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재난은 주의 재림 징조입니다. 예수님 재림을 맞이할 방법은?

지금 보면, 갈수록 큰 재난이 닥치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미 중국을 넘어 전 세계 20여 개 국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감염자 수는 37,567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813명으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사망 인원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9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5900개 이상의 건축물(2204 가구 포함)이 불에 탔으며, 33명이 사망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0억 마리에 이르는 야생 동물이 죽었고, 산불은 아직도 진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월 18일 ‘100년’ 만에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지역은 정전으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고 있으며, 많은 담수 생물이 죽었습니다. 2020년 1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홍수로 수만 명이 집을 잃었고 사망자도 60명에 이릅니다. 이처럼 연이은 재난과 달이 핏빛 같이 변하는 네 번의 현상을 보면서 주 안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뤄졌는데, 혹시 주님이 오신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직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어디 가서 주님의 자취를 찾아야 하는가?’

연이은 재난은 주의 재림 징조입니다. 예수님 재림을 맞이할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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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에 관해 우리는 말세에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께서 구름을 타고 가셨으니 오실 때도 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시록 1:7),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아직도 주께서 구름타고 오시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은밀한 재림입니다. 즉,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시록 16:1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누가복음 17:24~25)

이런 구절을 살펴보면 “도적 같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등의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말세에 주께서 재림하실 때, 조용하게 은밀히 오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자”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는 말세에 성육신하신 인자의 모습으로 은밀이 오심을 말합니다. 인자라 함은 사람을 통해 태어남을 말합니다. 부모가 있고 피와 살이 있는 몸으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는 구절도 말세에 주께서 인자의 모습으로 오심을 말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평범하고 범상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심지어 정죄하고 배척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또 많은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예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여 사역하실 때, 많은 사람이 그가 메시야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관념과 생각에 따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과 같습니다. 만일 말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모습인 영체로 오셔서 사역하시면 누가 감히 그를 인간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저버리겠습니까? 모두 땅에 엎드릴 것이니 하나님도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로써 말세에 주님은 성육신으로 은밀히 임하여 사역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마 말세에 주께서 은밀히 임하여 사역하시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겠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하나님의 예언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계획적이고 순차적으로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밀히 임하여 인류의 구원사역을 하신 다음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한복음 5:22) 이런 구절을 통해 말세에 하나님은 성육신으로 은밀히 오셔서 인류를 향해 말씀을 선포하시고, 심판하는 사역으로 그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속 사역의 기초에서 하시는 것으로, 인간의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하신 사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으로 죄는 속량받았지만 교만함, 간사함, 이기적 악독함 등의 사탄의 본성은 완전히 해결받지 못해 계속 죄를 범하고 다시 죄를 자복하는 상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세에 다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 사역으로 정결함을 받고 환난 전에 이긴 자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은밀하게 사역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지 않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거부하고 계속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정죄한 사람들은 말세 사역에서 드러난 가라지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통해 모든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착한 종과 악한 종, 진리를 사랑하는 자와 진리를 싫어하는 자를 나눈 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다음 주님은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열방에 보이시며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십니다. 그때면 성육신으로 재림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본인이 대적하고 내쳤던 분이 재림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면서 크게 후회하고 가슴 치며 이를 갈고 슬피 울 것입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예언이 온전히 이뤄지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시록 1: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밀히 오셔서 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통해 정결함을 받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주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성경 몇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이 구절에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는 내용은 주께서 말세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 주의 재림을 증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또한 주님은 그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맞이하시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유의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라고 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증언을 들으면 더더욱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 보고 하나님이 나타나 하시는 사역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듣는다면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간 것이자 주님의 재림을 맞이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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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그의 놀라우신 역사를 경험하고 축복받은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바로 왕의 제한과 통제를 이기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기꺼이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여 그의 자손이 큰 나라로 되게 하셨습니다. 욥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두 차례의 시험 앞에서도 굳게 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곱절로 받게 됐고,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주님이 자기 딸에게 들어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께 간구했고, 결국 믿음으로 말미암아 딸의 병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실한 믿음에 관한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야 직장에서 손해를 보거나 현실 생활에서 좌절을 당하거나 가정에서 힘든 상황을 겪게 되는 등, 많은 어려움과 연단을 겪어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으며, 굳세게 서서 참된 간증을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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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누군가는 ‘믿음’이라는 주제를 보면 매우 자신 있게 ‘나는 하나님을 100%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다.’ 또는 ‘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는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으니 주님께 회개하면 주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도 주를 향한 믿음이 아니겠는가?’ 혹은 ‘주님을 믿는 동안 나는 직장도, 가정도, 사업도 뒤로한 채 주의 일에 매진했다. 곳곳을 다니며 교회를 세웠고, 많은 고난을 받아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것도 주를 향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라는 등등의 말을 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는 신념은 진실합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주의 일을 위해 헌신하고 고난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그러한 것들이 과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실한 믿음을 상징할까요? 이 문제는 신실한 믿음과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토론하고 나눌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후, 예배는 물론, 전도 활동과 심방을 다니는 사역에 적극적이었고, 많은 고생이 따라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꺼이 육의 낙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저만큼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충성된 사람이며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과 가족이 아플 때, 아무리 기도를 해도 호전되지 않자 저는 낙담하고 실망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하나님께 왜 제 가족을 지켜 주지 않으시냐고 불평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제게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없음을 보게 됐습니다. 저의 믿음은 단지 가족이 평안하고, 몸이 무탈한 상황이 유지되는 조건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치 않는 상황이 닥치면 진정한 믿음의 분량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향한 제 믿음은 가여울 정도로 작고 자랑할 것이 못됨을 알게 됐습니다. 주변의 형제자매들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 행사나 회사의 일이 예배 시간과 충돌이 생길 때면, 자기 이익을 위해 예배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취직의 문제나 여러 가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면, 처음에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취직을 못하거나 상황이 잘 풀리지 않으면 주님을 원망하며 크게 실망감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고는 주변의 힘 있는 지인을 찾아 가거나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의 축복이 있을 때는 교회 일에 몹시 적극적이다가 집 안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거나 사업이 실패하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삶과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사실의 검증 앞에서 굳게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이 참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심을 인정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인정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상징하지 않으며,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이익을 취하는 기초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참되지 못합니다. 그럼 진실한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어떤 모습들이 진실한 믿음을 상징할까요?

