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간증]성공을 거둔 후 남겨진 고통과 공허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이 되면 사촌 오빠들은 늘 승용차에 크고 작은 선물 꾸러미들을 가득 싣고 왔고 집안은 그들을 맞이하느라 북적이곤 했습니다. 사촌 오빠들에 대한 친척과 친구, 이웃들의 긍정과 찬사의 눈빛을 보고, 전 너무 부러워서 ‘나도 나중에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성공할 거야, 사촌 오빠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문을 빛내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멋진 삶을 살거야.’ 라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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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말씀]하나님을 유일무이한 주재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이 구원받는 첫걸음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진리를 진지하게 대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진리가 모든 사람의 삶과 관계가 있고, 모든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삶을 살면서 거치는 몇 개의 중요한 관문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에 대한 깨달음, 그의 권능을 대하는 태도에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종착지와도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 평생 동안 노력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권능을 직시하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권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된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이를 먹어도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권능을 진정으로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수십 년간 믿는다고 해도 인생의 끝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이냐? 따라서 인생의 길을 얼마나 걸어왔든, 현재 나이가 몇 살이든,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남았든, 우선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너의 유일한 주재자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진리를 확실하게 깨닫는 것은 모든 사람이 완수해야 할 과제이자 인생을 알고 진리를 얻는 열쇠이다. 또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매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에 있어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이다. 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름길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일깨워 주고 싶다.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 또한 불가능하다고 일깨워 주고 싶다. 하나님은 사람의 유일한 주이고,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유일한 주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수 없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든 타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그것을 배정하거나 좌우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유일무이한 하나님만이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할 수 있다.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만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능을 가지고 있기에 창조주만이 인류의 유일무이한 주재자이다. 하나님의 권능은 창조된 인류를 주재할 뿐만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비피조물과 우주 별하늘도 주재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다. 누군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어떤 특기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요행의 심리를 가지고 현재의 처지를 바꾸거나 벗어나려고 한다면, 혹은 인간의 노력을 빌어 출세하거나 명예와 부귀를 모두 가지는 운명으로 바꿔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고생을 자초하고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하겠다! 너는 조만간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고 본인의 노력이 헛수고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명을 거스르려는 욕심과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될 것이며,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너는 지금 당장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진리를 점차적으로 깊이 체험하게 될 때면 오늘 내가 한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마음과 영이 있는 사람인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는 하나님의 주재와 진리에 대한 태도에 의해 좌우된다. 하나님의 권능을 진정으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지도 이에 의해 결정된다. 네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를 느껴 본 적이 없고 그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며 분명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너 자신이 가는 길과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주는 시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권능에 순종하고, 점차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적인 경험이 있게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재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게 되고, 진실한 체험을 얻게 되며, 진정 창조주에게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이에 순종한다. 이런 사람은 욥처럼 눈앞에 닥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욥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무엇을 선택하거나 무엇을 바라고자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피조물의 신분으로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확장 열람:구원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신 구원

더 많은 내용 보기: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을 유일무이한 주재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이 구원받는 첫걸음이다
하나님을 유일무이한 주재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이 구원받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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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1.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 3:21~22)

2.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말로써 인자를 거스르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마 12:31~32, 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 가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으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게 되면 너희보다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도다”(마 23:13~15, 중국어성경 직역)

이상은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두 부분으로, 우선 첫 번째 내용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을 보자.

