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에 얽매여 괴롭고 우울한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자유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새로운 회사에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너무 기쁘다! 정시에 집을 나와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돌이켜보니, 3개월 전 고민 끝에 이 회사를 선택한 후 출근 첫날부터 지금까지 다 순조로웠다. 3개월 동안의 고생과 노력으로 마침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이제는 매출액에 따라 월급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단단히 벼르게 되었다. 가게에 도착하니 동료가 손님들과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었다. 속으로 ‘이 동료랑 앞으로 한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주문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센 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제대로 물어보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받은 주문을 뺏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난 고생스럽게 일만 하고 실적이 없으니 손해가 아닌가. 그럴 순 없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점장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점장은 돌아가면서 주문을 받자고 했고, 동료도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작은 비

  요 며칠 기분이 정말 답답하다. 똑같이 주문을 나눠 갖기로 해놓고선 동료는 번번이 내 주문을 뺏어갔다. 동료의 행동에 불만스러웠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와 다퉈서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그녀를 포용하고 인내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동료가 주문을 뺏어가는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어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동료는 상대가 부자인 줄 알고 얼른 다가가서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왜 또 주문을 뺏어가는 거야? 아! 나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얼마 전에 점장이 내가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고 날 점장 보조로 뽑아주었다. 게다가 매달 남모르게 200위안(한화 약 3만 2천원)을 더 얹어주었다. 하지만 동료가 이렇게 내 주문을 뺏어가니 점장과 본점에서 내 실적이 나쁜 것을 보면 나에게 업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이 점장 보조를 어떻게 맡겠는가? 저녁에 나는 걱정으로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낮에 동료가 내 주문을 뺏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동료가 주문을 뺏어갈 때 우쭐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계속 양보할 수 없다. 그랬다간 월말 실적 결산 때 내가 꼴찌를 차지할 것이다. 내일 출근하면 눈 크게 뜨고 잽싸게 움직여야겠다.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작은 비에서 중간 비로 바뀜

  요 며칠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 내 기분도 답답하다. 가게에서도 저기압이 머리 위를 누르며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울적한 기분이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요즘 나는 매일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는데 주문을 받고 싶을수록 받지 못하고 있다. 주문을 받더라도 다 작은 주문이었다. 나와 동료는 이미 며칠째 대화하지 않고 있다. 말해야 할 때도 내키지 않아 딱딱하게 몇 마디 나눌 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출근하면 우울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지는 등 너무 힘들다.

  오늘 아침, 동료가 또 나의 한계에 도전했다. 내가 막 주문을 받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조금도 거리낌없이 이 주문의 실적을 그녀의 이름으로 올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점장에게 이야기해 내 몫을 찾아오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갑자기 혈기로 사람과 다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에 화내지 말고 냉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퇴근 시간까지 버티었다.

  집에 도착한 후, 그동안을 돌이켜보았다. 혼자서 참고, 양보하고, 겉으로는 다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동료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는데, 설마 나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은 분명 내가 배워야 할 과제가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를 떠나지 못한다. 그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사탄에게 그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구절이 지금 나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그동안을 생각해 보니, 나는 명리를 다투는 삶을 살았다. 이익을 위해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동료가 내 주문을 빼앗아 가기 시작할 때 나는 화를 내고 점장에게 고발하려고 하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밀어내며 반감을 가졌고 그녀가 제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빌었다. 나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내가 어떻게 빼앗아올까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다가 주문 받는 기회를 놓쳐버릴까 봐 가게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님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료가 바쁠 때도 도와 주기 싫었다. 실적이 오르면 나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쥘 수 있다. 점장과 본점에서 내 업무 능력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성과급과 보조금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러면서 점장 앞에서는 능청스레 말했다. “제가 계속 그녀한테 양보하지 빼앗지는 않아요.”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명예’와 ‘이익’의 속박에 단단히 갇혀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의 고통이 다 사탄이 명리를 이용해 사람을 속박하고 타락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을 돌이켜보니, 나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멸망시킨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해 살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제가 일하는 동안 동료가 저의 주문을 빼앗든지 말든지 저의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적을 올리고, 명리를 위해 다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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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흐림

