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재림]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오십니까?

하나님 말씀 답: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바로 사람과 수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바로 구주 예수가 여전히 사람의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로 되어, 언제나 사람에게 노를 발하지 않고 사람을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 여전히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부터, 그를 따르던 제자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도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였고 그를 기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오리라”고 한 말씀이 ‘응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기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 지극히 높은 자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그가 여전히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기대하던 인류 가운데 강림하여, 그들에게 나타나서 양식을 베풀어주고, 그들에게 생수를 부어주며, 은혜와 자애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는데 매우 생생하다는 등등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에서 여긴 것이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전혀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람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거룩한 구주 예수가 비록 자애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지만 그가 또 어찌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고 줄곧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는 자애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그가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 뿐, 그가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한, 권세를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의 돌아옴을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케 하였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오히려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에서 발췌

[예수재림]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오십니까
[예수재림]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오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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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순종]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 창세기에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세기 22:2~3)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창세기 22:9~10)” 성경에 익숙한 분이라면 다 알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일 때,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을 주었고 이름은 이삭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는 고통을 참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그의 행위를 제때에 제지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일에서 하나님의 행사는 측량할 수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삭의 목숨을 가져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관념으로 ‘사람이 불신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들을 주셨다가, 사람이 아들을 얻은 후에는 또 바치라고 하신 그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 걸까?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뭘까?’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는 상황에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지만, 또 무조건적으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그 일은 지나친 것일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일은 지나칠 뿐만 아니라 또 좀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지나치지 않다고 여겼다. 비록 아브라함도 여러 생각이 좀 들었고, 하나님에 대해 의심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이삭을 바치려고 준비했다. …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그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보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보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했을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정말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아브라함이 전에 우매했든, 무지했든, 하나님을 오해했었든, 어찌 됐든, 그때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었고 *정직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아들 이삭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 했다. 하나님은 그에게서 순복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다. … 비록 그 일은 단지 시련과 검증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기쁨과 위로를 느꼈고, 하나님에게 드린 사람의 사랑을 느꼈으며, 사람에게서 오는 전에 없던 위안을 느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멈추게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삭의 목숨을 취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아브라함에게 그 행위를 멈추게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순복은 이미 검증을 통과했으며, 그가 한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려고 했던 일에서 이미 결과를 본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고 원했던 것이며, 하나님이 보려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으냐?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시험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바랐던 것을 보았다. 곧, 아브라함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고, 아브라함의 순복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 ‘무조건적’이 바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순종]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은 정말로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복을 검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너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겨우 얻은 아들인데 하나님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사역과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마주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지 아닌지, 절대적으로 무조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련이 아브라함에게 임했을 때 그의 마음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기 아까웠지만 결국 고통을 참으면서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모든것-아들을 포함해서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 돌려주는 것은 하나의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얻으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복은 하나님의 검증에 통과했고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를 얻었습니다. 최종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생명을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브라함의 후예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할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실 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사람의 모든 것을 박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믿음을 검증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진심과 절대적인 순종을 얻고 최종에 사람이 하나님의 허락과 축복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허락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주위에 시련을 안배하여 검증하고 온전케 하여 점차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종에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중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과 경외가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고심을 알게 되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서 어떤 시련과 연단을 안배하든 다 받아들이고 순복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의 위로를 얻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련과 검증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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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간증]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자정 즈음 하늘에 밝은 달이 떠있고 부드러운 달빛이 창문을 통과하여 해월의 침실을 비추었습니다. 해월은 침대에 누워 계속 이리저리 뒤척이며 아무리 잠을 청해 봐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해월은 낮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기분이 울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땅을 팔아 그 돈을 작은 삼촌네에 더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해월은 지금까지 시어머니가 줄곧 작은 삼촌네 가족을 편애해온 것을 떠올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맛있는 것, 좋은 것들은 항상 작은 삼촌네에 주었고, 아이를 돌봐주거나 밭일을 도와주는 등 모든 면에서 다 그 집을 잘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해월의 가족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해월이 농사일로 바쁠 때 시어머니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거절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어린 자식 둘을 일터에까지 데리고 다녔습니다…. 해월이 시어머니에게 제대로 못한 것도 아니고 효도하고 책임을 다했는데도 시어머니는 왜 그렇게 편애가 심한 걸까요? 오늘은 땅을 판 돈을 작은 삼촌네에 나눠주기까지 했습니다. 해월은 생각할수록 화가나고 시어머니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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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재앙]예수님은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로 오셔서 역사하신다고 친히 예언하셨습니다

