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관문,결혼

     사람이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 부모와 점점 소원해진다. 운명도 그 의미가 퇴색된다. 그 대신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면서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부모가 아닌, 삶을 같이할 수 있는 반려자를 ― 운명이 맞닿아 있는 배우자를 ― 필요로 하게 된다. 이렇게 독립 후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결혼, 즉 사람이 거쳐야 할 네 번째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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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관문, 독립

    모든 사람은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숙해진다. 다음으로 할 일은 성장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성인으로서 독립적으로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고 성인으로서 직면해야 할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하며 자신의 운명에 나타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살면서 거쳐야 할 세 번째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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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관문, 성장

    한 사람이 어떤 가정 환경에서 어떤 가정 교육을 받는지는 그 사람이 태어난 가정에 의해 좌우되며, 이는 성장 배경을 결정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일생에서 두 번째로 거치게 되는 중요한 관문이다. 이 관문 역시 사람이 선택할 수 없으며 이미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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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관문, 탄생

    어디에서 또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성별과 외모로 태어나는지, 언제 태어나는지, 이것은 모든 사람이 삶에서 거쳐야 할 첫 번째 관문과 관련된 몇 가지 내용이다.첫 번째 관문은 창조주가 운명으로 정해 놓은 것으로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외부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인위적인 요인은 창조주가 운명을 배치한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한 사람의 탄생은 창조주가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한 첫 번째 단계를 완성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창조주가 운명으로 정해 놓은 것이므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앞으로의 운명과 상관없이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태어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따라서 출생 배경은 삶의 운명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며, 창조주가 삶의 운명에 행사하는 주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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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을 알려주신 성경 구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예수님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을 알려주신 성경 구절

    이는 예수님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을 알려주신 구절입니다. 즉, 우리는 침노해야 천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큰 소망은 들림 받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럼, 침노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 14절에는 거룩함이 없이는 주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며, 패괴된 성품에서 벗어나 정결함을 받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사역하고 헌신하고 많이 버리고, 복음을 잘 전하면 천국에 갈 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그것으로 충분히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사역하는 데에만 치중했던 바리새인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침노했던 것은 이런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을 주님은 외식하는 것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오직 겉으로 고생을 좀 한 것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는 범사에 주의 뜻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흡족게 하기를 추구했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분명 천국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침노하며 나아갔던 방향을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주의 말씀에 따라 주의 도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 안에는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오랫동안 많은 사역을 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더럽기 짝이 없다면, 네가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도 거룩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패괴된 더러운 인간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에 데려가시려는 사람은 바로 구원받아 정결케 되고 변화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우리는 그의 뜻에 따라 추구하며 그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결함 받고 온전케 되어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천국에도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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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영계를 주관하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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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에 대해 말하자면, 영계에 있는 각종 생령들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일을 잘못 수행하면 하나님은 그에 해당하는 천상의 규율과 법령에 따라 그들을 처벌한다. 이것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수천 년 경영 사역 중에서, 잘못을 저질렀던 일부 일꾼들은 멸망되었고, 어떤 일꾼들은 지금까지도 구금되어 벌을 받고 있다. 이것은 모든 생령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사실이다.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거나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 이 점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이나 봉사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계에서든 물질세계에서든 하나님이 일을 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볼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이 일을 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일관되게 자신의 원칙에 따라 만물을 대하고 처리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방인 가운데서 비교적 착하게 사는 사람을 잘 대해 준다. 그리고 각 종교에서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며, 그들에게 하나님이 다스리는 만물 속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한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선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이런 원칙에 따라 그 누구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잘 대해 주고 사랑한다. 다만 이방인부터 신앙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선민까지, 하나님이 각 부류의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방인을 보아라.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짐승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만물 속에서 그들은 어느 누구나 먹고 살 수 있고, 머물 자리가 있으며, 정상적인 생사윤회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악을 행한 자는 징벌하고, 선을 행한 자는 하나님이 축복하고 잘 대해 준다. 그렇지 않으냐? 신앙이 있는 사람의 경우, 엄격하게 종교 규칙을 지키며 한 생 한 생 살아가면, 결국 그들의 윤회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공정한 결론을 내린다. 오늘의 너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선민이든 봉사자든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행정과 조례에 따라 이들의 행위를 규범화하고 이들의 결말을 정한다. 이 몇 부류 사람 중에서, 신앙이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모든 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생존할 공간을 주지 않았느냐? 유대교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을 방해했느냐? 방해하지 않았다. 그렇지? 기독교는 어떠냐? 역시 방해하지 않고, 그들이 자신들의 질서에 따라 그렇게 지키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말씀하지도 않고, 계시해 주지도 않으며, 뭔가를 밝히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믿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믿으라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천주교인은 마리아를 믿고, 마리아를 통해 예수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의 신앙은 이렇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을 바로잡아 준 적이 있느냐?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서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도 일정한 생존 공간을 주었다. 이슬람교인과 불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들에게도 일정한 범위를 그들만의 생존 공간으로 정해 주었고, 그들의 신앙도 간섭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질서가 있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권능을 가지고 있지만 권능을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만물을 일사불란하고 질서 정연하게 배치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이자 하나님의 전능이다.