  저녁 무렵, 나는 단골 손님 한 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가가 인사했다. 동료도 이 손님이 큰손이라는 것을 듣고 다가와 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오늘 간신히 겨우 큰 주문을 받나 했는데, 이 사람이 또 끼어들다니, 얼굴이 어쩜 그렇게 두꺼울까? 동료가 손님에게 계속 소개하는 것을 보고 답답하면서도 ‘이 손님을 뺏어와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투며 빼앗다가는 이 주문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괴로웠지만 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나의 혈기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고, 기도한 후에는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이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커지며 너의 정형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네가 겨루고 빼앗을수록 너의 정형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질투심과 미워하는 마음도 더 커지며 더 얻고 싶어진다. 얻고 싶어할수록 얻지 못하고, 얻지 못할수록 너는 더욱 미워하게 되며, 미워할수록 너의 안이 더 캄캄해지고, 캄캄해질수록 너는 본분을 잘하지 못하게 되며, 본분을 잘하지 못하면 점차적으로 너를 쓰지 않게 되고 너는 도태된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인데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시험해 봐라! 네가 이런 정형을 되돌리고 싶어하고 이런 것에 통제받지 않으려 한다면 너는 반드시 먼저 내려놓고 먼저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는 마음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탄은 명리로 나를 구속해서 내가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명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는 너그럽게 앞으로 가서 그녀가 손님 접대하는 것을 함께 도와주니 뜻밖에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나중에 동료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 손님의 주문을 받았지만 완전히 내 실적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일부는 당신이랑 나눠야 해요. 나중에 큰 주문을 받을 때도 같이 나눠요.” 180도 바뀐 동료의 모습에 나는 순간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행할 때, 사람과 명리를 다투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해방될 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사이에서 이해와 신뢰도 높일 수 있고, 자신과 사람, 그리고 업무에서도 이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흐리다가 갬

  오늘 점장이 우리의 실적을 통계할 때 동료의 실적이 나보다 좋다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 동료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고 동료에게 계속 주문을 양보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드렸다. 더 이상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명리의 구속을 받고 살 수는 없었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은 점차 평안함을 얻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 … 영원한 이익이란 없다. 지위도 체면도, 돈도 물질도 다 잠시적인 것이다. 사람이 그런 방면의 성정을 해결해 진리를 얻고 구원을 받았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귀히 여김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또한, 사람이 얻은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사탄은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어도 반대로 진리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럼 그것 역시 너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해 얻은 것이다. 진리 실행을 선택한 사람은 가장 명철한 사람이다. 자신을 보전하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모르고 이익을 얻기 위해 진리를 포기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실 눈앞의 이런 이익과 체면은 일시적인 것이고, 진짜 소중한 것은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 속성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과 방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또한, 명리는 사탄이 사람을 속박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명리를 위해 살면 사탄에게 우롱당해 말할 수 없이 괴롭다. 이런 것들을 내가 모두 직접 체험했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만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다. 마치 이 시련을 받았을 때, 온 들과 산의 소와 양이 다 사탄에게 약탈당했지만 그는 사람을 보내 뺏어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했다. 또한 이런 말을 했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기 1:21) 욥은 이 말로 하나님은 증거할 수 있었고, 사탄은 듣고 도망쳤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에게 복에 복을 더해주셨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셔서 그가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욥을 본받아서 다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익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는 똑똑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짝 열린 창문처럼 내 마음을 환히 밝혔고 나아갈 방향도 생겼다.

  2018년 5월 6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날씨가 맑아서 기분도 좋았다. 요 며칠을 생각해보니, 동료가 주문을 받고 싶어 할 때마다 내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양보했었다. 겉으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다. 적어도 나는 매일 이익의 득실을 따지며 고통스럽게 살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진리를 행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내가 다투고 빼앗을 필요가 없다. 내가 이렇게 할 때마다 마음에 특별한 평안을 느꼈다! 또한 예상밖으로 점장은 매달 점장 보조의 월급으로 200위안을 보조해 주셨다. 동료도 전처럼 그렇게 주문을 뺏어가지 않았다. 요 며칠 나는 또 큰 주문을 연달아 2건 받아서 동료와 실적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동료와 협력해 또 많은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점점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정상적으로 되었다. 더는 점장과 본점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마음의 기쁨과 해방을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번 인도하셔서 나는 사탄의 명리의 속박으로부터 점차 벗어났고, 사람들과 더 이상 옥신각신 다투며 힘들게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면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정당당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박명희