성경을 보면, 예수와 그가 행한 사역에 대해 바리새인은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고 평한다. 예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거나 터무니없는 상상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의 행사를 직접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이다. 이러한 판단은 정의를 위한 것인 양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논단하는 이러한 오만 방자함은 그들 스스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예수를 향한 광기 어린 증오심에서 그들의 야심과 사악한 사탄의 몰골,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독한 본성이 드러났다. 예수를 판단하는 그런 말은 야심과 질투,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행하는 일의 근원과 말씀과 행사의 본질을 살펴보지는 않고, 안달이 나서 무턱대고, 미친 듯이, 의도적으로 악의를 품고 예수의 모든 행사를 공격하고 비방했다. 심지어 예수의 영, 즉 성령이자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 사역하는 것을 보고 미쳤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본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것과 완전히 같았다. 그들은 타락한 인류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탄의 화신이고,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대변자이자 심부름꾼이며, 사탄과 한 패거리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훼방하는 행위의 본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맞서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질과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 그들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거슬러 진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합당한 결론을 내려 그들의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규정했다. 그 죄는 아래 성경 구절과 같이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한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구절의 실제 함의에 대해 말해 보자. 즉,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이 말씀을 하나님이 어떻게 실현하는지 그 비밀을 밝혀 보자.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우리가 나눈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 있고, 하나님이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 있다. 위의 두 구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두 구절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혹자는 하나님의 분노를 보았다고 말한다. 혹자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았고,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하면 사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구절 말씀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분노와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알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이 두 구절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슬러 진노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실제적인 태도와 처리 방식이 들어 있다. 이 태도와 처리 방식이 바로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할 때가 바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때이다. 하나님은 결론을 하나 내놓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준 결과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마 12:31, 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마 23:13, 중국어성경 직역). 비록 예수가 이런 말씀을 했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예수를 미쳤다고 말한 자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에 기록이 있느냐? 그들이 무슨 벌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있느냐? 분명하게 말하면, 없다. 여기서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상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결말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없다’라는 말은 이러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태도와 원칙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그를 모독한 자, 대적한 자, 심지어는 그를 훼방한 무리를 대함에 있어, 그리고 고의로 그를 공격하고 훼방하고 경멸하는 자들을 대함에 있어,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지 않고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증오했고, 마음속으로 정죄했으며, 나아가 공개적으로 그들의 결말을 선포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함을 알게 하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그가 장차 그런 자들의 결말을 어떻게 결정지을지에 대해서도 알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끝내고 난 후, 실제로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사람은 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판단이나 결론에 대한 원칙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즉,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태도는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는 하나님 사역의 원칙과 관련 있다. 어떤 자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실질적인 벌을 준다. 다시 말해, 죄를 선포하거나 결말을 정하는 대신, 실제 사건을 통해 직접 벌하거나 악행에 대한 보응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실질적인 벌은 사람의 육체를 대상으로 하며,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또 어떤 자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말로만 저주하고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한다. 그들이 받는 벌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결말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벌이나 죽임을 당하는 결말보다 훨씬 더 중하다. 그러한 자들을 구원하지 않기로 뜻을 정한 하나님은 더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지도, 그 어떤 기회를 주지도 않겠다고 결정했기에, 이들에게 방임적인 태도를 취한다. ‘방임’의 의미는 무엇이냐? 이 단어 자체의 의미는 우선 한쪽으로 제쳐 놓고 상대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있어 ‘방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사람의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사탄이 일임하도록 넘겨주어 하나님이 더 이상 책임지거나 보살피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자가 광인이나 백치가 되거나, 살거나 죽거나 혹은 지옥으로 떨어져 벌을 받아도 이 모든 결과가 하나님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그 피조물이 이제는 창조주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두 번째 해석은 하나님이 직접 이러한 자들에게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뜻을 정하는 경우다. 그런 사람을 봉사하게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부각시키는 역할로 쓸 수도 있으며, 또는 특별한 처리나 대응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러한 부류에 대해 정한 처리 원칙이자 태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고 모독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케 하고, 하나님이 준 최저선을 넘어서면, 그 뒤에 오는 결과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한 번으로 영원히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원토록 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는 그 사람이 사탄의 먹잇감이자 노리개가 되었으며, 더 이상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너희는 당초 욥이 사탄에게 시험당할 때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상상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한 상황에서도 욥은 몹시 큰 고통을 겪었다. 하물며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진 자, 사탄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자, 하나님의 보살핌과 긍휼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 창조주의 주재를 잃은 자, 창조주를 경배할 권리를 빼앗긴 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는 피조물이 될 권리를 박탈당한 자, 창조주와 완전히 관계가 끊긴 자들이 받게 될 사탄의 박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욥에 대한 사탄의 박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 사람의 목숨을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면,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소나 나귀로 환생하거나, 더러운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잡히거나 빙의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넘겨진 후, 그들이 맞게 될 파국적 결말이다. 외적으로 볼 때, 당시 예수를 비방하고 훼방하고 정죄하고 모독했던 자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리 방식이 있다.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에 대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전부 명확하게 알려 주지는 않는다. 말씀보다는 직접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말씀이 없다고 결말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어쩌면 말씀이 없는 경우의 결말이 더 심각할지 모른다. 어떤 이들의 말에 대해 하나님이 겉으로는 태도를 밝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그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의 행동과 본성과 본질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려 한다. 직접 그를, 그의 영, 혼, 육을 모두 사탄에게 넘겨주어 사탄이 마음대로 하게 두려는 것이다. 그런 자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누군가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하나님이 그를 보고 싶지도 않아 완전히 포기하고, 나아가 직접 처리하고 싶지도 않아서 사탄이 통제하고 삼키고 마음대로 처리하게 넘겨줄 정도까지 된다면, 그자는 정말이지 끝이 난 것이다.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격, 피조물로서의 자격이 완전히 박탈당한 것이다. 이보다 더 중한 벌이 어디 있겠느냐?

