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권위와 명성을 가진 대표적인 책으로 인류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문명의 역사에 발을 내디디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걸출한 인재들은 다 성경에서 유익한 점을 얻었고 아울러 성경은 인류의 과학, 교육, 문학, 법률, 경제, 민족 등의 영역에서도 깊고 넓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 안의 많은 인생 철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의의있는 인생을 찾게 하였고 사람에게 인생의 방향을 가리켜주었습니다. 성경에는 상제―하나님이 전에 하셨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책에 신비한 베일을 씌워놓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이 신비한 대문을 열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구름 사이에 은밀히 계시는 지극히 거룩한 자를 알기를 바랐고 나아가 이 책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성경공부]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공부]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요? 도대체 어떤 힘이 그것으로 하여금 정세 변화가 다단한 유구한 역사에서 이토록 오래 쇠퇴되지 않게 하였을까요? 어떤 힘이 그것으로 하여금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을까요?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요? 그것은 신비한 색채로 가득하고 또 논쟁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성경 속에 이렇게 많은 비밀이 묻혀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전부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게시를 보도록 합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그중에는 허다한 옛 선지자의 예언이 기록되었고 여호와가 당시에 역사한 얼마간의 말씀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이 책을 ‘거룩하다’고 본다(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이 책을 이렇게 칭한 것은 단지 피조물이 조물주에 대하여 경모하는 마음이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천서’라고 칭하였다. 사실, 이 책은 다만 사람의 기록일 뿐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친히 지도하여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성’경이라 칭한 것은 다만 이 책에 대한 사람의 존칭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함께 연구 토론한 후 또 함께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사람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ㆍ사도ㆍ예언자들이 기록하고 후세 사람이 수집하여 종합 편찬한, 사람이 보기에 아주 거룩한 고서이며, 또한 사람이 보기에 이 가운데는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비밀이 있고 후세 사람이 풀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더욱더 이 책을 ‘천서’라고 여기게 되었다. 성경 신약 중의 4복음서 및 ≪계시록≫을 더하니 이 책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떠한 책보다도 더욱 같지 않았다. 이리하여 한 사람도 이 ‘천서’를 감히 분석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모두 이 책이 너무 ‘신성’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비록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이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긴 원칙과 근대의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경력이 많이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진실한 보임과 인식도 기록되었다. 이런 것은 모두 본시대에서 참 도를 추구하는 사람의 참고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경을 보아도 사람이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허다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도는 모두 역대의 선지자 사도가 경력한 성령 역사의 생명의 도이고, 또한 허다한 언어는 상당히 진귀하여 사람의 필요한 바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람은 다 성경을 보기 좋아한다. 또 성경에 은밀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그 어떤 영적 위인의 저작에 대한 견해와도 같지 않았다. 성경에는 신ㆍ구 시대에 여호와ㆍ예수를 섬긴 사람의 경력과 인식이 기록되고 수집되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이 이 책에서 많은 깨우침ㆍ빛비춤과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저작보다 훌륭한 까닭은 바로 영적 위인의 어떠한 저작도 다 성경에서 취재한 것이며 그들의 경력이 다 성경에서 온 것이고 또한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성경이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비록 성경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이 부류의 책과 같은 일부분 생명의 말씀의 책들이 수집되었고 또한 사람이 이런 책에서 공급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여전히 옛 시대의 책이다. 그들의 이런 책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한 시기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영원토록 남아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ㆍ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고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이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응될 뿐 마지막 때의 국도시대에는 적응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도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국도시대의 성도에게는 공급할 수 없으며,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바로 여호와의 창세의 사역처럼, 또 여호와의 이스라엘에서의 사역처럼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나갈 때가 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도 없다. 십자가의 사역이 어떻게 설득력이 있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달할 수 있든지, 사역은 어쨌든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쨌든 시대이다. 사역은 언제나 한 기초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생명의 말씀’ 즉 ‘사도 서신’ ‘4복음서’를 오늘에 가져오니 모두 역사(歷史) 서적으로 되었고 모두 노황력(老黃歷)으로 되었다. 이러한 노황력이 어찌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러한 노황력이 아무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아무리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시는 그 노황력을 미신하지 말라고 한다. 이 노황력은 너무 ‘낡아서’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고 너의 짐으로만 될 뿐이며,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고 새로운 진입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를 낡은 종교당으로 이끌어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뒷걸음치는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우리는 성경이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까닭은 이 ‘성경’ 책이 너무나 ‘신비’해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것이 다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하셨던 사역이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가 이 역사 서적에 신비로운 색채로 가득하게 하였고 신비한 힘이 있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 고서를 더없이 숭배하고 오직 이 책에서만 지극히 거룩한 자를 알 수 있고 오직 이 책에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을 숭배할 뿐 실질적인 문제는 소홀히 하였습니다. ‘성경’이 아무리 ‘신비’한들 그것이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성경만 잡고 놓지 않는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사람의 ‘믿음’이 이토록 무력해보이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 여겨진 성경도 무능해보입니다!