하나님의 약속

사회 생활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신 중요성을 확실히 알게 되다

  십계명과 율법은 주님을 믿는 모든 신자에게 낯선 단어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십계명과 율법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심오한 뜻이 있는지 과연 알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경륜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사람을 위해 많은 규례를 정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러한 규례들은 인류로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제단을 쌓아야 하는지, 어떻게 제단을 세워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다음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었다. 또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정해 주고, 생활 속에서 어떤 것들을 주의하고 지켜야 하는지, 어떤 것들을 반드시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매우 구체적으로 정해 주었으며, 이러한 조문과 규례, 원칙들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규범화하고,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며,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또한, 사람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인도해 주었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질서 있고 규칙적이며 절제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하나님은 먼저 이러한 간단한 규례와 원칙으로 사람에게 일부 범위를 정해 주었다. 또한 이를 통해 사람들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하고,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의 시작 부분에 속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이러한 규례와 규정에 포함된 내용들은 아주 광범위하며,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인류를 인도한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이것은 율법시대를 맞을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자,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이끌고 인도한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이 계명을 반포한 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이 율법을 반포함으로 그때의 인류를 가르치거나 타이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인류는 없었을 것이고, 또한 소위 말하는 문명사회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문명사회란 어떤 것을 말하느냐? 사람이 도덕규범을 좀 알고, 시비를 가릴 줄 알고, 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전체에 질서가 잡히고 어지럽지 않으며, 관리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법의식이 있고, 공공질서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법의 단속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 하나님이 행한 것이 아니냐? 현재의 인류가 이렇게 될 수 있게 된 것도 최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반포해 주신 율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계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포하였고, 그 당시에 계명을 들은 대상이 작은 무리일지라도, 그 계명의 영향력은 후대 인류에게 계속되어 왔다. 현재 인류 사회에 지금 같은 질서가 있게 되고, 지금 같은 완전한 법률 체계가 세워져 인류를 단속할 수 있게 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혹은 전체 사회가 안정적이고, 화목하고, 질서가 있게 된 것은 그때의 계명을 반포한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 기초를 정말 잘 닦은 것이다! 만일 인류에게 최초의 행위에 대한 규범화가 없었다면, 온 인류 사회는 오늘날까지 지금처럼 질서정연하게 발전되어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행사의 구현이고, 또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의 결과이며 성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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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말씀에서 최초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릴 줄만 알았으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신 사실이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생활 상식조차 몰랐습니다. 막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인간 세상의 일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필요에 따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를 통해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태초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상식과 규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끼리 어떻게 지내야 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죄는 무엇이고 선과 악은 무엇이며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화, 살인, 강도, 약탈 등의 행위는 범죄이며 부정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고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고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고 긍정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과 계명이 이끌어 준 덕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에는 단속이 생겼고 뚜렷한 기준과 규범이 생겨나 정상적이고 질서 있게 이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이루어 낸 효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명과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셨지만, 그 영향은 우리와 같은 후대인에게도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계명과 율법은 인류에게 어떻게 살아가고 인류의 행위를 어떻게 규범화 하는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또한, 계명과 율법은 인류의 행동을 유죄와 무죄로 가늠하는 근거와 준칙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십계명과 율법은 후대인이 헌법을 제정할 때 근거를 제공해 주었으며 훗날 법률 체계의 개선에 기반을 닦아 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법률 조항과 사법의 개념은 모두 십계명과 율법을 기반으로 제정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죄, 강간죄, 절도죄, 비방죄, 공금 횡령죄 등이 제정된 것은 모두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찌니라 간음하지 말찌니라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출애굽기 20:13~17)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이런 계명과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태초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으며 언행과 일에서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온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고 인류가 지금까지 이를 수 없을 것이며 오늘날 문명사회도 구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율법과 계명의 반포는 인류의 법률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의 도덕 문명과 민주제도의 구축 및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확실한 도덕 준칙을 갖고 공공질서를 지키며 법의 제약을 받아 이 세상에서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은 태초의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계명으로 이루어 낸 성과이자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시고 이끄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인류를 책임지며 신경 써주시고 큰 노력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이후 계속 인류를 이끌고 인도해 주시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시어 우리의 행동에 규범을 만들어 주셨고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계명과 율법의 반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나타냅니다. 인류는 정말 하나님의 이끎을 평생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앞서 말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신 중요성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울이신 심혈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셨겠죠!

  저희에게 깨우침을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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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탁

성경 해설

하나님이 왜 소돔 성을 멸하려고 했는지도 알고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다’, 우선 이 일에 대한 성경 구절부터 보도록 하자.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창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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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성경의 이 구절들을 통해 소돔의 사악함과 부패함이 천인공노할 지경에 이르러 하나님 안중에 반드시 멸해야 할 대상이 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을 멸하기 전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였고, 그 일들이 사람에게 어떤 점을 시사하였느냐? 그 일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여 주고 있느냐? 기록된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고 발생한 일의 전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치가 떨리고,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올 정도로 부패한 소돔 성