이상의 내용들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자, 이 성경 말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제 이해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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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사도들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있는가

사도의 탄생

어떤 이들은 ‘사도’라고 하면, 사명을 맡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약성경에는 ‘사도’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제사장 또는 선지자라고 불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은혜시대,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하실 때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친히 그들을 이끌어 양육하고 목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각지를 다니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끄심을 받으며 점차 주님의 사역과 선포하시는 말씀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바로 오실 메시아라고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나타나시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인류를 구속하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안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이 제자들을 나중에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사도의 사역

사도의 사역은 예수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고, 교회를 세워서 신도들을 지원, 양육, 목양하며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최선을 다해 완성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사도들을 돌이켜보면, 예수님이 그들을 세계 각지로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성령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크신 역사로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아 세례를 받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원했고, 한 번 복음을 전했을 때 3천 명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사도들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복음은 이미 온 세상에 널리 퍼져서 집집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도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있을까요

사도들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도들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권력자의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곳곳에 교회를 세워 신도들을 양육하고 목양하며, 마지막에는 주님을 위해 순교했던 모습을 볼 때마다 절로 탄복하고 찬양하게 되며 사도를 본보기로 삼고, 본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도의 사역에 성령의 인도가 있고,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사역이 정말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있을까요?

한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시대 전체를 이끄는 것이다.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사역한 후 보내심을 받거나 소명을 받아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이끄는 것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동역하는 사람이다…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전 인류와 관련되는 사역이고, 또한 전체 시대를 대표하는 사역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성령 역사의 모든 동태와 추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사역한 후에 이어 나가는 것이지, 시대를 이끄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모든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일 뿐, 경영 사역에는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항목이고, 사람이 하는 사역은 쓰임 받는 사람이 이행하는 본분일 뿐이므로 경영 사역과는 무관하다. 신분과 사역이 대변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 성령 역사일지라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는 언제나 뚜렷한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은 새 시대를 열고 구시대를 끝내는 사역이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오시면서 은혜시대가 시작되었고, 회개시대가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회개의 말씀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들의 죄를 사해줌으로써 온 인류를 구속했습니다. 그러나 사도가 한 것은 다만 예수님이 맡기신 일을 이룬 것뿐입니다. 그들은 은혜시대를 열 수도 없었고 율법시대를 끝낼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해서 승천하신 후, 사도 베드로, 요한, 야곱, 바울 등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이루신 후에 세계 각국에 가서 예수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고 증거하며, 교회를 세워 신도들을 목양하고 양육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주님의 말씀과 역사를 전하고 증거해서 사람들을 주님 앞에 데리고 나오고, 책임감을 갖고 편지를 써서 진리를 나누며 교회의 사역 문제를 해결하고, 형제자매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사역과 본분입니다. 사도들이 한 일은 다만 사람의 본분을 이행한 것뿐이고, 사람들의 생명 진입을 다소 인도하고 지원하며 돕는 역할만 했을 뿐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본보기가 되어서 사람들이 더 쉽게 진리를 이해하고 진리로 들어가 하나님의 속성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사도가 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맺음말

사도는 단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며, 성육신 하나님이 아닙니다.성육신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는 완벽한 사역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이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말씀이고 우리에게 실행할 길을 보여주며,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도들을 칭찬한다 할지라도 사도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를 하나님처럼 대하는 것은 더욱 안 되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할 수 있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사도 역시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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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티] 3가지 원칙으로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쉽게 간파하다

사람은 매일 여러 사람들이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으며,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우리를 유익하게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심지어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에서 우리가 분별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하고, 수시로 사이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미혹된다면, 우리는 쉽게 소극적이 되고 하나님과 멀어질 것이며 심각한 경우에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길에 들어서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세아 4:6),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언 10:21)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별해야 할까요? 몇 가지 실행 원칙을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맞서는 것이라면 모두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속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여러 사람의 다른 주장을 분별할 수 있고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황당무계한 논리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고, 진리에 위배되는 그런 잘못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은 모두 황당무계한 논리입니다. 주로 사람의 상상, 관념, 추리, 논리, 철학, 학설, 편견, 착오, 및 그릇된 주장, 궤변, 거짓말, 원망 불평, 사람을 미혹하는 말, 흑백이 전도된 말, 진리를 공격하고 비방하는 말 등등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항상 목사와 장로에게서 듣는 “성경 속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시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과연 사람으로부터 나온 말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일까요? 우리가 성경을 찾아보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이 말은 분명 사람으로부터 나온 말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다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세히 알아보고 분별해 보면,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 사람이 한 말,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한 말,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 등등도 있습니다. 우리 중 누가 감히 이 말들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런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닙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신 말씀, 선지자가 전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성경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성경 속의 말씀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은 주장은 황당무계한 논리이기 때문에, 단지 우리를 미혹케 하여, 성경 속의 어떤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떤 말이 사람의 말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성경 속의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실행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표면적으로는 믿으나 암암리에 배척하고 내팽개쳐 버리게 됩니다. 결국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사람을 숭배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명백하게 위배하는 말은 누가 한 말이든지, 어디에 기록되어 있든지 모두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속하며, 모두 우리가 분별하여 버려야 하고 절대로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큐티] 3가지 원칙으로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쉽게 간파하다