ΩΩΩ↔ΩΩΩ↔ΩΩΩ

    관련 내용 :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생사윤회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려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창 6:9~14)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18~22)

    …

    그 시대에 하나님은 노아를 불러 아주 중요한 일을 하려고 했다. 왜 그 일을 하려고 했을까? 당시 하나님의 마음속에 한 가지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은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것이었다. 왜 세상을 멸하려고 했을까?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는 말씀에서 사람은 무엇을 보았느냐? 세상과 인류가 극도로 타락할 때 땅에는 한 가지 현상이 생긴다. 그것은 ‘강포가 땅에 충만’해지는 것이다. ‘강포가 충만’해지는 것을 지금의 말로 표현하자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모든 분야에 질서가 없어 무척 혼란스럽고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반면 하나님이 보기에는 이 세상의 인류가 너무 타락했다. 어느 정도까지 타락한 것일까? 하나님이 더 이상 볼 수 없고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정도까지 타락하고, 하나님이 멸해야겠다고 결심할 정도까지 타락한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멸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한 사람을 찾아 방주를 짓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 뒤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고 그 일을 하게 하였다. 다시 말해,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한 것이다. …

성경이야기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노아가 부름을 받은 일은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 기록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부른 사람은 하나님이 보기에 어떤 사람일까? 분명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다해야 할 책임과 본분으로 여겨 완수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까? 아니다. 당시 노아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역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적었다. 성경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과연 노아가 하나님의 본체를 본 적이 있을까? 분명히 말하지만 본 적이 전혀 없었다! 당시 사람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말을 하고 일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전달한 것일 뿐이었다. 하나님의 본체가 직접 사람에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이 성경 말씀에서 기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노아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과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타내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세밀하게 계획되어 있다. 발생한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해 그에게는 가늠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따라 그는 그런 일과 현상에 대해 어떻게 계획하고 처리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멸하려고 한 대상이 사람뿐이라고 했느냐?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혈육 있는 생물을 모두 멸하겠다고 하였다. 왜 멸하려고 했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즉, 하나님이 인류의 타락, 모든 혈육 있는 자의 더러움과 강포, 패역을 대할 때 그의 인내에는 한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한도는 어디까지일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여기에서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는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적이 있는 사람, 말로만 하나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찬미하기까지 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 이들의 깊이 타락한 행실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타락을 어느 정도까지 인내한다는 것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이 바른길을 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인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그저 도덕이 부패하고 사악으로 가득 찬 정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재하고 사람에게 광명과 바른길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오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의 타락이 일단 이런 정도에까지 이르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더 이상 인내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대체하겠느냐? 바로 임하게 될 하나님의 노와 징벌로 대체한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일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기에 의인이 있을까? 하나님이 보기에 완전한 자가 있을까? 하나님의 눈에 이 시대는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타락한 시대가 아니냐? 이 시대에 하나님이 온전케 하려는 사람과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인류 이외에 혈육 있는 자는 모두 하나님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 세상에서 매일 너희 주변에서 발생하는, 너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직접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강포가 가득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보기에 이와 같은 세상과 시대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의 시대적 배경과 노아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인류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이나 하나님의 분노는 그때와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하나님이 인내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역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상황과 조건을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기에 일찍 멸했어야 했다. 홍수로 세상을 멸했던 그 시대의 상황과 비교하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