  그날 밤, 롯은 하나님의 두 사자를 영접하고 식사를 베풀었다. 식사 후 사자들이 아직 눕지 않았을 때, 성안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롯의 집을 둘러싼 후 롯을 불렀다. 성경에는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라고 되어 있다. 이는 누가 한 말이냐? 이 말은 누구에게 한 것이냐? 이 말은 소돔 성 사람들이 롯의 집 밖에서 롯에게 외친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 화가 나지 않느냐? 역겹지 않으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느냐? 그 사람들의 외침은 사탄의 행위를 뜻하지 않느냐? 그 외침에서 너는 그 성의 사악함과 어두움이 느껴지지 않느냐? 그들의 외침에서 너는 그들의 행위에서 나오는 야만성과 잔인함이 느껴지지 않느냐? 그 사람들의 행위에서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느낄 수 있지 않으냐? 그들이 말한 내용에서 그들의 사악한 본성과 흉악한 성품이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롯을 제외한 성안 사람들은 모두 사탄과 같아서 사람을 보면 해를 입히고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였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이 성의 음산함과 공포스러움, 죽음의 기운, 사악함과 잔혹함이 절로 느껴진다.

  인간성도 없고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키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찬 폭도들을 보며 롯이 뭐라고 말했느냐? 성경에는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롯이 이 말을 한 의도는 그의 두 딸을 포기하더라도 사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상, 롯이 그런 제안을 했으면 그 무리들은 양보를 하고 두 사자를 가만히 놓아두었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두 사자는 그들과 일면식도 없고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들의 이익을 침해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악한 본성에 끌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난폭해졌다. 여기서 그들이 나눈 또 다른 대화를 통해 그들의 악독한 본모습을 더한층 알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이 왜 그 성을 멸하려고 했는지도 알고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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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다음에 그들이 뭐라고 하였느냐? 성경에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라고 되어 있다. 그들은 왜 문을 부수려 하였을까? 두 사자를 빨리 해치지 못해 안달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두 사자가 소돔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롯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성안의 사람들은 그 두 사자가 법관이 되기 위해 그곳에 왔다고 착각하며 추측만으로 이유도 묻지 않고 해하려 하였다. 그들이 해하려 한 것은 그들과는 전혀 무관한 두 사람이었다. 따라서 소돔 성 사람들이 이미 인간성과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다는 것과 그들의 광기와 날뛰는 정도가 사람을 해하고 집어삼키는 사탄의 악독한 본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롯에게 두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자 롯은 어떻게 하였느냐? 성경에서 알 수 있듯 롯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롯은 하나님의 두 사자를 알았느냐? 전혀 몰랐다. 그렇다면 그는 왜 두 사람을 구하였느냐? 그는 그들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고 있었느냐? 그는 그 두 사자가 그곳에 온 이유는 몰랐지만 두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들을 영접한 것이다. 롯이 하나님의 종을 주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롯이 평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소돔 성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갔을 때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두 종을 영접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또 두 딸을 넘기고 그들을 보호하려 하였다. 이는 롯의 의로운 행위이며, 롯의 본성과 본질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 것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하나님이 종을 보내 그를 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롯은 아랑곳 않고 두 종을 보호하였으며, 심지어 자신의 두 딸로 두 종의 안전을 지키려 하였다. 그 성안에 롯이 했던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는 자가 또 있었느냐? 없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롯을 제외한 소돔 사람 모두가 멸해야 할 대상이자 멸망당해야 할 대상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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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법을 알게 되었고 또한 사탄의 계략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야고보서 1:13) 그래서 어떤 형제자매님은 시험과 시련의 차이점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제가 아는 만큼 교제하겠습니다.

    1. 근원에서 차이점을 찾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처럼 사탄을 ‘시험하는 자’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에 따라 광야로 나가 사탄에게 세 번이나 시험받으셨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전 재산과 자녀를 잃었는데 역시 사탄의 시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시험은 사탄에게서 온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야고보서 1:13)

  하지만 시련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스가랴 13:9)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련할 때 사탄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두 번이나 욥을 참소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욥은 순식간에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으며 나중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통해, 욥을 시련하였고, 사탄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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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질과 이뤄 낸 효과에서 차이점을 찾다

  사탄의 본질은 사악하고 악독하기 때문에 사탄에게서 비롯된 시험 역시 사악하고 악독합니다. 우리는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시험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은 후, 영이 죽었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즉, 일생 동안 분주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 고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사탄이 움직이자 강도들에게 온 산에 가득했던 우양이 약탈당했고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또한 사탄은 욥의 살가죽을 움켜쥐었고, 욥에게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욥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공의롭고 거룩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서 온 시련 역시 아름답고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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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욥을 시련하실 때 그는 산에 가득했던 우양과 자녀를 다 잃었고, 온몸에 악창이 났으며 친구들도 그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욥을 저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련을 겪은 후에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순종은 완전해졌으며 하나님을 향한 인식도 승화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겪은 후 욥의 증거로 인해 세상 사람들과 사탄 앞에서 비난받을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욥은 이때부터 사탄의 참소에서 철저히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로 욥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욥은 시련을 겪고 나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수명이 배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많은 재물과 예쁜 자녀 열 명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바람 속에서 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 사탄의 동기와 하나님의 뜻에서 차이점을 찾다

