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관한 성경 구절 ― 친구와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배우다

살다 보면 친구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친구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우정과 관련된 성경 13구절을 보시면서 친구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비법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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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찬양 CCM 2020 – 성육신의 의의

1
성육신이란 하나님 영이 육신 된 것 하나님이 육신 된 것이라네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의 사역 그 사역은 육신에 실체화되네
하나님 육신 외에는 그 누구도 성육신의 직분 대신할 수 없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의 사역할 수 있네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 하며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고 사탄 물리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성육신의 의의
2
육신이 되어 사역함으로써 하나님은 육신이시고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지만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음을 사탄을 물리칠 수 있음을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음을 인류를 정복할 수 있음을 사탄에게 보여 주시네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 하며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고 사탄 물리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성육신의 의의
3
사탄의 역사는 인류를 패괴시키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인류를 구원하네
사탄은 사람을 무저갱에 넣지만 하나님은 그로부터 사람을 구하시네
사탄은 자신을 경배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권세에 복종하게 하시네
그는 창조주이시기에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 하며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고 사탄 물리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성육신의 의의
4
이 모든 사역 이루신 두 번의 성육신
그 육신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며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라네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 하며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고 사탄 물리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성육신의 의의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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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배 와 찬양 듣기 — 하나님 인류 경영 사역의 의의

「돌아오신 그분은 누구실까」 하나님의 심판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아십니까? 하나님은 왜 말세의 심판 사역을
사람을 써서 하시지 않고 성육신해 친히 하실까요?
이 영상을 통해 당신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바로보기:돌아오신 그분은 누구실까

매일 성경 큐티 : 마태복음 7장 21~23절

이른 아침, 창가에 앉아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계속 읽기 “매일 성경 큐티 : 마태복음 7장 21~23절”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99)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자신이 만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무엇보다 먼저 육신, 특히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삶과 사역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의 삶이다. 일반인의 가정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며, 정상적인 생활 윤리와 법칙, 필요(의식주 등), 보통 사람과 같은 연약함, 희로애락 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정상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의 삶이다. 이때도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일반 인성으로 산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초자연적인 부분이 없어 보이지만, 직분을 이행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오로지 신성의 사역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직분을 시작했다는 것은 정상 인성이 이미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정상 인성으로 직분을 이행하는 삶이며,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첫 번째 단계의 삶이 온전히 평범한 인성으로 사는 삶인 이유는 그때의 인성이 신성의 모든 사역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성이 성숙해질 때까지,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육신인 이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의 삶은 그저 정상 인성의 삶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인성으로 사역을 충분히 담당하고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하나님이 직분을 이행하는 기간의 삶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태어나자마자 정식으로 직분을 이행하고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보인다면, 육신의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의 본질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간에 속한다. 이렇듯, 육신의 인성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성육신한 하나님께는 신성만 있을 뿐, 인성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육신의 원칙과도 위배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옷을 입은 신성으로 살며 사역한다. 다만, 이때의 인성은 오로지 신성이 정상 육신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인성 안에 있는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즉,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성은 인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인성이 아닌 완전한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단, 이 육신으로 사역하는데, 이 육신을 사람이라고도,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의 외형과 본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즉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한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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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발췌문 122)

하나님을 경외하는 3가지 방법 –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

저는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고,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열심히 주님 위해 헌신하고 사역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인내하며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았고, 이미 세상 사람들과도 구별되게 살면서 악인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분명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저는 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리에 관한 나눔을 보았는데 정말 많은 점을 배웠습니다. 제가 이 분야의 진리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세 가지 실행 원칙을 여러분과 교제하고,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1. 사람의 마음과 폐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게 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성경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편 44:21)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모두 손금 보듯 환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영의 감찰을 받아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도할 때, 진솔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과 진실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마주하면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보시고 성령이 우리의 몸에 역사하셔서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시며, 인도하십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요나가 전하는 소리를 듣고는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한 것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 그 성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좋은 말로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거나 거짓말로 하나님을 속이면 성령은 분명 우리를 돌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주 속이면 반드시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결국 내쳐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며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대 백성들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경건하고 충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증오했고 그들을 모두 외식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가복음 7:6~7)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첫 번째 실행 원칙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을 경외하는 3가지 방법

2.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고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하게 알고 있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10),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잠언 13:13~14)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어떤 일은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실하게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심으로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이 간음한 후 나단이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다윗은 바로 후회하고 자신을 증오하며 재빨리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에 이때부터 칼과 검이 그의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사사로운 감정이 없으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면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사람도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말년에 몸이 차가워지자 신하가 그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소녀를 주었지만 다윗은 그녀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공의롭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런 마음이 우리를 악에서 멀어지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못하게 합니다.