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시기에 어떠한 인사물도 하나님의 고유한 지위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마치 해와 달이 바뀌는 것처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를 이 성경 책 속에 규정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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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예언은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예언의 참뜻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영적인 위인들조차도 예언을 추측하고 추정할 뿐이지, 이해하고 있는 것과 예언에 담겨 있는 참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예언)을 마주하여, 우리가 예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베드로후서 1:20~21),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베드로후서 3:16),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린도후서 3:6)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언은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야만 비로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머리와 상상에 의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 바로 자기 뜻을 고집하며 문자 의미대로 예언을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언을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언을 잘못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남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현혹시키거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은 메시아 강림의 예언을 대할 때 자기 뜻대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세상에 오시기 전에, 유대 바리새인은 이사야 7장 14절, 9장 6절 및 미가 5장 2절의 예언대로 주님이 오실 때의 상황을 머리에 다 상상해 놓았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왕궁에서 자라고,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예언이 이루어졌을 때, 이는 사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언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한 마리아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예수라 지었고, 나사렛에서 태어나 목수의 집안에서 자랐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는 예언의 문자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욕하며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어 영원히 주님의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리새인이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머리로만 상상하고, 예언의 문자 의미에만 매달렸던 것이 그들이 실패를 초래한 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성경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2천년이 흐른 지금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바리새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며 주님의 재림에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아주 많아서 우리가 성경의 문자 의미대로 이러한 예언들을 해석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어떤 예언에는 주님이 밤중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계시록 16:15, 마태복음 25:6 참조). 우리는 문자 의미대로 주님이 밤중에 오셔서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독교인들은 밤에 자면서도 외투를 입고서 주님이 오셨을 때 단정한 모습으로 들림 받아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언에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다고 나와 있습니다.(계시록 1:7 참조) 우리는 또 문자 의미대로 주님이 대낮에 구름 타고 오셔서 만인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또 온종일 고개를 쳐들고 구름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공중의 구름을 타고 우리 가운데로 내려오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종 상상들이 정말 너무 많습니다. 그럼 대체 주님은 어떤 예언을 이루실까요? 여기에는 모두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상상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원칙과 하나님의 뜻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준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너의 관념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기 머리로 주님이 오실 장면을 상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우리도 모르며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이루셨을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모릅니다. 일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은 할 수 있었을지라도 그들도 예언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대해 우리는 자기 머리로 상상하며 맘대로 해석하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겸손히 구하면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주님의 재림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당초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베드로, 요한, 나다니엘 등이 메시아를 영접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진리를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권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메시아의 재림이라고 단정짓고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의 문자에 매달리지 않았고, 예언의 문자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떻게 오셔야 한다며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들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성공적으로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겸손히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증거하면 예언의 문자 의미와 다르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거절해서는 안 되며 직접 구하고 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됩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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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요약]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구약성경 요약]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성경 요약]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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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요약]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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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니고 날아다니던 새들은 만남의 장소인 나뭇가지 위에 모여 앉아 지저귀며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가정 교회의 집회장소에 설교자 이선, 친구 양민(지방에서 사역하는 동역자)과 함께 사역자 회의에 참석러 왔다. 회의 중에 그들은 구원과 천국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이선이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주께선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우린 이제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으며,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태까지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거룩하시다는 건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우리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원만 얻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 동역자가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여기서 예수께서는 주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모든 죄를 사함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면 우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마건이 말을 이어받았다. “아멘! 서 동역자가 한 말이 맞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수금이 일어나 의문을 제기했다. “예수님께서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하셨겠습니까?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의식중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 양민이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우리는 예수의 구원으로 더는 죄에 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죄가 없다거나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타락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말했었죠.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18~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죠. 바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 무의식중에 죄를 범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없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24)라고 했죠. 바울의 고민이 바로 주 안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민입니다! 우리에겐 오만함, 이기심, 간사함, 탐욕, 사악함 등 여러 가지 사탄의 독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흐름을 좇고, 지위나 부, 명예를 추구하고 죄 속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찌 천국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리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아직도 죄 속에 살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이 말에 따르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죄가 없는 것이고,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