  시험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시험의 목적은 사람을 해치고 타락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이 기회를 빌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깨트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멀리하도록 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련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시련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고 체험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하여 믿음을 크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고 순종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 자매님이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아들이 전화를 해서 그녀의 남편이 아파서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자매님은 집에 돌아가서 남편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교회에 자신이 처리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그녀는 이 상황이 영계의 싸움이며 사탄의 시험이 임한 것으로, 사탄은 이 기회를 빌어 교회의 사역을 수호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교란하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검증하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개인의 이익을 선택하는지 아니면 교회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선택하는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사탄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하나님을 실망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우선 교회의 일을 다 처리한 후에 병원에 가서 남편을 간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렸을 때, 뜻밖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고, 남편의 병이 호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몇 번 체험한 자매님은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닥쳤을 때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법을 알게 되었고, 또한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차이점을 장악하고 나서 무엇이 시험이고 시련인지를 대략적으로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이 닥쳐도 어떻게 해야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시련 가운데서 굳게 증거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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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

  영적 분별

성경에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라디아서 1:6~8)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 성경 구절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은 목사나 장로들이 이 성경 구절을 자주 해석하면서 예수님의 이름과 말씀 외에 다른 복음을 듣거나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떠나고 배신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주님을 오랫동안 믿은 저 역시 줄곧 그 성경 구절을 지키면서 목사나 장로의 말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를 해도 저는 그 말씀을 듣거나 찾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복음 좇는’것, 즉 주님을 배신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갈수록 황량해지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목사나 장로의 설교를 들어도 생명을 공급받을 수 없고, 점점 더 많은 형제자매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큰돈을 벌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 하며, 교회는 장사와 대인 관계를 맺는 장소로 변했습니다. 저도 영적으로 메말라 성경을 봐도 깨우침이 없고 예배에서도 영적 누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고하게 예배당만 지키는 것이 정말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여러 번 주님 앞에 나와 저를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며,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시길 구했습니다.

  하루는, 몇 년간 보지 못했던 옛 친구 창우가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고 설교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8절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나 장로는 우리에게 이 성경 구절을 자주 해석해 주곤 해. 지금은 말세이고 예수님이 곧 오셔서 우리를 데려갈 거라고 말하고 있지. 이 중요한 시기에 이단과 거짓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교회를 지키고 다른 말씀을 찾거나 알아보면 안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이며, 이는 곧 주님을 배신하는 거라고 했어. 최근 몇 년간 나 역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 왔지. 그래서 누군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해도 그런 관점의 영향으로 찾거나 구하지 못했지. 그런데 왜 그렇게 행할수록 더 어두워지는 느낌일까? 난 이 문제로 아주 곤혹스럽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건지도 알지 못하겠어. 그렇지만 목사나 장로들이 인용한 것도 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잖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겠어. 네 생각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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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말을 들은 창우가 교제했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인용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말이야. 은혜시대에 바울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만일 성경 구절의 일부만 가지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인용한다면 아주 쉽게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지! 사실, 바울이 그런 말을 할 때는 배경이 있었어. 당시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이미 힘 있게 끊임없이 이방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었고, 수많은 갈라디아 사람들도 주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임과 함께 교회를 세웠던 거야. 그때는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였고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어. 한 부류는 율법시대의 옛 사역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도록 한 거야. 즉,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에 들어가도록 했던 거야. 다른 한 부류(예수님의 12제자 위주)는 은혜시대의 새로운 사역을 전했지.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도록 했어. 즉,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서로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라고 전했지. 구약 율법을 지켰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자신들이 전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고 했고, 또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 성경을 벗어난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새로운 사역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야.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교란했지. 그 당시 바울은 사역이 너무 바빠 이미 갈라디아 교회를 떠난 상황이었어. 구약 율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그 기회를 틈타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란했던 거야. 결과적으로, 당시의 갈라디아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어 예수님의 복음을 떠나 율법을 전하는 사람들을 따랐던 거지. 그래서 바울이 이 사실을 알고 편지를 써서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거였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라디아서 1:6~8) 이 말로 갈라디아 사람들을 권면하여 참 도의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거야.