둘째,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부인하고, 긍정적이지 않은 사물의 사상이론은 모두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사람의 학설이나 이론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분명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가 틀림없습니다. 비교적 명확한 예로는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사상 등이 모두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입니다. 또한, 교계에서 비교적 유행하는 주장 중에도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가 일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와 장로가 항상 “성경 이외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은 구약성경 밖에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사람이 감히 “성경 이외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닙니까? 또한, 예수님이 3년 반의 사역 기간에 하신 많은 말씀이 전부 신약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신약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합치면 예수님이 몇 시간 동안 하신 말씀에 상당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사역하고 전도하신 3년 반 동안 하신 말씀과 비교하면 바닷물에서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합니다. 마치 제자 요한이 간증할 때 한 말과 같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한복음 21:25), 또,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라는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 진리를 선포하시고, 우리에게 알지 못했던 모든 진리를 알려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향해 하신 말씀이 성경에 다 기록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이외에 다른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은 없다.”라고 한 말은 사실과 다르며,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는 황당무계한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과도 서로 대립되는데, 우리가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고 사역하실 때를 떠올리면, 회개의 말씀을 전하시고,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인내하라고 하시고, 영생의 말씀을 논하시고,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알려주시는 등등, 모두 구약성서 외의 새로운 말씀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구약 율법을 초월한다는 이유로 부정하고 정죄하였고,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부인하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예수님을 정죄했으며, 유대 백성조차도 미혹 당해서, 바리새인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말세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진리를 선포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면서 “성경 이외에 다른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이 없다.”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믿고 지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신 말씀을 논단하고 정죄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대적해서 구원받는 기회를 아주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셋째, 사탄과 각종 악령으로부터 오는 것은, 모두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속합니다

교계의 몇몇 단체 또는 은사와 초자연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교파에서 자주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고, 반드시 고정된 방향, 시간, 장소 또는 자세가 있는 기도를 드려야 효과가 있고, 하나님이 들어주시며, 밤 12시가 지나서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가장 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고, 방언을 통역해야 주님이 칭찬하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계속 울부짖으라고 하고, 주님을 뵐 때까지 울부짖어야 주님이 칭찬해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 사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전부 해방이고 자유이며, 그 어떤 금기도 없고 그 어떤 속박도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전부 자유와 해방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고, 진실하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목석이 아니고 석상도 아니며, 사람이 공양하거나 숭배하는 우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분이며,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전부 생명과 광명이고, 전부 자유와 해방이다. 하나님께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고 길이 있기 때문에…예수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규례도 없었고, 사람에게서 온 그 어떤 지식과 학설도 없었기 때문이며, 예수가 소유한 것은 곧 하나님의 새 사역과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가 한 사역은 다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고 빛 속에서 살게 하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거짓 신을 섬기는 자들은 날마다 사탄의 결박 속에서 살면서 불합리한 각종 제도에 속박되어 오늘은 이것을 금기하고 내일은 저것을 금기하는데, 삶에 자유가 전혀 없다. 그것은 마치 목에 칼을 차고 쇠사슬에 묶인 죄수와 같아 기쁨이라고는 말할 것도 못 된다. ‘금기’는 무엇을 뜻할까? 속박을 뜻하고, 결박을 뜻하며, 사악을 뜻한다!』 『망령되고 그릇된 것들을 규례로, 계명으로 지키고, 거기에다 진리로 여기면서까지 지키고 있는데, 계속 그렇게 지키면 어떻게 되느냐? (정상 인성을 잃게 됩니다.) 정상 인성을 잃게 된다. 그것은 소극적인 방면이고, 부정적인 면으로 손해 보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이 있느냐? 그런 것을 지키면 진리를 실행하겠느냐? (실행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런 사람에게서 역사하겠느냐?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 하느냐? (악령이 합니다.) 그럼 악령이 역사한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악령에게 넘긴 것이냐? (아닙니다. 스스로 그런 사악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는 길이 바로 사악한 길이다. 계속 악령의 길로만 달려가는 것이다. 계속 달려가다 보면 나중에는 사악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 어떤 사람을 보면 시간대를 맞춰서 기도하는데, 그렇게 하다가 어떻게 되느냐? 히잡을 쓴다. 시간이 길어지면 그런 사람을 보면 정말 오싹해진다. 이런 것이 사악한 길로 가면 반드시 악령에게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악령에게 내줄 필요도 없이,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얻지 못하였으니 상관하지 않는 것이고, 악령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요구는 모두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어떠한 규례도 없고, 금기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기는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고, 사악한 것으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진리에 맞지 않고, 모두 악령으로부터 온 정당하지 못한 추구 방법과 실행 방법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받아들이고 행동에 옮긴다면 시간이 오래 지난 후,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악령 역사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령 집단으로부터 오는 모든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별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상의 몇 가지 분별원칙을 터득한다면 모든 일을 대할 때 진리의 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고, 남의 말에 따르지 않습니다. 모든 일, 모든 관점의 옳고 그름에 대해 정확한 원칙과 입장이 생겨서 사이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대적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으며,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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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안에 있는 한 형제님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의 교제는 나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그래서 마음속 고민을 형제님에게 털어놓았다. 형제님은 말했다. “사실, 성경의 예언은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뤄야 할 일들을 기록해 놓은 거예요. 성경 속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된 큰일에는 모두 예언이 있어요. 특히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예언은 더욱 많죠.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해요. 예언은 단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알려줘서 우리가 깨어 있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구하고 살피게 해서 주님의 재림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서 버림받고 도태되지 않게 할 뿐이에요. 이것이 예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효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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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 율법 아래 있던 이스라엘사람들은 모두 구약의 예언을 근거로 메시아가 강림하여 그들을 구원해주기를 바랬어요. 그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아를 간절히 바란 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특히 유대교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은 매일 구약 성경을 보고 예언도 연구했어요. 그들은 메시아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 차서 오실 메시아를 성경 예언의 글귀에 규정짓고 그들의 생각과 상상 안에 규정 지었어요. 그들은 성경 예언을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이사야 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 5:2) 바리새인은 성경 예언의 글귀를 근거로 메시아의 강림에 대해 관념과 상상, 추리로 가득 차서 주님이 오시면 메시아로 불리고, 부귀한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규정했어요. 또한 다윗처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그들을 이끌고 로마 정권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죠. 아마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관념과 상상대로 그 예언들을 이루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유대인들이 상상했던 그런 이스라엘의 왕도 아니었고, 메시아라고 부르지도 않았어요. 그 때문에, 바리새인은 사사건건 예수님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예수님을 정죄하고 모독했어요. 당시 예수님은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수없이 보여줬지만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하든지, 예수님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어요.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본성 때문에 결국 진리를 선포하여 구원 사역을 하시는 예수님을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는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지었죠. 우리 한 번 생각해봐요. 바리새인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일에서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고, 그들이 왜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았는지를요. 이것은 정말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그 제자들, 베드로, 야곱, 요한, 사마리아 부인 등등은 성경 속 예언의 글자 뜻 그대로 주님을 판단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예언에서 오시리라 한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의 구원을 받았어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에서 성경의 예언은 단지 방증의 역할을 할 뿐이고,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말세에 나타나 하시는 사역을 어떻게 대해야 버림받지 않을지 깨우쳐 줄 뿐이에요.”