성경 참고: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4~2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계 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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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에 예언]계시록 5장 1절에 기록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에 대한 답을 찾다

우밍은 오랫동안 주님을 믿어 온 경건한 크리스천으로 성경 보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성경 계시록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녀는 예언의 진정한 의미를 몹시 알고 싶어 합니다. 하루는 계시록에서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시록 5:1) 이 구절을 보았을 때,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계시록에 예언된 책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성경을 가리키는 걸까? 책의 내용은 성경에 있는 걸까 아니면 성경 외의 다른 내용일까?’ 그녀는 또 다니엘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다니엘 12:4) 우밍은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라는 구절을 보면서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감추어져 있고 봉함되어 있는 책을 찾고 알아보며, 더 많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구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또 ‘성경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되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기만 하면 내용을 알 수 있는데, 말세에 구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말한다면 계시록에 예언된 봉함되어 있는 책은 성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오랫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누가 설교를 하든 예언된 책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옳을까?’ 그래서 그녀는 책은 틀림없이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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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성경말씀]성경의 저자는 누구이며,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2017년 12월 4일 맑음

저녁에 인터넷으로 성경을 검색하고 있을 때, 놀라운 소식을 알게 됐다. 바로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주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나는 성경을 적잖이 읽었고, 전국 각지의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주장은 그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목사가 설교할 때 언급한 말이 생각났다. “성경은 40여 명의 저자가 각각 다른 시기에 썼지만 그들이 쓴 내용에는 전혀 오차가 없습니다. 이 점으로 보면, 하나님은 성경의 진정한 저자이고, 성경은 모두 성령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망연해졌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2017년 12월 8일 맑음

약속한 성경 공부 시간이 되기 전부터 나는 일찌감치 인터넷에 접속하고 기다렸다. 설교하는 자매님이 인터넷에 접속한 것을 보고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성경의 저자는 대체 누구죠?” 내 질문은 다른 형제자매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모두들 이 문제를 분명하게 알고 싶어 했다. 자매님은 듣고 나서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모두가 질문한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해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하지만, 이 부분의 진리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해요. 성경은 정말 완벽하게 정확하고 오차가 없을까요?”

자매님의 질문은 고요한 호수에 떨어진 한 조각의 돌멩이처럼 삽시간에 파문을 일으켰다. 몇 명이 잇따라 의견을 내놓았다. “성경은 당연히 오차가 없어요.” 그중 한 형제님은 틀림없다는 듯 강조했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이 묵시하신 것으로 한 글자 한 마디 모두 오차가 없어요.” 그러나 그다음 자매님이 우리에게 찾아준 성경 구절을 보고 우리들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마태복음 26장 34절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기록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마가복음 14장 3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 두 성경 구절에서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것은 한 가지 사건이고, 모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시간 상 명백한 오차가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유다의 사망도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주장이 있었다. 하나는 마태복음 27장 5절 말씀이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 1장 18절 말씀이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마찬가지로, 이 두 성경 구절에서 기록한 것은 모두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후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것이지만 유다의 죽는 방법이 다르다. 자매님이 말했다. “만약 성경이 모두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라면 오차가 전혀 없어야 해요. 하나님의 역사에는 오차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죠. 사실에서 보듯이, 이런 기록은 모두 저자 본인에게서 나온 것이지 성령의 묵시가 아니에요.”

이 사실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도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경에 어떻게 오차가 있을 수 있을까? 정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위로 성경말씀]성경의 저자는 누구이며,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위로 성경말씀]성경의 저자는 누구이며,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자매님은 우리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계속 이어서 말했다. “제가 여러분께 두 단락을 읽어드리면 더 잘 이해하실 거예요. 『신약 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첫머리에는 예수를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다윗의 자손, 그리고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고, 뒤에 가서는 또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낳았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도, 아브라함의 후손도, 다윗의 자손도 아니라는 말이지만, 족보의 기록은 예수와 요셉을 억지로 엮어 놓았다. 족보의 뒷부분에는 예수가 강생한 과정이 기록되었는데, 계속해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족보에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족보는 예수를 위해 쓴 것이므로 42대 인물을 요셉 세대까지 기록한 후에 바로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인데, 그러면 앞뒤가 모순되지 않는가?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이 분명히 요셉 가문의 인물들이므로, 그것은 요셉의 족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의 족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그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마태가 쓴 족보 같은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가? 그것은 더욱 황당한 말이다! 이러면 너는 그 책이 온전히 성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만일 4복음서가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왜 당시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이 네 사람이 예수가 한 사역에 대해 말한 것이 서로 다른가? … 4복음서를 잘 보아라. 예수가 한 일과 말씀에 대해 그들이 기록한 것을 좀 보아라. 그야말로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제각기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일 책의 저자가 쓴 것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같아야 하고 통일적이어야 하는데, 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 밝히 보지 못한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예수가 한 말씀을 듣고 예수가 한 사역을 보았던 누가와 마태는 자신의 인식을 말했는데, 그것은 예수가 한 사역의 일부를 회고록처럼 기록한 것이다. 너는 그들의 인식이 완전히 성령의 계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매님이 읽어준 두 단락의 말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그 말들은 구구절절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 어떻게 족보가 있을 수 있는가. 마태가 나열한 족보는 요셉의 것이 분명한데 억지로 예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니 너무 황당하다! 게다가, 이런 족보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신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한복음 8: 58) 나는 마음이 갑자기 환해졌다. 마태가 나열한 그 족보는 분명 성령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인의 생각이었다.