  바울은 또 말했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라디아서 3:1~2)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란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야. 바울은 당시 사람들에게 은혜시대에는 오직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고, 지금 다른 말씀을 듣는지의 여부나 찾고 알아보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어. 다시 말하면, 바울은 단지 은혜시대에 복음을 전한 사도에 불과했을 뿐이야. 그는 선지자도 아니고 예언가도 아니었지. 바울이 쓴 편지는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두고 쓴 서신이며 갈라디아 사람들에 대한 권면이고 격려일 뿐이야.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말세에 적용해 지금 다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거나, 찾고 알아봐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거야. 이것은 되는대로 규례만 지키는 것이 아닐까?”

창우의 말은 저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바울이 한 그 말은 배경이 있지. 그것은 단지 은혜시대 갈라디아 교회에 한 말일 뿐이야. 바울은 선지자가 아니고 미래의 일도 예측할 수 없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2천년 전 바울의 말을 지금에 적용시켜 지키고 있는 거지? 어쩜 이리도 어리석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조금 겸연쩍어 “네 말이 맞아. 난 성경에서 바울이 어떤 배경하에 그 말을 했는지 구하고 알아보지 않았어. 그냥 목사나 장로들이 해석한 것을 맹신한 거지. 확실히 그릇된 깨달음이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창우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건 잘못된 거야. 지금은 말세이고 주님이 재림하실 중요한 시기이지. 우리는 말씀에 근거해 주님의 재림을 대해야지 맹목적으로 사람의 말을 믿어선 안돼.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기회를 놓치게 될 거야. 그건 몇 년 동안 헛되이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겠어. 나는 최근 며칠 동안 계시록에 예언된 말씀을 생각해 봤어.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시록 14:6) 이 성경 구절에는 만국 만민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말세가 되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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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말을 들으니 나도 베드로전서 1장 5절의 말씀이 생각나.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다시 말해,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사역 하실 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신다고 했어.” 저는 갑자기 머리가 트이는 것 같았고 흥분되어 창우에게 말했습니다.

  창우는 한참을 생각한 후 말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 게다가 그구원은 또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전할 수도 있고. 2천년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 것처럼 말이야.”

  “네 말을 듣고 보니 줄곧 교회만 지키고 다른 복음은 한결같이 받아들이지 않은 내 실행 방법은 잘못된 거였어. 그렇게 하다간 주님의 말세 구원을 거절할 수도 있잖아! 그럼 우린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저는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세 현현 사역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 주님의 말세 구원을 증거하면 얼른 찾고 알아봐야 해. 주님을 영접하는 것에 관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 주셨잖아.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반드시 귀를 기울이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지. 누군가 신랑이 왔다고 전하면 얼른 나와서 영접해야 해.” 창우는 성경을 펼쳐 그 장절을 가리키며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 성경 구절을 보며 기뻐서 고개를 끄덕였고, 찬성하며 말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해. 능동적으로 찾고 알아봐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야! 훗날 누군가가 주님의 재림을 또 내게 전하면, 바울의 말을 믿고 지키면서 더는 듣지도 알아보지도 않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야!” 이때 눈부신 햇살이 먹구름을 뚫고 방안을 비추었고, 제 마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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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성경 해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1~6)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여 방주를 지은 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날들을 지나 여덟 식구는 생존하게 되었다. 노아의 여덟 식구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되었다. 땅의 생물들도 모두 멸망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노아를 축복으로 대했다.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였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베풀어 주려는 것이었고 또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주는 축복이고 약속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보기에 노아가 완전한 자이든 의인이든 상관없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든 상관없었다. 결국,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하나님 말씀에 따랐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했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하여 홍수로 세상이 멸망된 뒤에도 인류와 각종 생물이 보존될 수 있게 하였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경륜을 위해 혁혁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노아의 그런 행실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내린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사람들에게 있어 노아의 행실은 전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노아도 한 일은 없잖아. 하나님이 노아를 남기겠다고 결정하셨으니 당연히 남게 된 거야.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려고 하셨기 때문이야. 사람은 피동적이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기에 위대한 사람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과 받은 사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순조롭게 완수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런 행실은 하나님이 기억할 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런 행실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런 정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태도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노아에게 축복을 내렸을까? 하나님은 사람의 그런 행실과 순종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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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노아에게 축복을 내린 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따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마땅히 축복을 주셔야 맞습니다. 당연한 것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면 될까? 어떤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 왜 안 되는 것이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말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들였을 때, 사람 행실의 좋고 나쁨과 순종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한 가지 기준이 있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렸는지와 그 사람이 한 행실이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도 하나님의 한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행실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어떻게 행하든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축복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오해이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발전 과정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사람의 마음에 순종이 있는지, 배려가 있는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당시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너희가 지금 알고 있는 이치보다 많이 알고 있었을까? 당시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나 앎에 관한 진리에 대해 너희보다 더 많이 목양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의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심지어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반면 노아의 마음과 의식 속에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에게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하나님에 대한 노아의 순종에는 불순물이 없어 검증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순결했고 하나님께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주는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따르도록 수많은 이치상의 인식으로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실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노아와 지금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본질적인 차이다. 또한 하나님 안중의 완전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해석이다. 하나님은 노아와 같은 사람을 원하고 인정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대상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사람의 무책임과 의심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또 그에 대한 사람의 그 어떤 추측이나 시험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고 심지어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은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과 사람의 타락한 본질과 하나님과 적대되는 태도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믿음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사람은 노아에게 준 것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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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