형제의 교제가 어찌나 분명한지 나는 머리가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또 성경의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예언이 하는 유일한 효과도 알게 되었다. 원래 예언의 역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님이 다시 오셔서 사역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구하고 살펴보도록 하는 것뿐이다. 만약 우리가 예언의 글자 뜻 그대로 주님의 재림을 규정한다면 바리새인과 똑같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약 바리새인처럼 예언을 대한다면 하나님을 믿고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정말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나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예언이 방증의 역할밖에 못 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을지?

이어서 형제님이 또 나에게 교제해주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때는 주님이 오셔서 선포한 말씀과 주님이 하신 사역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인지, 진리의 선포인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현명합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정확한 길을 알려주셨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태복음 25: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3:22),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오셨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가서 구하고 살펴야 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랑을 영접하면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들림 받은 것이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것입니다.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집중하지 않으며, 단순히 성경 예언의 글귀만 지키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나타내신 어리석은 처녀이고,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는 대상이에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성경의 예언을 해석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예언을 잘못 해석하고 주님의 재림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고, 예언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고 주님과 함께 연회에 참석할 수 있어요.”

형제의 교제를 듣고 나는 정말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정확한 길도 알게 되었다.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집중하고, 성령의 역사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제님은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내 주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은 것이라 생각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타남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이 말씀을 본 나는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길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주님은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선포하신다. 우리가 진리를 찾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았다면 바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은 것이 아닌가?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주님께 감사드린다.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길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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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담겨져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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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한복음 10:27)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한정은 작은 목소리로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급하게 성경을 펼쳤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요한계시록 2:7) 한정은 속으로 고민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 과연 예수가 재림하셨을 때 음성을 내신다는 의미일까?’ 한정은 문득 예배에서 휴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려면 성경을 잘 지켜야 합니다…” 성경 예언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셨을 때 말씀을 하실 거라고 되어 있었는데 휴 목사님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이 성경 안에만 있고 성경 밖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한정은 참 난감했습니다.

며칠 뒤, 김 동역자가 전도사인 류 자매와 함께 한정의 집을 찾았습니다. 가볍게 안부를 물은 후 한정은 자신이 갖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류 자매님이 제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일단 몇 가지 문제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선,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경>에 적히게 된 것인지 이 문제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성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율법시대에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기록되어 있다는 걸 알 것입니다. 그중 세상을 창조하시는 사역이 들어있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쓰도록 알려주신 오경입니다. 다른 선지자의 예언이나 역사적인 사실은 모두 <욥기> · <이사야> · <말라기>에 적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역을 마치신 후 사람이 적어 내려간 것으로 총 39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역하신 일부는 <제2 경전>에 적혀 있어 <성경>에 기록되진 않았습니다. 이로써 구약 성경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주후 300여 년에 형성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행보와, 사도들이 교회에 쓴 서신 중 일부를 골라 편집한 것이 바로 신약 성경입니다. 주로 4복음서와 사도의 서신, 그리고 계시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27권입니다. 예수께서 사역하신 3년 반 동안 하셨을 많은 말씀과 설교를 생각해보면,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전하신 말씀에 비하면 바닷물에서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합니다. 요한이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한복음 21:25) 이는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사역이 신약 성경에 들어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일부만이 들어있을 뿐이죠. 이로써 성경은 그저 역사서에 불과하며 사람이 만든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하신 모든 말씀과 사역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담겨져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담겨져 있는 것인가