진실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언제나 생명을 추구하고 너에게서 하나님의 사역이 행해지기를 추구하고, 또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알고 진리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네가 연단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 대해 의심이 생기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계속 진리를 실행하여 그를 만족게 하고, 깊은 곳에서 그의 뜻을 구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

이로써, 진실한 믿음이란 고난이나 연단, 좌절과 실패를 당하고 또는 몸과 마음이 큰 고통을 당하는 등 어떤 상황에 처해도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욥의 체험을 함께 살펴봅시다. 그럼, 진실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삭이 조금 자랐을 때, 하나님은 그 아이를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많은 사람의 생각과 잘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런 시험이 닥친다면, 무조건 하나님과 따지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선택은 모든 이의 예상을 빗겨 나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진심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려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세기 22:3, 9~10)

인간은 육에 속한 존재라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기면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프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따랐습니다. 그가 그렇게 이성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들 이삭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돌려 달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당연하다는 듯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며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더라도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진실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말리셨고, 그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크게 성하게 하여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2. 욥의 믿음

성경을 보면, 욥은 큰 부자였고 십여 명의 자녀와 많은 시종을 두었으며,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험과 공격으로,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었고 몸에 악창까지 났습니다. 이러한 시험으로 욥은 동방의 가장 큰 자에서 일전 한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였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비난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욥은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도리어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욥은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찾고 구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욥은 만사가 하나님께 달렸으니 자신에게 닥친 일도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욥은 수십 년의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소유한 모든 재산도 자기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다시 취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요건을 따지거나 불평하지 말며, 설령 자기 목숨을 취하신다고 할지라도 절대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욥의 간증 앞에서 사탄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고, 욥에게 곱절로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욥의 사례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갖추려면,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사를 주관하심을 믿으며, 피조물의 자리에 서고, 피조물로서의 이성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어떤 큰 시련이나 환란이 닥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 편에 서서 흔들림 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한 믿음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어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무신론 정권인 중국 정부의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가혹한 고문과 중형에 처해져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도 진실한 믿음을 갖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 가족이나 친구에게 버림받고, 혹은 여러 가지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따라가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진실한 믿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비춰 볼 때, 우리 자신은 과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까요? 대부분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100% 인정하는 믿음, 주님을 위해 전도하면서 고난을 조금 받고 정도의 믿음만 있을 뿐, 진실한 믿음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생기는가