양민이 설명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던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 받을 대상이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몰래 제물을 훔쳐먹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겁 많고, 음탕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정죄받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또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자들은 형벌도 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6~27)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좋아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수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그리스도에게 그 어떠한 편견도, 거역도, 대적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선이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는 말씀이에요.”

서 동역자가 반박했다. “예수의 속죄제는 영원히 유효한 거예요.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된다고요! 양 자매님, 지금 예수의 구원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그럼 자매님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신 겁니까? 한번 말씀해 보세요!”

양민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형제자매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주 예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여러분이 순수하게 주의 구원을 이해하길 바랄 뿐이에요. 구원과 관련해서 제가 아는 걸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율법시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따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사람들은 율법만 지키면 정죄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율법 말기,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저는 소와 양, 비둘기를 여호와의 제단에 올리기도 했죠. 사람들의 죄는 점점 커졌고, 속죄제를 통해 속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모두가 율법의 정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었죠. 하나님께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고, 율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인간의 죄는 사함 받아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지 않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정의에 대해 어느 한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는 자는 속량받았고, 죄에 속하지 않고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모두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역사와 이상 2> 중에서)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을 얻으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로부터 우리는 죄에 속하지 않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는 본성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계속 하나님께 대적하고, 거역하곤 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주께 완전히 구원받지 않았으며 영원히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며, 서서히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된 사람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층 무거워진 어투로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양 자매님 말이 맞아요. 주께선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이지, 우리는 여전히 죄악 속에 살며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린 정말 하나님께 완전히 구원받지도 않았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부족한 것 같군요!”

[구원이란]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양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성경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6),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 34~3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직 정결케 되진 않았습니다. 주님을 뵙거나 천국에 들어가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때 안수금이 일어나 말했다. “양 자매님, 방금 교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정결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정결함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결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자매님 의견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양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 성경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성경에서 보았듯이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 사역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겨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앞에 쓴 말씀> 중에서), 『심판하고 형벌하는 이번 단계의 사역으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패괴된 본질을 완전히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에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주어진다.』(<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 중에서) 예수는 구원의 사역만 행하셨을 뿐 인간의 죄를 완전히 해결해주시진 않았습니다. 오직 말세의 심판 형벌 사역만이 사탄의 권세 안에 있는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주고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주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겨주어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주실 겁니다. 그런 사람만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5),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옷을 깨끗이 씻고, 거룩하며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바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수금이 기뻐하며 일어나 말했다.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얻긴 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은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씻겨지지 않아 예수께서 재림을 통해 행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군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이선이 기뻐하여 일어나 말했다. “형제님, 자매님, 오늘 토론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찾고 정결함을 받아 천국에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일 집회에서 계속 교통하도록 해요! 양 자매님도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양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잘 됐어요!”