  성경 인물

찬양 CCM – 성령의 새 역사를 따라야 하나님의 칭찬을 얻으리

상쾌한 아침입니다 ~오늘도 은혜로운 찬양 감상하면서 즐거운 하루 시작해 봅시다.

성령의 역사를 따르는 것은
오늘날의 하나님과 그의 뜻을 따르고
그의 현재의 요구에 순종하며
그의 최신 말씀에 진입하는 것
그런 자는 성령의 역사를 따르고
성령의 흐름 안에 있는 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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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그의 칭찬을 얻으며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네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거역을 알고
사람의 본성과 본질 역시 알 수 있네
본성과 본질 알 수 있네
하나님 섬기며 그들의 성품은 변할 것이네
이런 자만이 하나님을 얻고
진정으로 참된 길을 찾은 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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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아는 것은 쉽지 않네
그의 사역에 순종하며 찾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성령의 새로운 인도를 얻을 수 있네
하나님 섬기며 그들의 성품은 변할 것이네
이런 자만이 하나님을 얻고
진정으로 참된 길을 찾은 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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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하나님의 사역을 맞서는 자는
성령의 깨우침과 그의 인도를 얻지 못하리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얻을지는
하나님의 은총과 그들의 추구와 마음에 달렸네
그들의 마음에 달렸네
하나님 섬기며 그들의 성품은 변할 것이네
이런 자만이 하나님을 얻고
진정으로 참된 길을 찾은 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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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

찬송가

안식 또한 영원한 안식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안식의 유래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태초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질병의 고통도, 노동의 수고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며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렸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안식을 잃어버리다

  그러나, 아담, 하와에게는 진리가 없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부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했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고,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원래 근심 걱정 없이 살던 삶을 잃고, 안식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면서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고통당했으며, 사람들끼리 서로 시기 질투하고 싸우며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시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서서히 인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간사하고, 사악해져 갔습니다. 도둑질, 강도, 간음, 살인 등 저지르는 죄도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까지 타락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홍수로 사악하고 타락한 인류를 멸망시  켰고, 노아의 여덟 식구와 함께 방주에 탄 각 생물들만 살아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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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다

  홍수가 세상을 멸한 후 노아의 후손들은 계속 이 땅에서 번식하며 살아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만 알았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창조주를 만족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바랐지만, 당시의 인류는 하나님의 요구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경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안식하고 있었다. 그때 땅에는 인류도 없고 만물도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 어떤 사역도 행하지 않았다. 인류가 생기고 또 인류가 타락한 뒤에야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고 인류 가운데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1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섬겨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입니다. 이로써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무엇이 죄인지,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게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류가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인류가 율법과 계명을 지킴으로써 행동이 제한되고 규범화되어 인류의 죄는 효과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율법의 구속을 받았지만 사탄에 의해 타락됨으로 점점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죄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결국 그들의 죄를 속죄할 충분한 속죄제가 없게 되면서 그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고 죽음에 처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시대가 이어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율법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지고 무심해져 차츰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멀어졌다. 그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게 되었으며, 그들의 생활은 성전에서 제단을 지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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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류가 멸망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시 사람의 필요에 따라 2단계 사역,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율법과 계명의 기초 위에서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실행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하며,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고 사람됨의 원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분의 죄 없는 육신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자격이 생겼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람들의 마음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2천 년 동안 계속되었고, 우리는 죄를 저지르고 주님께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는 여전히 존재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간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한 사탄의 본성은 뿌리가 깊어서 항상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명예와 지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거짓말하고, 남을 속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항상 사람을 따르고 우러러봅니다. 또한, 지위가 생기면 우리는 항상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숭배하게 하고 우러러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판단하며,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집안에 천재지변의 화가 닥치거나 평안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한 단계 더 높은 구원 사역이 필요합니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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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