3.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유의해야 하고, 항상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예레미야 애가 3:25) 우리는 살면서 항상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사물에 직면하게 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역사는 때때로 우리의 관념과 상상과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조용히 기다리고, 하나님이 배정한 사람과 사물에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구하고 헤아리며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과 요구대로 실행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고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욥처럼, 재산과 자녀를 다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는 시련을 겪을 때도 욥은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추측도 판단도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지막에 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칭송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힘있게 증거했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는 그의 상황을 알았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욥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징벌을 받았다고 마음대로 단정했습니다. 그들의 우매함과 그릇됨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해서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 대해 모두 손금 보듯 환하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분량을 알고, 어떠한 환경이 우리의 생명이 자라는데 유익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임할 때 비록 우리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나 진리를 구할 때는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자신의 육적인 것을 배신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분명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경건하고 정직하며, 일을 할 때도 겸손하고 방종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신중하고, 침착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와 살 수 있고, 마음에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상의 몇 가지 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걷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데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교계가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거부한 결과와 결말

관련된 하나님 말씀: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교계가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거부한 결과와 결말
교계가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거부한 결과와 결말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가져다준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이 영원히 혐오하는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도에 순종해야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의 공급을 거부한 채 복받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말세에 그리스도가 온 이유는 그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이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사역이며, 새 시대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네가 인정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모독하거나 핍박을 가한다면, 반드시 영원히 불태워질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이 그리스도는 성령의 발현이자 하나님의 발현이며,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다.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명심해라. 네가 말세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저버린다면 아무도 너 대신 그 대가를 치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고, 나아가 만회하고자 해도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대적하고 저버린 이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느냐? 너는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진리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말고, 사실을 외면한 채 함부로 말하지도 말라. 너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를 소생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언짢게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은 흔히 사람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고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 둔다. 사람은 땅에 있는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한 지고지상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머리는 썩은 물웅덩이 같아서 구더기만 나올 뿐이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하는데, 그러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일지는 뻔한 사실이다. 각자 자신을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말기를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대단하냐?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 때문에 심판사역을 두 번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너는 크게 후회할 것이다. 만약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하늘의 크고 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라! 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저버리고 부인했지만 예수가 인류를 속량한 일은 우주 땅끝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니냐? 네가 아직도 예수가 너를 맞이해 하늘나라로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고집불통에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하겠다. 예수는 진리에 충성스러운 마음이 없으면서 복만 받으려고 하는 너 같은 거짓 신자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가차 없이 불 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태울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이 징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그의 발걸음을 따라 그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한사코 고집을 부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트집을 잡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흠을 찾거나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면 결국에 손해를 보는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은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누군가에게 떠넘겨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목표, 선택 과정이 있다.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징벌뿐일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의로 대한다. 네 나이가 얼마나 많고 경험이 얼마나 풍부하든, 나아가 지난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절대 그것들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과대평가하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리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네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과 그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이대접만 받으려 하고 연장자 티를 내며 하나님께 조건을 들이민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너를 떠나가게 된다. 그럼 너는 유대인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메시야만 을 기다리다가 결국 하나님의 저주와 분노를 산 바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