이때, 집회장소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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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가 매우 좋아 친한 자매님 두 분과 함께 걸어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 한 자매님은 우리에게 기쁘게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주님을 우리 집에 오시게 하면, 평안과 축복을 얻을 수 있어요. 당신의 병을 치유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더 큰 복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 같은 신자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요. 이는 매우 큰 복이요.” 자매님이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신이 나서 고개를 계속 끄덕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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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름에 숨겨진 비밀]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가? 하나님 이름의 의의는 무엇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사역을 해야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기에, 하나의 이름이나 두 개의 이름 또는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어느 이름으로 불리든 다 그 자신이 자유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또 너, 피조물이 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데에 따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사람이 개괄할 수 없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그러므로 각 시대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역사하려고 할 때, 그는 시대에 부합되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갖춘 특정된 그 이름으로 그 시대의 하나님 성품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이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 이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바꿀 리가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인 것이다! 네가 말해 봐라, 단지 ‘예수’라는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어느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다 개괄할 수는 없고, 어느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그 많은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전부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풍부해서 그야말로 다 인식할 수가 없다. 사람은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을 전부 다 개괄할 수가 없다. 인류는 다만 얼마간의 유한한 어휘로써 사람이 인식한 하나님의 성품, 즉 위대, 존귀, 기묘, 난측(難測), 지고지상, 거룩, 공의, 지혜 등등을 개괄할 뿐이다. 너무나도 많다! 이 몇 개의 유한한 단어만으로는 사람이 본 유한한 하나님의 성품을 다 묘사해 낼 수도 없다. 후에 또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격정을 한층 더 표현할 수 있는 얼마간의 말을 더하였는데, 즉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다!”라는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이러한 것과 유사한 인류의 언어가 절정에 이르렀어도 사람은 여전히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에게 많은 이름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는 또 이름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시가 매우 많지만 사람의 언어가 또한 너무 결핍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특정된 단어와 특정된 이름만으로는 전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러면 네가 말해 봐라,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마다 그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는가?』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하나님 이름에 숨겨진 비밀]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가? 하나님 이름의 의의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여호와의 이름이 또 예수가 되었는가? 메시아가 오리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어찌 바뀔 수 있었는가? 그런 것은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닌가? 설마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어제의 사역도 바뀔 수 있었고, ‘여호와’의 역사도 ‘예수’가 이을 수 있었는데, ‘예수’의 사역을 또 다른 사역으로 바꾸어 이어 갈 수 없겠는가?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었는데,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초래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역사가 어떻게 변하든, 또한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 너의 식견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너는 예수, 이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이니 하나님은 영원히 예수라고 해야 하고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너는 ‘예수’, 이 이름이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마지막 시대도 끝마치는 이름이라고 자신 있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누가 ‘예수’의 은혜가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가령 하나님이 각 시대에서 하는 사역이 다 같고 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면, 사람은 어떻게 인식하겠는가? 하나님이 여호와라고만 불려야 하고, 여호와라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혹은 하나님이 예수일 수밖에 없고, 예수란 이름 외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고, 예수 외에는 여호와도 하나님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또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기에 그를 예수라고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너는 규례를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한 범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에서 하나님이 하는 사역, 불리는 이름, 지니는 형상, 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지금까지 조금도 규례를 지키지 않고 조금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여호와이지만 또한 예수이고 또한 메시아이며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차츰차츰 바뀌고 그의 이름도 상응하게 바뀌므로, 어느 한 이름도 그를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릇 그가 불리는 이름은 다 그를 대표할 수 있으며, 각 시대에 그가 하는 사역은 다 그의 성품을 대표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하나님은 각 시대에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가 어찌 다른 시대에 같은 사역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옛것을 지키겠는가? ‘예수’, 이 이름은 구속 사역으로 인해 불린 이름인데, 말세에 예수가 재림하여 또 그 이름으로 불리겠는가? 또 구속 사역을 하겠는가? 왜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 오히려 다른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가? 모두 사역하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단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전부를 다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한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시대성을 갖춘 성품만 대표할 뿐이고, 사역을 대표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성품에 적합한 하나의 이름을 택하여 전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그러므로 한 번 오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하나의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는데, 하나의 이름은 한 단계의 새로운 출로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끝마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해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하며,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고 신기원을 개척하고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을 가져오고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더 많은 내용 보기:하나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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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기록연대]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신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 기록에 따르면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3:2)라고 외칠 때, 그의 사역을 성령께서 수호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옹호했으며 영향력도 아주 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역하실 때도 천국의 복음과 회개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신분이고 세례 요한은 그저 선지자에 불과합니까? 예수님의 신분과 세례 요한의 신분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면에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기록연대]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신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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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 예언]“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의 참의미를 아시나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계 3:20) 이 예언은 주의 재림에 관한 것으로, 돌아오신 주님은 우리의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두드릴까요?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돌아오신 주님은 어떻게 문을 두드리시는가

[예수님 재림 예언]“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의 참의미를 아시나요?

