신 사역을 말해 봅시다. 성경은 당시에 선지자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쓴 말이니,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오직 성령만이 그런 말씀의 뜻을 드러낼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지요. 당신도 당신을 하나님이 아니라 하고 저도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감히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감히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사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고, 요한이 오고, 엘리야가 오더라도 그들은 감히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없지요. 그것은 그들이 다 어린양이 아니며, 오직 어린양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으며, 그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말세는 다만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율법시대도 대표하지 않는다. 단지 말세에서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밀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런 비밀은 어떤 사람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경의 실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경을 보고는 혹시 얼마간의 진리를 터득하거나 얼마간의 글귀를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글귀에 포함된 뜻은 사람이 영원히 풀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본 것은 모두 죽은 글귀이지 여호와가 역사한 장면과 예수가 역사한 장면이 아니며, 사람은 또 이런 사역의 비밀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최대의 비밀이고 가장 은밀한 것이어서, 사람은 아예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직접 깨달을 수 없다. 반드시 그가 친히 사람에게 해석해야 하고 사람에게 풀어놓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영원히 폐쇄되어 있는 비밀이다. 종교계의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오늘 너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들마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6천년의 사역은 모든 선지자의 그런 예언보다 더 심오하고, 창세부터 현재까지의 최대의 비밀이며, 역대의 선지자도 완전히 측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오직 마지막 시대에서만 풀어놓았고 이 이전에는 풀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만일 이 비밀을 깨닫고 전부 터득할 수 있다면, 모든 종교 인사들도 이 비밀에 의해 정복될 것이다. 오직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상이고, 사람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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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유대인들은 다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를 핍박하였는가? 이것은 모두 그들의 패역한 본성과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당초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한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의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의 사람도 성육신인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실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무릇 성령 사역이라면 너는 일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 사역이라면 ‘흐름’이 옳은 것인즉, 너는 조금도 고려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골라가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몸에서 네가 더 많은 견식을 넓히고 딴 속셈을 갖는데, 이것은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더 많은 성경의 근거를 찾지 말아야 하고, 성령의 사역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에, 너는 하나님을 고찰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나에 대하여 더 많은 근거를 찾아서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유익한 점이 있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너를 완전히 내 앞에 이끌어올 수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비록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리라고 예언하였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예언이 누구의 몸에 응할 것인가를 꿰뚫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모두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이 사람에게 모두 유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나와 예수는 서로 다른 일이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집회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그는 다만 당시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논하였다. 그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사역만 하였지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구약 율법을 제정하였는데,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데에 유익하지 않겠는가? 그는 다만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담당하리라고 예언하였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매 시대의 사역을 하는 데는 상당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 사역을 앞당겨 하지 않는다. 이래야만 그의 매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당시에 어떻게 인내하는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통받아야 하는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데, 네가 만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를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네가 성경만을 받쳐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가든지, 설교자든지 누가 미리 오늘의 사역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은 매 단계 사역에서,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았고 그의 이전의 사역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하였다. 물론, 예수가 와서 사역한 것도 적지 않은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에 하는 사역도 구약의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老黃歷)’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말씀을 너희에게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별로 큰 의의와 별로 큰 가치가 없기에 너희들을 도울 수 없고 너희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역을 하려는 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네가 말해봐라, 도대체 성육신인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더 많은 내용 보기:하나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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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요한계시록 3장, 하나님 이름의 비밀에 대한 나눔
[하나님의 이름]: 요한계시록 3장, 하나님 이름의 비밀에 대한 나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오셨고 새 이름을 바꾸어 새 사역을 하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라는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이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오직 예수만이 구주임을 굳게 믿고,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고 다른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주님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 예언의 다른 부분을 보았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새 이름이라고 하면 돌아오신 주님은 예수라고 불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계속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이라면 새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돌아오신 주님에게 어떤 새 이름이 있는지, 오늘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진리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바뀔 수 있는가, 없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오직 예수이며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하나님의 이름은 정말 영원불변할까요? 먼저 성경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성경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외에는 구주가 없고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역하셨을 때 사람은 다 예수님을 구주로 불렀습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라면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이 ‘영원한 이름’이고 ‘대대로 기억할 표호’라고 한 성경 말씀은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영원한 이름’, ‘대대로 기억할 표호’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이 절대 바뀌지 않음을 뜻합니다. 즉, 그 시대의 사역이 끝나지 않는 한, 그 시대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 베드로나 요한 등 제자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랐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얻었고 주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새 시대의 사역을 함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 그는 한 분이시며 다만 호칭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이 영원히 바뀌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바뀌지 않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영원불변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과 사역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의 6천년 경륜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하다면 왜 두 시대의 사역을 했겠느냐? … ‘하나님은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그의 고유한 소유와 어떠함을 두고 말한 것이다. 너희는 6천년 사역을 어느 한곳에 고정해 두거나 케케묵은 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 머물 수는 없다. 이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사역했던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사역 이상 3>중에서) 이처럼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이 그렇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사역을 하시면서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이름이든 “예수”라는 이름이든 하나님의 본질은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한 분이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과거 유대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메시야라고 불려야 그들의 하나님이자 구주라고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하실 때, 대적하고 정죄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큰 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선례를 교훈 삼아 절대 자기 생각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말세에도 하나님은 예수라고 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하나님을 규정해 버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시대 별로 다른 이름을 취하신 의미