    …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를 아예 따르지 않거나 본래 그와 적대적이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대하고 그에게 대항하는지, 혹은 인류가 어떻게 그를 비방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는 오로지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경륜 속에서 그가 구원할 대상이 그에 의해 온전케 되었는지, 그가 흡족해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끔 소소한 ‘징계’를 내려 그의 진노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해일, 지진, 화산 폭발 등과 같은 징계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를 잘 따르고 곧 구원받을 사람을 힘써 보살핀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가 온전케 하려는 인류에 대해 엄청난 인내와 관용을 베풀고, 최대한도로 기다린다. 또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를 따르지 않고 그와 적대적인 사탄의 부류를 극도로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는 사탄의 부류가 그를 따르는지, 그를 경배할 수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사탄의 부류에 대해 인내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또한 사탄 부류의 결말을 정하는 동시에 그의 경륜의 시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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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심판 형벌 사역을 하시는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말세의 사역은 각 부류별로 나누는 사역이자 하나님이 경륜을 끝내는 사역이다. 이는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 즉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은 때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날에 이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받아들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인 것이다.』

―<말씀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말씀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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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벌과 심판 사역의 본질은 인류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자 최종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없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를 모두 정결케 하고, 형벌과 심판을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 이로써 구원할 수 있는 사람과 구제 불능인 자를 모두 구분해 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자를 모두 구분해 낸다.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케 되어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서 땅에서 제2의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며,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과 심판을 받고서 본색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뒤에 모두 멸망하여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이런 부류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부류의 자들은 최종의 안식처에 들어갈 자격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을 맞이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의인이 아니라 징벌받을 대상이자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말씀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으로 나타난다. 온갖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이라야 시대를 끝낼 수 있다. 말세가 되었으니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나뉠 것이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결말은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서만 오롯이 드러나고,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본색이 드러난다. 사람은 악한 자는 악한 자끼리, 선한 자는 선한 자끼리 각기 그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형벌과 심판을 통해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착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 이로써 만인은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었고 패역이 너무나 심해서,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로써 모든 불의한 자들을 강력히 징벌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이 어떠하든 그것은 다 사람이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형벌이나 심판,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 감동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원은 거래적인 구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백배로 주는 전제하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너희를 구원하는 지금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마지막 때이다. 그러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말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그저 매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얼마나 크든 너희가 받는 것은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은 전혀 없고,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구원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자비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런 형벌과 심판 앞에서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너희가 처음부터 줄곧 누려 온 것이 모두 구원이 아니냐? 너희는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를 알았고, 더욱이 매질과 징계도 여러 번 겪었지만 또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어느 누구보다 큰 복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생각해 보아라. 만약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정죄하고 징벌하러 왔다면 너희의 날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느냐? 죄에 속하는 육적인 너희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겠느냐? 단순히 너희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성육신하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큰 사업을 벌일 필요가 있었겠느냐? 너희 같은 무명소졸을 징벌하려 한다면 말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굳이 너희를 정죄한 뒤에 멸망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긍휼과 자비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을 완전히 순종하게 하는 데 더 유리하지 않으냐? 사람을 더욱 온전히 구원할 수 있지 않으냐?』