이때 한 형제님이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성경에 어떻게 오차가 있을 수 있죠?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성경을 정독했는데, 이 문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정말 믿기 어려워요.”

자매님이 온화하게 물었다. “형제님, 그럼 제가 하나 질문할게요. 3년 전에 일어난 일을 형제님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큰 사건이라고 해도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기억할 뿐 모든 세세한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해요, 그렇지 않나요?” 형제님이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자매님이 말했다. “성경에 오차가 있는 것도 이것과 같은 성질이에요. 이 두 단락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4복음서가 성령의 계시가 아니라 사람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라서 오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누가복음 1장 1~2절 말씀과 같아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이를 보면, 4복음서는 저자 본인이 보고 들은 것이고, 어떤 것은 설교자가 설교한 것과 본인이 고증한 후에 쓴 것이지, 하나님이 직접 그들에게 묵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4복음서는 저자가 본인의 기억과 다른 사람이 전한 것을 듣고서 쓴 것이기 때문에 오차가 생기고 사람의 뜻이 섞이는 것이 불가피해요. 여기서 우리는 분명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두 시간의 성경 공부가 금방 끝났다. 오늘은 시간이 무척 빨리 가는 것 같았고, 풍성한 수확도 얻었다. 이런 성경 공부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 열심히 믿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은제

[위로 성경말씀]성경의 저자는 누구이며,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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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반가운 소식, 복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는데, 혹시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성경’은 마지막에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원한 복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글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이란 반가운 소식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613개 조항의 율법을 선포하시고, 그 율법으로서 인류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반가운 소식이자 하나님의 복음이 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친히 이끄시고 그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의 복음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세세토록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사람은 점점 심히 패괴되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었고,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죄악은 날로 커져 여호와의 율법이 역할을 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지만 죄를 너무 많이 범한 관계로 제물로 드릴만한, 흠이 없고 처음으로 난 우양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절름발이나 눈먼 우양으로 여호와의 제단에 바쳤고, 그래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사람은 갈수록 죄를 더 많이 지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따라 모두 저주받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의미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예수님은 성육신하시어 은혜시대의 사역,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그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그리고 예수님은 3년 반이라는 공생애 기간 동안 유대 곳곳을 다니시며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셨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많은 기적을 보이셨으며, 풍성한 은혜와 인내와 용서를 베푸셨고, 종국에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이 말씀이 바로 은혜시대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를 범하는 본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항상 주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육의 욕심에 따라 죄를 짓습니다. 서로 명예와 이익을 놓고 다투고, 서로 거짓말하고 속이며, 악하고 음란하고 세상의 시류를 좇으며, 지위와 명리와 돈을 사랑하고 죄의 쾌락을 즐깁니다. 그래서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하는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늘 죄를 지으면 결국 정결해질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에 관해 성경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벧전 1:16),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라고 기록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빠졌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속량만 될 뿐, 성결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속량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완전히 건져내고, 또 우리의 죄성(罪性)을 깨끗게 하고 변화시켜 구원하고자 말세 재림 때에도 복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이 구절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라는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세에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패괴된 성품이 정결함을 얻고 종국에 죄성(罪性)을 벗어 버려야 하나님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로써 영원한 복음을 얻는 사람이 진정 복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영원한 복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언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 2:7) 여기에서 복음을 받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주께서 오시면 누군가가 그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과거 주님이 복음을 가지고 오셨을 때, 먼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그 복음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예언에 분명 주님이 오시면 교회들에게 말씀을 하신다고 하셨으니, 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과거 베드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들은 후, 주님의 말씀을 통해 그가 오시기로 약속한 메시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랑이 왔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즉,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말세에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복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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