한정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말 잘못 생각했구나.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성경에 들어있는 건 아니었어! 이건 확실한 사실이야! 예수께서 유대땅에서 사역하실 때 산, 바다, 마을 등 곳곳을 누비셨지. 예수님과 함께 다닌 제자들이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록했을 리는 없어!’

그러자 김 동역자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이 들어있지 않고, 신약 성경에도 예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성경에 들어있다고 말할 수 없겠네요.”

류 자매님은 컴퓨터를 켜서 말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진리는 제가 인터넷에서 본 글에 정확히 쓰여있더라고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성경에 기록된 것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 4복음서를 다 더해 봤자 100장도 되지 않는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것,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 금식에 관한 것, 기도에 관한 것, 아내를 버리는 것에 관한 것, 예수의 출생, 예수의 족보, 예수가 제자를 세운 것 … 그저 얼마 되지 않는 이런 것들만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보물로 삼으며 오늘날의 사역에 대조해 보기까지 하고, 또한 예수가 일생 동안 한 사역이 그 정도뿐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이 그런 사역만 할 수 있고 더 이상의 사역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터무니없지 않으냐?』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매우 제한적이다. 하나님은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앞당겨서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말해 주었고, 그 당시에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했 뿐이다. 말세에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한데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찾는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냐? 네가 성경만 받쳐 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성경 해석가든, 설교자든 누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류 자매님이 이어서 교제했습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신 말씀이 갑자기 성경에 추가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예수님의 말씀을 넣을 수 없고 기껏해야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된 예언만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역을 끝내면, 그제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주께서 재림하시어 사역하신다면 우리는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에서 그 말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사역이 성경에 있다고 생각하고 성경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점은 틀린 것으로, 그건 사람의 상상과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한정은 창문 앞으로 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이 세월 동안 성경을 얼마나 읽었던가? 이리 쉬운 문제조차 간파하지 못했다니. 휴…”

김 동역자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과거 우리는 주의 재림을 상상하며, 하나님을 성경으로만 규정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모두 성경에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크게 착각했나 보네요. 과거 바리새인이 구약 성경을 꼭 쥐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과 다르자 마음대로 예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부인하며, 주께서 하시는 사역은 구약 성경에 나온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갈라디아서 3:22) 말세, 주께서 재림하시어 역사하실 때 우리가 성경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규정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성경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한다면 우린 바리새인과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매님들과 교제하니 저도 알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주의 재림은 성경에 없는 말씀을 전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상상과 관념으로 하나님을 규정해선 안 돼요. 그렇게 하면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정죄하는 죄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한정이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류 자매님이 이어서 교제했습니다. “맞아요. 그건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들이에요. 사실 성경에 주의 재림에 관련된 말씀과 사역에 대한 예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중 몇 구절만 확실히 파악하면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 있죠.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계시록 10:4), ‘…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다니엘 12:9) 이 예언에서 말하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숨겨진 말씀’ 등이 모두 주님의 재림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하시는 말씀과 사역은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정해집니다. 말세 하나님께서 재림하신 것은 시대를 끝내시고 하나님의 모든 경영 계획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나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이나 사역과는 다소 다른 것으로, 예수의 말씀과 사역을 기반으로 모든 비밀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며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시는 겁니다…”

두 자매님과의 교제로 한정은 고민을 덜게 되었습니다.

한정이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아! 지금에야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겠어요. 성경에 그렇게 많은 부분에서 주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실 거라고 예언되어있는데 저는 하나도 보지 못하고 목사의 말만 믿은 채 하나님을 성경에 규정하고, 주께서 재림하셔서 하시는 말씀과 사역은 성경에만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한 행동이 바리새인이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네요! 이제야 말세 주께서 재림하시어 말씀하시고 사역하신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어요. 만약 하나님께서 자매님들과 교제하도록 만들어 주지 않으셨다면 전 제 생각만 갖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이제 저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하면 저도 알아봐야겠어요 …”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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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논리는 성립됩니까