―<말씀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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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사실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조상을 저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심판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고 사람에게 인생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계속되는 심판이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 모든 심판은 사람의 운명에 직접 관련된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여 사람이 그런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인생과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알게 되며, 사탄이 패괴시킨 인류도 알게 된다. 이런 형벌과 심판은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찌를 수 있고, 사람의 영을 불러 깨울 수도 있다. 심판의 목적은 아주 깊이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속은 사람의 마음과 영을 깨우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이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영이 이미 오래전에 죽어 하늘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 줄도 모르며, 더욱이 자신이 죽음의 나락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 찬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자신의 썩은 시체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죽음의 음부에 떨어진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지상 만물이 이미 인류에 의해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오늘날, 창조주가 땅에 와서 구원 가능한 패괴된 사람들을 찾고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온갖 연단과 심판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시종일관 무감각하여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람은 너무도 타락하였다! 이러한 심판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자비한 우박과도 같겠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이로운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고 고해의 심연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을 음부에서 건져 내기 힘들다. 사람의 마음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사람의 영이 사탄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극도로 타락한 너희들을 구원하려면 온 힘을 다해 불러 깨우고 심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차디찬 너희의 마음을 깨울 수 있다.』

―<말씀ㆍ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중에서

    『너희들은 모두 죄악이 넘치는 음란한 땅에 살고 있으며, 모두 음란하고 죄악된 사람이다. 오늘날 너희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형벌과 심판을 받았다. 이런 가장 깊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모두 참된 사랑이며 악의는 조금도 없다. 그는 너희들의 죄악 때문에 너희들을 심판하여 반성하게 하고, 이렇게 큰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원한다. 그는 친히 만든 사람이 완전히 멸망하길 원치 않는다. 지금 또 너희들 가운데 와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구원이 아니겠느냐? 그가 너희들을 미워했다면 또 이렇게 큰 사역을 하여 직접 너희들을 인도하겠느냐? 굳이 이런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들에게 미움도 없고 조금의 악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사람의 패역 때문에 반드시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너희들은 생활할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며, 이 음란하고 죄악된 땅에서 살고 있기에 음란하고 더러운 귀신이다. 그는 너희가 더 타락하는 것이 안타깝고, 너희가 이렇게 더러운 땅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마구 짓밟히고 음부에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오로지 너희들을 얻고 철저히 구원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주된 목적으로, 바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행하는 것이 모두 사랑이고 구원임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그저 일종의 방식일 뿐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의 세계로 돌아가 고통과 고난을 겪으라! 이 흐름 속에서 이 심판과 커다란 구원을 누리고 인간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 모든 복과 이 사랑을 누리고 싶다면, 이 흐름 속에서 고분고분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온전케 되어라. 네가 지금 심판으로 인해 약간의 고난과 연단을 받고 있지만, 이 고난은 가치가 있고 의의도 있다.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연단이고 무정한 폭로이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을 정죄하여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와 육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으로 엄하게 들추어 밝히는 것도 모두 너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직접 체험했지만 하나님이 너희들을 비뚤어진 길로 인도한 적은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은 네가 정상 인성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너의 정상 인성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역은 너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필요한 것을 바탕으로, 너의 연약함에 따라, 너의 실제 분량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하여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 같고, 내가 너를 미워해서 날마다 형벌하고 심판하고 꾸짖는다고 여기지만, 네가 받는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한 사랑이고 커다란 보호다.』