돌아오신 주님은 어떻게 문을 두드리실까요? 이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예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계 3:20) 보다시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만이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오신 예수님은 어떻게 음성으로 문을 두드리실까요? 사람의 상상대로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며 당신이 왔다고 우리에게 알리실까요? 사실 주님은 벌써 답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그리고 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7번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통해 보면 돌아오실 주님은 교회에 하실 말씀이 있고 진리로 사람에게 공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훈계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주님이 말세에 오시어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두드림의 실제 함의입니다.

주님이 문밖에서 두드리실 때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가

말세에 주님이 오시어 어떻게 문을 두드리시는지를 알았다면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가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그리고 계시록 3장 20절에서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을 맞이함에 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말씀 선포를 증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 주는 사람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이 맞는지, 진리를 선포하셨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이 맞으면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따라야만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맞이해 어린양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당시의 베드로, 욥 등 제자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와 능력이 있고 시시로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고 당신이 곧 오실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고 주님을 따랐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진리를 얼마나 선포하고 그 말씀이 얼마나 권세 있고 능력 있든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서 꼬투리를 잡아 최종적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돌아오실 주님을 맞이함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꼭 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놓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이 재림하셨다고 증거할 때 그 내용이 하나님의 음성이 맞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맞다면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문을 두드리셨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만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증거하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말세 심판 사역을 하고 있고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선포하셨고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보는 자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이며, 그 권세와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들어 보시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나는 열국에 크게 진노하고 온 우주에 공개할 행정을 반포할 것이다. 이를 위반하는 자는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내가 온 우주를 향해 말을 할 때 모든 이가 나의 음성을 듣는다. 즉, 온 우주 아래에서 행한 나의 모든 행사를 보는 것이다. 나의 뜻을 거스르는 자, 다시 말해 사람의 행위로 내게 맞서는 자는 나의 형벌 속에서 쓰러질 것이다. 나는 하늘의 뭇별을 모두 새롭게 바꿀 것이다. 나로 인해 해와 달도 새롭게 바뀌어 더 이상 예전의 하늘이 아닐 것이며, 땅의 만물도 새롭게 바뀔 것이다. 이는 나의 말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온 우주 아래의 열국을 다시 나누고, 나의 나라로 바꿔, 땅에 있는 나라를 영원히 소멸시키고 나를 경배하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또한 땅에 있는 나라는 모두 멸하여 존재하지 않게 할 것이다. 온 우주 아래에 있는 사람 중 마귀에 속하는 자는 모두 멸함을 당할 것이며, 사탄을 경배하는 모든 자들은 나의 불사름 속에서 쓰러질 것이다. 즉, 현재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종교계는 내가 만민을 형벌할 때 각각 다른 정도로 나의 나라로 돌아올 것이고, 나의 행사로 말미암아 정복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흰 구름을 탄 거룩한 자’가 이미 왔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나눠지고, 각자의 행위에 따라 그에 맞는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는 모두 멸망할 것이나 땅에서의 행위가 나와 관련이 없는 자는 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땅에 존재하고, 아들들과 백성들의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만국 만민에게 나타나고, 땅에서 친히 음성을 발할 것이며, 나의 대업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여 모든 사람이 이를 직접 목도하게 할 것이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이 말씀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신분으로 인류에게 하신 것으로,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가득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느 누가 전 인류를 향해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전 우주를 향해 하나님의 행정을 공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외에 어느 누가 천지를 바꾸고, 어느 누가 인류를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아니고는 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신분과 지위로 인류를 향해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마음과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구절마다 그 권세와 능력과 위엄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향해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이 오셨음이 증명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은 전 인류가 찾아볼 수 있도록 온라인상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며, 신랑이 오셨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권세와 능력이 있든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알아보지 않는다면 미련한 처녀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알아들었다면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 어린양의 자취를 바짝 따르는 것이고 잔치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

편집자 코멘트: 이제 계시록에서 말하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의 참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문의할 내용이 있으면 아래 온라인 채팅 창구를 통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24시간 온라인으로 답변해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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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함께 탐구하며 이야기 나눠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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