‘구원’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주 안의 모든 형제자매들은 결코 생소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싶어합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논리는 더욱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진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의 구원으로 정말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가 정확한지 그리고 주님 말씀의 근거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어떤 관점을 고수하든 절대로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르면 안 되고, 주님의 말씀을 찾아 근거로 삼아야 주님의 뜻에 맞게 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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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많은 형제자매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믿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근거로 얻어낸 결론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사실이 그렇습니까? ‘구원’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24: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성경을 통해 알려 주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성경에서 말한 구원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이해한다면, 심각하게 치우치는 면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 말씀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신실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만일 예수님께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약속하셨다면 우리에게도 분명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고 많은 사도들도 그렇게 증거한 적이 없으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수많은 영적 인물들이나 성경 해석가들이 그렇게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개개인의 견해일 뿐, 절대 주님의 뜻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이 천국의 왕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 길, 생명이고 권능이 있으므로,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예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분께 인정받고 싶다면, 반드시 각 방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원칙과 근거로 삼아야지, 우리 개개인의 깨달음과 상상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뜻을 깨닫기를 구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삼지도 않으며, 그저 개개인의 생각과 논리 속에 살거나 일부 사람들의 유전이나 근거가 없는 말을 고수한다면 이런 것들을 끝까지 지켜도 결국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했으니, 성경에 언급된 ‘구원’이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인지를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참뜻은 무엇입니까

주 안의 형제자매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구약 율법시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고,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는지,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어떻게 행해야 축복을 받고, 어떻게 행하면 저주를 받는지, 그리고 사람 간에 어떻게 지내야 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죄를 지은 후에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속죄하는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인류가 사탄에 의해 갈수록 깊이 타락되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고 죄 속에서 살며, 눈멀고 다리 저는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를 여호와 제단 앞에 제물로 바쳤습니다. 만일 계속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죽게 될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예수님의 형상으로 한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았고,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죽임당하지 않았으며 하나님 앞에 나올 자격이 있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원’은 곧 율법에 의해 정죄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로마서 10:9) 다시 말하면, 당시에 사람들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며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율법에 의해 정죄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구원’의 참뜻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구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것들을 이해한 후, 어떤 형제자매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구속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함 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더 이상 우리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며, 한 번 구원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이 정말로 그렇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과 주님이 요구하시는 ‘영원한 구원’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 본문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얻고 싶다면, 죄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로 거룩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님을 지금까지 따라오면서 비록 좋은 행위가 약간 있고 고생을 참고 견딜 수 있으며, 열심히 헌신하고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돌보고 부축하며, 세속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구제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을 하지만, 사람 안의 죄성은 아직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늘 거짓말하고 자기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당을 짓고, 독립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늘 자신이 한 고생과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지위에 서서 신도들에게 자기들을 숭배하고 우러러보게 합니다. 재난이 닥치고 인재가 발생하고 시련이나 환난이 닥치면,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도리어 목사와 장로를 따르고 우러러보며 숭배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제물을 도적질하고 횡령합니다. 우리 안에 교만함과 이기심, 간사함과 사악함 등의 죄성이 깊이 뿌리내려 우리로 하여금 매일 죄짓고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다 목격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짓는 본성과 사탄의 성품은 해결되지 않아 죄 사함을 천 번, 만 번 받아도 역시 죄의 굴레에서 철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6~2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이루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은 후 주님의 요구를 알았음에도 삶 속에서는 여전히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였고 늘 죄짓고 주님을 대적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한 번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영원한 구원’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하면 어떤 형제자매들은 “그럼 주님을 믿는 우리들이 바라던 ‘영원한 구원’은 물거품으로 되는 게 아닌가요?”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떻게 추구해야 죄를 철저히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우리가 소원하며 바라는 ‘영원한 구원’을 실현할 수 있습니까? 사실, 주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야 ‘영원한 구원’이라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또 영적 서적에서 이런 말씀을 본 것이 기억납니다. 『은혜시대에 안수기도하면 귀신은 사람 몸에서 나갔지만 사람 안의 타락한 성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병 고침을 받고,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 성품을 없애는 사역은 행하지 않아 그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남아 사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이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속죄제로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이런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말씀,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해야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단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하셨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며, 사람을 철저히 구원해 죄성을 벗도록 하는 사역은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여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성은 아직도 우리 안에 뿌리를 내려 여전히 죄짓고 자백하는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정결케 되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한 단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죄성을 벗을 수 있고 진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이상의 성경에서, 우리를 구원해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에는 계획과 절차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고 싶다면, 주님의 구속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의 말세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철저히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됩니다. 사실, 주님께서 두 번째로 오셔서 심판을 하신다는 예언과 관련된 성경 장절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시편 7:11),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말라기 3:5),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야고보서 5:9),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시록 14:7),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시편 98:9),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시편 96:13),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이런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심판 형벌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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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기는 자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은 계시록의 예언이 생각납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시록 14:1),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이 성경 구절에 ‘십 사만 사천’이라고 언급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을 겪고 굳게 선 자들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님을 따라왔어. 온갖 고생을 다 해 사역을 했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았지. 또 사역하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훼방도 당했지. 가족조차도 이해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어. 이렇게 끝까지 따르면 곧 이기는 자가 되는 거야.’