―<말씀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가장 낙후되고 더러운 곳에 임해야 그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전부 드러낼 수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무엇을 통해 드러나겠느냐? 바로 사람의 죄와 사탄에 대한 심판, 죄에 대한 혐오,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원수에 대한 증오를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 내가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죄와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려는 데 있다. 사람의 간사함과 교활함, 사람의 언행 등 그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심판받아야 하며, 사람의 패역은 정죄받아야 한다. 심판을 중심으로 말하는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며 사람의 모든 추한 면모를 밝혀냄으로써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함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상징으로, 그의 거룩함이 곧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오늘날 이런 말들을 하는 배경은 다 너희의 패괴 성품을 빌어 말하고 심판하며,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질적인 사역이며,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전히 부각시킬 수 있다. 만약 네게 패괴 성품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네게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나 더럽고 패역한데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의 불의로 인해 너를 형벌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존재는 근본적으로 죄를 미워하지 않을뿐더러 사람과 똑같이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너를 심판하는 이유는 너의 더러움 때문이며, 오늘 내가 네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너의 패괴와 패역 때문이다. 너희에게 위풍을 떨거나 일부러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러운 땅에 태어난 너희가 더러움에 너무 많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정말이지 인격도 인간성도 잃어버렸으며, 가장 더러운 곳에 태어난 돼지와 다름이 없다. 바로 너희의 이러한 점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또 너희는 바로 이러한 심판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며 거룩한 하나님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거룩하고 공의롭기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패역을 보고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며, 사람의 더러움을 보고 거룩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가 바로 흠 없이 거룩한 존재이자, 또한 더러운 땅에 태어난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다.』

―<말씀ㆍ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중에서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그가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바뀔 수도 없다. 그의 증거와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따라서 그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알게 되고, 성품이 변화되며, 그를 힘 있게 증거하게 된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서 변화된다.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형과 표본이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으며, 하나님 뜻에 맞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들에게 한 요구는 바로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사역을 알라는 것이요,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모든 사역과 사람을 정복하는 모든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증거야말로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사탄을 수치당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어 그를 알게 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하고, 성품 변화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바라지 않고, 그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부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말씀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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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간증ㅡ「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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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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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교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제를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제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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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유래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태초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질병의 고통도, 노동의 수고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며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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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안식을 잃어버리다

    그러나, 아담, 하와에게는 진리가 없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부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했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고,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원래 근심 걱정 없이 살던 삶을 잃고, 안식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면서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고통당했으며, 사람들끼리 서로 시기 질투하고 싸우며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시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서서히 인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간사하고, 사악해져 갔습니다. 도둑질, 강도, 간음, 살인 등 저지르는 죄도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까지 타락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홍수로 사악하고 타락한 인류를 멸망시켰고, 노아의 여덟 식구와 함께 방주에 탄 각 생물들만 살아남았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다