그러므로, 진실한 믿음을 갖추려면 매일 마주하게 되는 사람이나 일 속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자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이 마련하신 상황이 아무리 내 뜻에 맞지 않고, 내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나아가 그런 환경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고심을 알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겪어 나가면 우리는 늘 얻는 것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도 진실한 믿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욥의 믿음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주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을 때, 조금씩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을 본받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려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어떤 고난이나 시험이 닥쳐와도, 우리의 육체나 마음이 몹시 괴로운 일을 당해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이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하나님의 주재와 섭리에 순종하며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님의 약속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0)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지 감추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의도적으로 어느 누군가를 피한 적도 없고, 스스로를 숨긴 적도 없다. 도리어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공개되어 있고, 숨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마주한다. 또한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 행해진다. 그는 이런 사역들을 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고,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인도하며 공급하고 있다. 좋은 환경이든 열악한 환경이든, 각 시대와 각 단계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다. 그의 생명이 쉼 없이 사람에게 공급되고 사람을 붙들어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은 감추어져 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살고 있고 하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이해해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자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면 바로 그의 결말이 임박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성품에 의해 심판받고 정죄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의식적인 협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 자기 마음속으로 상상한 하나님과 관념 속의 하나님,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만 믿는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또한 그에게 등을 돌리고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기 좋게 꾸미고 포장한다. 이러면서 자신의 믿음이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자신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 자신은 이들과 무관하며, 이들을 인도하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관념과 상상,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 내린 규정들이다. 일단 이들이 참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이들의 행위와 믿음과 추구하는 것이 정죄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깨닫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하며 기도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차라리 하나님이 허구적이고 공허하며 막연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차라리 하나님이 그들이 상상한 바와 똑같아서 그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끝없이 채워 줄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을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도록 하고, 축복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축복을 내리도록 하며, 역경이 닥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담대함을 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도록 말이다.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은혜와 축복의 범위에만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역시 상상과 글귀상의 말에만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또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 자신을 분명히 보고 싶어 하며, 하나님의 성품, 소유와 어떠함을 확실히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정복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바란다. 이 사람들은 심혈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마련해 준 환경과 하나님이 배정한 사람과 일, 사물들을 체험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구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본질을 가장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체험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참된 일면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확실히 거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생겨 그들이 더 이상 상상과 관념 속에서, 막연한 상태에서 살지 않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사람의 체험 과정에서 언제든 필요하고, 사람에게 평생토록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더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두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보이는 태도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싶고 하나님 자신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고 싶고 하나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차라리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패권을 다투고, 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심지어 부인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참된 하나님 자신이 자신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상상과 야심을 충족시키길 원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집과 생업까지 버릴지라도 악행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저지른다. 심지어 제물을 훔쳐 먹는 자들, 제물을 함부로 쓰는 자들도 있다. 또 어떤 자들은 뒤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어떤 자들은 지위를 이용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며 사람이나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여러 가지 방식과 수단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사람을 통제할 생각만 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고의로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대하게 한다. 이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저는 패괴된 사람입니다. 저 역시 패괴되어 교만하니 저를 우러러보지 마세요. 제가 일을 잘했다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이 저를 높여 주셨기 때문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무척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인 적도, 증거한 적도 없다. 그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껏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이라는 주제에 나오는 단어들은 간단해 보이지만 각자가 받는 의미는 서로 다른 것이다. 걸핏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죄일 것이고, 진리와 실제를 추구하고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기에 너희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멍해지면서 반발심이 잔뜩 생겨난다. 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주제라고 느낀다. 그 이유는 이는 그들에게 무척 유익한 주제로, 그의 생명 체험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자, 핵심 중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믿는 근간이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 주제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새겨듣고,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네가 이 주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취급하며, 어떻게 깨닫든지 간에 결코 이 주제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출처: 하나님의 약속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나요

3.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인지 가늠하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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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화 – 기다림 – 명장면(5)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것인가? (상)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것인가 (상) – 기독교 간증 영화 – 기다림 – 명장면(5)

출처: 하나님의 약속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뜻

≪주 예수의 사랑ㆍ사명≫이란 단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로마 병정에게 심하게 맞으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힘겹게 십자가에 못 박힐 그곳까지 걸어가시는 모습에 눈물이 멈출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채찍이 박힐 때마다 상처로 흘리는 피를 봤기 때문입니다. 골고다로 향하는 그 길도 주님의 보혈이 깔려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깊고 크셨습니다! 창조주 말고 어느 누가 인류에게 이렇게 깊고 큰 사랑이 있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예수님은 왜 그렇게 크나큰 수모와 육신의 고통을 받으시면서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을 가셨을까? 거기에는 전 인류를 속량하시는 것 말고도 또 어떤 뜻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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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어떻게 사탄의 시험을 멀리 할 것인가?

욥기 1장 4~5절에서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볼 때마다, 저는‘욥은 그토록 부유한데 왜 자식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지 않았을까?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일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욥은 그 당시 어떻게 생각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서야, 욥이 그렇게 한 뜻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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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최고의 찬송가 연속 듣기 — 경배 찬양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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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경 _ 마태복음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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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예수님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을 알려주신 구절입니다. 즉, 우리는 침노해야 천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큰 소망은 들림 받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럼, 침노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 14절에는 거룩함이 없이는 주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며, 패괴된 성품에서 벗어나 정결함을 받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사역하고 헌신하고 많이 버리고, 복음을 잘 전하면 천국에 갈 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그것으로 충분히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사역하는 데에만 치중했던 바리새인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침노했던 것은 이런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을 주님은 외식하는 것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오직 겉으로 고생을 좀 한 것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는 범사에 주의 뜻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흡족게 하기를 추구했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분명 천국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침노하며 나아갔던 방향을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주의 말씀에 따라 주의 도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 안에는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오랫동안 많은 사역을 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더럽기 짝이 없다면, 네가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도 거룩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패괴된 더러운 인간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에 데려가시려는 사람은 바로 구원받아 정결케 되고 변화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우리는 그의 뜻에 따라 추구하며 그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결함 받고 온전케 되어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천국에도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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