하나님은 왜 시대 별로 다른 이름을 취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다른 이름을 취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함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 제물을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 제물을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죄에서 인류를 속량한 속죄 제물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구주 예수’는 단지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는 분이고, 내가 택한 ‘예수’란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해 생겨난 이름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중에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을 취하신 의미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하실 사역을 상징하며,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선포하신 위엄과 진노, 저주와 긍휼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인간에게 죄란 무엇인지,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율법과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어기는 자는 저주와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하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율법을 준수했고,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였으며, 여호와의 인도를 받으며 수천 년을 보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더 심히 패괴된 인간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바칠 제물이 없어 다 죽어야 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은혜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취하시고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은혜 시대에 하신 사역을 상징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베푸신 긍휼과 사랑과 자비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회개의 도를 주셨으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에게 더는 율법에 의해 정죄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시대 별로 하나님은 고유한 이름이 있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상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 시대의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마다 시대적 의미를 가진 이름을 취하여 그 시대에서 행하실 사역과 그의 성품을 상징하셨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하나님은 늘 새로운 분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시대의 사역을 하시면 더는 옛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새 시대의 이름을 받아들여야 성령의 역사를 얻고 하나님께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세의 새 이름을 통해 주의 재림을 맞이하다

그럼 주께서 재림하시면 과연 새 이름으로 바꾸실까요? 이에 대해 성경은 이미 주께서 다시 오시면 새 이름을 취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계 4:8),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 11:16~17) 이러한 구절을 보면 하나님의 새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면 분명 예수로 불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전능자’를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계시록 15장 3절, 16장 7절, 14절, 21장 22절 등에 “전능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언에 따라 우리는 주께서 돌아와 새 사역을 하실 때는 이름을 ‘전능자’로 바꾸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새 시대를 여시고 은혜시대를 끝내시며,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고 ‘전능자’의 이름을 가장 크게 일컫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세에 취하신 새 이름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 것이 됩니다.

지금 ‘동방번개’에서 예수님이 오셨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이 이름이 곧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고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심판 사역을 하고 있고,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어 밀과 가라지를 나눈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받아 정결하게 된 사람은 환란 전에 이기는 자로 만들어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거부한 자들은 대재난 속에 남을 것이라고 증거합니다.이는 성경의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 예언에 근거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재림 예수님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주님을 맞이하는 데에 있어 우리는 가난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재림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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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 끝의 마지막 시기로,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들은 벌써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들림 받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영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더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결같이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복음을 전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각자가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을 사람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틀림없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런 생각은 도대체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입니까? 이 문제에 관하여 우선 은혜시대 예수님의 사역을 한번 돌이켜 보겠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천국 복음을 인류에게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4:17)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죄를 자백하는 회개의 말씀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 외에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고 풍성한 은혜를 주셨으며, 사람들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고…. 마지막에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죄 사함은 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죄짓고, 죄를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 안에 탐심과 욕망, 이기심과 교만함, 간사함 등의 타락 성품이 수시로 흘러나와, 우리로 하여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죄짓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수년간 고생하며 사역한 후에 과시할만한 자본이 있다고 여기고, 높은 지위를 좋아하고, 사람들로 숭배하게 하고, 늘 스스로 추켜세우고 자신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본성의 태도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본질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본질이 있어 늘 호언장담하고, 사역하면서 설교할 때 갖은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고 우러러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또 간사한 본성이 있어 자신의 명리와 지위를 수호하기 위해 늘 앞에서나 뒤에서 각각 다른 속셈을 품고, 다양한 자리에서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남을 기만하고 속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여전히 뿌리 깊은 죄성이 있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데, 아직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을 얻은 사람은 정결케 된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정결케 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자격이 있는데, 늘 이렇게 죄를 짓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죄짓는 본성이 있는 사람들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고생스럽게 사역하고 헌신하며 언제 어느 때를 막론하고 주님의 이름을 지키기만 하면 천국으로 들어가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오로지 주님께 정결케 되기를 추구하여 죄를 철저히 벗어버리는 것이 주님께 칭찬받고 들림 받아 천국으로 가는 첫 번째 조건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라고 말씀하셨고, 또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만일 어린아이들처럼 단순하고 정직하지 않거나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영생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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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도 우리들이 늘 죄를 짓고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진리를 추구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볼 수 있고, 또 성령께서 사람을 일깨워주신 말씀도 일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이상의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성육신하셔서 구속 사역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모든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율법에서 구속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저주받지 않게 되었으며,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와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자격과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죄짓는 본성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세에 두 번째로 다시 오셔서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한 단계 심판 사역을 행하심으로 사람을 철저히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타락 성품이 철저히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0:27~28),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에 행하신 것은 구속 사역으로, 회개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 자신으로 그분 자체가 바로 영생입니다. 그 영생의 말씀은 오로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즉 “진리의 성령”께서 오셔야만 사람들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슬기로운 처녀는 영생의 말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라고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또 성육신하셔서 인자의 형상으로 진리를 선포해 사람에게 영생의 말씀을 베풀어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우리가 만일 예수님께서 전하신 회개의 말씀만 지키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들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없고 영생은 더더욱 논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성육신하신 인자를 믿고 그분이 선포하신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런 진리의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정결케 되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되고 비로소 ‘아들을 믿는다’의 완전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믿음이 우리가 말세에 진리를 추구하여 영생을 얻고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깨우침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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