    홍수가 세상을 멸한 후 노아의 후손들은 계속 이 땅에서 번식하며 살아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만 알았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창조주를 만족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바랐지만, 당시의 인류는 하나님의 요구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경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안식하고 있었다. 그때 땅에는 인류도 없고 만물도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 어떤 사역도 행하지 않았다. 인류가 생기고 또 인류가 타락한 뒤에야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고 인류 가운데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1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섬겨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입니다. 이로써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무엇이 죄인지,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게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류가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인류가 율법과 계명을 지킴으로써 행동이 제한되고 규범화되어 인류의 죄는 효과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율법의 구속을 받았지만 사탄에 의해 타락됨으로 점점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죄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결국 그들의 죄를 속죄할 충분한 속죄제가 없게 되면서 그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고 죽음에 처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시대가 이어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율법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지고 무심해져 차츰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멀어졌다. 그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게 되었으며, 그들의 생활은 성전에서 제단을 지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류가 멸망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시 사람의 필요에 따라 2단계 사역,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율법과 계명의 기초 위에서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실행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하며,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고 사람됨의 원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분의 죄 없는 육신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자격이 생겼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람들의 마음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2천 년 동안 계속되었고, 우리는 죄를 저지르고 주님께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는 여전히 존재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간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한 사탄의 본성은 뿌리가 깊어서 항상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명예와 지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거짓말하고, 남을 속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항상 사람을 따르고 우러러봅니다. 또한, 지위가 생기면 우리는 항상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숭배하게 하고 우러러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판단하며,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집안에 천재지변의 화가 닥치거나 평안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한 단계 더 높은 구원 사역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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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안식에 들어가는가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먼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에 들어가는 삶이란 싸움도 더러움도 없고 불의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이다. 다시 말해, 사탄(적대 세력)의 방해도 사탄의 파괴도 없으며, 하나님과 적대되는 세력의 침해가 없는 것이다. 또한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뉘어 창조주를 경배하고, 하늘과 땅이 모두 평온한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안식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갈 때 땅에는 더 이상 불의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어떤 적대 세력의 침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또한 새로운 경지에 들어가는데, 그들은 더 이상 사탄이 타락시킨 인류가 아니라 사탄에 의해 타락했다가 다시 구원받은 인류이다. 인류가 안식하는 날은 하나님이 안식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안식을 잃은 것이지 처음부터 안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고 해서 만물이 활동하지 않거나 만사가 발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더 이상 사역하지 않거나 사람이 더 이상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바로 사탄이 멸망하고, 사탄과 한통속인 악인들이 모두 징벌받아 멸절하며, 하나님과 적대하는 모든 세력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인류가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전 인류가 하나님의 빛과 축복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이 타락시키는 일도 없고, 불의한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두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것을 말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과 인류가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즉, 마지막 하나님의 경륜이 끝난 후에, 만물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고, 사탄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인은 다 멸망해서 이 땅에는 더 이상 더러움과 타락함, 불의함이 없어지고, 사탄의 타락과 방해도 없어집니다. 사람은 모두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며,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이 땅에서 창조주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안식에 들어가서 사는 삶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더러움과 타락함, 불의함으로 가득 차 있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과 사탄에 속한 모든 적대 세력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시고,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은 또 한 단계의 말씀 심판으로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또한 예수님이 말세에 염소와 양, 가라지와 알곡, 선한 종과 악한 종 등을 구별하시는 사역을 하신다는 예언도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수백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6천 년의 경륜,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비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의 타락한 성품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지, 또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도태시키는지, 인류의 이후 결말과 종착지 등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심판 사역하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며, 온전케 하는 동시에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근원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실을 간파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보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이심을 알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미천함과 비열함, 추악함을 보게 되었고,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 하나님에게 점점 충성하고, 순종하게 되며, 성품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사람이 될 때, 사탄도 다시는 우리를 타락시키지 못하며, 우리도 다시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 사탄 및 모든 사악한 세력도 하나님이 내리시는 대재난에 멸망하고,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해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끝나고,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을 누립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며,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희롱당하고, 해를 입으며, 결국에는 사탄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고,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말세에 심판과 형벌을 하는 사역, 즉 정결케 하는 마지막 사역에서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마지막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정결케 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거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진다. 마지막에 얻어지는 그 사람들은 마지막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형벌과 심판 사역의 본질은 인류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자 최종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없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를 모두 정결케 하고, 형벌과 심판을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 이로써 구원할 수 있는 사람과 구제 불능인 자를 모두 구분해 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자를 모두 구분해 낸다.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케 되어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서 땅에서 제2의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며,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과 심판을 받고서 본색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뒤에 모두 멸망하여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이런 부류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부류의 자들은 마지막 안식처에 들어갈 자격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을 맞이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의인이 아니라 징벌받을 대상이자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더 보겠습니다. 『이후의 인류도 여전히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지만 사탄 권세하에 사는 인류가 아니라 구원받은 인류이다. 심판을 받고 정결케 된 인류이므로 아담 하와와 다른 부류이다. 이들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들 중에서 택함받고 마지막 심판에서 굳게 선 인류이다. 패괴된 인류 중에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들만 하나님과 함께 최후의 안식에 들어간다. 말세의 심판, 정결 사역에서 굳게 서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최후의 안식에 들어간다. 사람은 정결 사역을 거쳐야 사탄 권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들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들 중에서 택함받고 마지막 심판에서 굳게 선 인류이다. 패괴된 인류 중에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들만 하나님과 함께 최후의 안식에 들어간다. 이들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들 중에서 택함받고 마지막 심판에서 굳게 선 인류이다. 패괴된 인류 중에서 마지막에 남게 된 사람들만 하나님과 함께 최후의 안식에 들어간다. 안식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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