  성경 해설

어떻게 질병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를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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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그나마 믿음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기도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병이 계속 낫지를 않자 하나님께 무례한 요구를 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질병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이런 환경이 임하면 우리는 어떻게 체험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요? 하나님 말씀이에요.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스가랴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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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환경을 안배하여 우리를 시련하고 연단하여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정결케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온전케 해요. 질병이 임한 것 역시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우리는 응당 질병의 연단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해요. 질병의 치유 여부를 떠나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되고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여 하나님을 위해 간증해야 해요. 마치 이 시련 속에서 한 말과 같아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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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이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창 6:9~14)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18~22)

  그 시대에 하나님은 노아를 불러 아주 중요한 일을 하려고 했다. 왜 그 일을 하려고 했을까? 당시 하나님의 마음속에 한 가지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은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것이었다. 왜 세상을 멸하려고 했을까?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는 말씀에서 사람은 무엇을 보았느냐? 세상과 인류가 극도로 타락할 때 땅에는 한 가지 현상이 생긴다. 그것은 ‘강포가 땅에 충만’해지는 것이다. ‘강포가 충만’해지는 것을 지금의 말로 표현하자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모든 분야에 질서가 없어 무척 혼란스럽고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반면 하나님이 보기에는 이 세상의 인류가 너무 타락했다. 어느 정도까지 타락한 것일까? 하나님이 더 이상 볼 수 없고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정도까지 타락하고, 하나님이 멸해야겠다고 결심할 정도까지 타락한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멸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한 사람을 찾아 방주를 짓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 뒤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고 그 일을 하게 하였다. 다시 말해,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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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부름을 받은 일은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 기록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부른 사람은 하나님이 보기에 어떤 사람일까? 분명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다해야 할 책임과 본분으로 여겨 완수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까? 아니다. 당시 노아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역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적었다. 성경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과연 노아가 하나님의 본체를 본 적이 있을까? 분명히 말하지만 본 적이 전혀 없었다! 당시 사람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말을 하고 일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전달한 것일 뿐이었다. 하나님의 본체가 직접 사람에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이 성경 말씀에서 기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노아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과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타내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세밀하게 계획되어 있다. 발생한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해 그에게는 가늠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따라 그는 그런 일과 현상에 대해 어떻게 계획하고 처리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멸하려고 한 대상이 사람뿐이라고 했느냐?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혈육 있는 생물을 모두 멸하겠다고 하였다. 왜 멸하려고 했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즉, 하나님이 인류의 타락, 모든 혈육 있는 자의 더러움과 강포, 패역을 대할 때 그의 인내에는 한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한도는 어디까지일까? 하나님은 이렇게말씀하였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여기에서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는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적이 있는 사람, 말로만 하나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찬미하기까지 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 이들의 깊이 타락한 행실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타락을 어느 정도까지 인내한다는 것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이 바른길을 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인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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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그저 도덕이 부패하고 사악으로 가득 찬 정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재하고 사람에게 광명과 바른길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오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의 타락이 일단 이런 정도에까지 이르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더 이상 인내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대체하겠느냐? 바로 임하게 될 하나님의 노와 징벌로 대체한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일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기에 의인이 있을까? 하나님이 보기에 완전한 자가 있을까? 하나님의 눈에 이 시대는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타락한 시대가 아니냐? 이 시대에 하나님이 온전케 하려는 사람과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인류 이외에 혈육 있는 자는 모두 하나님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 세상에서 매일 너희 주변에서 발생하는, 너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직접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강포가 가득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보기에 이와 같은 세상과 시대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의 시대적 배경과 노아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인류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이나 하나님의 분노는 그때와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하나님이 인내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역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상황과 조건을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기에 일찍 멸했어야 했다. 홍수로 세상을 멸했던 그 시대의 상황과 비교하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를 아예 따르지 않거나 본래 그와 적대적이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대하고 그에게 대항하는지, 혹은 인류가 어떻게 그를 비방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는 오로지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경륜 속에서 그가 구원할 대상이 그에 의해 온전케 되었는지, 그가 흡족해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끔 소소한 ‘징계’를 내려 그의 진노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해일, 지진, 화산 폭발 등과 같은 징계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를 잘 따르고 곧 구원받을 사람을 힘써 보살핀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가 온전케 하려는 인류에 대해 엄청난 인내와 관용을 베풀고, 최대한도로 기다린다. 또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를 따르지 않고 그와 적대적인 사탄의 부류를 극도로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는 사탄의 부류가 그를 따르는지, 그를 경배할 수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사탄의 부류에 대해 인내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또한 사탄 부류의 결말을 정하는 동시에 그의 경륜의 시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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