사실, 이렇게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심지와 믿음은 확실히 사람들이 탄복하고 칭찬해 줄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깨달음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고생 하면서 사역하고, 주님의 이름을 굳게 지키면, 이기는 자가 된다는 관점은 정확한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가늠해야만 정확합니다. 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4~5),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즉 흑암 세력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고 원래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킬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킬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다.』, 『재난 전에 온전케 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이며, 이긴 남자 아이이고, 그리스도의 정병(精兵)이다.』 이 예언과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그 입에 거짓이 없고 마음에 간사함이 없으며, 타락한 성품이 변화되어 정결케 된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이기는 자는 어린양을 바짝 따르는 자들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역을 하고 말씀을 하시든 따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죽기까지 충성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합니다.이런 기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이기는 자라고 할 수 있으며 고생을 하고 사역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할 뿐만 아니라, 핍박이나 환난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이기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비록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지 못해 정결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생 하며 사역함과 동시에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자신의 뜻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역을 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이익, 지위를 탐내고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형제자매가 자신을 받들고 우러러보도록 하여 믿는 신자들을 자기 앞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면 거짓말로 속이는 것도 서슴지 않고, 명예와 이익, 지위에 관련되면 또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우리가 고생을 하고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상과 면류관을 받기 위한 것으로, 어느 정도 사역을 하거나 고생하고 나서는 고참 티를 내면서 아주 떳떳하게 하나님을 향해 천국의 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 때는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심지어 누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면 관념이 생기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리는 늘 죄를 짓고 죄성의 지배와 통제를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정결케 되거나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아직 변화되어 정결함을 얻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이기는 자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성경 묵상]“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우리의 이런 태도는 확실히 이기는 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스가랴 13:9)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도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방에서 얻는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은 대환난 속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 얻어진 이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온갖 연단을 겪고 나서야 진정으로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의 믿음은 막연하지 않고 실제적이다. 그들은 어떤 기적이나 기사도, 어떤 이적도 본 적이 없으며, 대단한 도리나 이치를 말할 수도 없고, 고매한 깨달음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실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수백 번의 연단과 시련을 거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 알고 있으며 진실한 순종에 달한 것입니다. 또 어떤 환난이나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며, 최종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변화되고 정결케 되어 사탄의 시험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포위 공격을 이겨 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다시는 타락한 성품에 의해 살지 않고, 행동이나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는 사람들로써 진정으로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타락한 사탄 본성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만 자대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사탄의 성품 등 자신이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실상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수시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할 수 있으며, 살아내는 것은 완전히 사탄의 모습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밖에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온갖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도 분별할 수 있으며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온갖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은 철저히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이것이 이기는 자의 기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욥처럼 가득했던 소와 양, 거액의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으며 그의 친구가 그를 조롱하고 아내가 그의 순결을 공격했습니다. 욥을 대하는 사탄의 수단이 얼마나 잔인하든 욥은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났기에 환난과 시련 속에서 나온 이긴 자입니다. 또 베드로를 보면, 그는 일평생 주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본보기로 삼았으며,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간증을 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진정으로 환난 속에서 나온 이긴 자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첫 번째 익은 열매이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성경 묵상]“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경 묵상]“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계시록에 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1~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7)

이처럼 이기는 자를 온전케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시려는 사역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두 번째 성육신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사역을 체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또 친히 음성을 발하여 말씀으로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어린양에게서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체험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각종 타락한 성품도 서로 다른 정도의 인식이 있게 되어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큰 환난 속에서 나온 한 무리들, 진정한 의미에서 이긴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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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쉬지 않고 기도하면 사탄의 시험에서 멀어지게 된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한일서 5:19)
지금 이 세상은 사악하고 어두워요. 사탄은 각종 사악한 사상 관점, 예를 들면 “인생은 곧 먹고 자는 것이다, “인생은 짧은데 어찌 즐기지 아니하리” 등 황당무계한 논리로 우리를 타락시키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며 우리로 하여금 오로지 육을 누리고 물질적인 생활을 누리는데 정신이 팔리게 하며, 진리를 추구하지도,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못하게 해요. 그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 사탄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잃게 돼요. 그러나 이런 사탄의 시험을 멀리하는 방법은 바로 쉬기 않고 기도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 설사 사탄의 시험이 임했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로 믿음과 힘을 얻게 되어 사탄의 각종 시험을 이겨 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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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한 자매님은 생활 조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더 많은 돈을 벌어 부유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었어요. 그는 종일 바삐 보내면서 시간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고 집회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며 결국 과로로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살게 되었어요. 고통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런 상황이 아주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또 자신의 진실한 생각과 어려움을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쉬지 않고 구하고 기도하게 되었어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가복음 8:36~37) 주님의 말씀을 통해 그녀는 물적적인 삶에 치중하여 결국 건강을 잃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게 아닌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마땅히 더 많은 시간을 내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익한 일이고 나중에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어요. 자매님은 돈을 추구하는 것과 진리를 얻는 것에 대해 간파하게 되었고 그렇게 돈의 욕망을 뿌리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여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그녀의 병도 감쪽같이 다 나았어요. 이 모든 것은 자매님이 쉬지 않고 기도한 효과라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지금처럼 이런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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