… 바리새인들의 지식과 외적인 행위는 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망쳤다. 그들은 지식과 관념, 그리고 마음속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예수를 정죄했으며, 상상과 생각 때문에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영안(靈眼)이 가려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세상에 온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갖은 노력을 다해 증거와 빌미를 찾아 예수를 정죄했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하나님 사역을 지킨다는 것을 핑계로 오늘날 전개되는 하나님의 현실적 사역을 정죄하는 그들의 추악한 면모이다. 물론, 이는 또한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그들은 낡은 도리와 규례로 자신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참도를 수호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절을 지켰다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어떠하냐? 하나님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역을 펼치고, 그의 경영을 행한다. 언제나 새롭다는 말이다. 반면, 사람은 어떠하냐? 언제나 얼마 안 되는 낡고 케케묵은 것들을 지키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선포라고 착각하며 득의양양해하고 우쭐거린다. 또한, 하나님이 영원히 자신을 버릴 리 없고, 푸대접할 리 없다는 태도로 상을 베풀기만을 기다린다. 그 결과는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새 시대의 사람들이 더 많이 그를 따르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때, 상을 받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도태될 것이며,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징벌 가운데 떨어질 것이다. 그들이 징벌을 받는 그 순간,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삶은 그렇게 끝나고, 그들의 결말과 종착지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우리 눈앞에서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무정한 것이겠느냐, 아니면 사람이 제대로 추구하지 못한 것이겠느냐? 이것은 사람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문제 아니겠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징벌받은 대표적인 사례ㆍ후기> 중에서

은혜시대, 예수님이 전하신 것은 사람을 회개시키는 도에 불과하다

은혜시대, 예수님이 전하신 것은 사람을 회개시키는 도에 불과하다
은혜시대, 예수님이 전하신 것은 사람을 회개시키는 도에 불과하다

성경 참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5~47)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를 말씀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마지막에는 죄에서 인류를 속량함으로써 그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의 사역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이뤄졌다. 그는 그의 사역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 겸손, 인내, 사랑, 경건함, 포용, 긍휼 그리고 자비의 성품을 가져왔으며,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 그리고 온갖 누릴 것들을 베풀어 주었다.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은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함, 영적인 위로, 예수에 대한 의존감 등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런 것은 다 그들이 살던 시대와 관련이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있었다.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행하고 그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풍성한 은혜와 한없는 포용, 인내, 나아가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해 줄 수 있는 속죄 제물이 있어야 했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죄를 사해 주는 속죄 제물, 즉 예수만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았으며, 그들이 본 것 또한 예수의 긍휼과 자비뿐이었다. 이는 다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주는 수많은 은혜를 누려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은혜를 누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예수가 베풀어 준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써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인해 사람은 죄 사함 받을 자격을 얻었고, 그가 베풀어 준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예수가 ‘의인을 구속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 예수가 인류를 사랑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충만한 긍휼과 자비를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에게 구원받을 자격이 더 생기고, 예수가 비싼 값을 들여 사 온 길 잃은 양이라 일컬어지게 된다. 반면 사탄은 그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예수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했기에, 노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진노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고 그들의 죄를 포용해 주었고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그의 마음으로 감화시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의 포용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도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

『예수가 행한 사역은 단지 속량하기 위한 것이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사람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했다. 그의 사역이 성경을 벗어나지 않아도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행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도,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사역도 아니라 다만 인류를 속량하기 위한 사역이었다. 단지 인류의 속죄 제물만 되는 것이지 인류에게 말씀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가 사역할 때,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막연하고 모호하게만 알고 있었다. 줄곧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기고, 대선지자이자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인자한 주님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고, 소경도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은 자도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품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것을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 육체의 평안과 즐거움,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고, 병이 낫게 되는 것과 같은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 외에도 선행을 하고 경건한 겉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신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고 그런 신자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생전에 생명의 도를 전혀 알지 못했고, 그저 죄를 짓고 자복하기만을 반복할 뿐 성품이 변화되는 길은 없었다.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상태였다.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얻었느냐? 그렇지 않다!』

『사람이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들은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렇다면 속죄 제물이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하였을 뿐이다. 사람에게 아직도 패괴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은혜시대에는 회개의 복음을 전했으며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것만 말할 뿐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한 명이 하나님을 믿으면 온 집안이 복을 받는다거나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말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봐도 없다. 이것은 너무나 케케묵은 말이다.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는 자는 속량받았고, 죄에 속하지 않고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모두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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