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은혜시대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뀌었나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하다면 계속 그 이름을 써야 하지 않나요? 여기에 더 깊은 의의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분명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오늘은 우리가 ‘왜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는 이름을 쓰셨고, ‘예수’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의가 있는지’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속성과 행사는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어떠한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름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을 인도하고, 구속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에 따라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가졌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고, 백성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율법과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율법과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의 정죄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이 드러낸 성품은 진노와 저주의 성품이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 이미 율법으로 정죄되어 죽음의 형벌을 당해야 하는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처음으로 성육신이 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하고, 주님께 죄를 자백해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자애로움과 긍휼하심은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사역하실 때 드러내신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마다 드러낸 성품도 모두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이에 따라 바뀌었고, 이는 하나님의 항상 새로운 사역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학교에서 선생으로 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가 더 이상 선생으로 일을 하지 않고 직장을 새로 옮겨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만났을 때 여전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우리가 전에 했던 일에서의 칭호이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호칭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 직업에 따라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성품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수’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 사역의 목적은 더더욱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 단락의 내용과 같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할 때 택한 이름으로, 원래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삶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구속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영 계획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고 있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복장을 하고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낸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표하고 은혜시대도 대표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역사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표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표하며, 은혜시대에 구속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제 하나님이 시대마다 취한 이름에는 모두 비범한 의의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역의 원칙, 시대별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이름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냥 흐리멍덩하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주님에게 은혜와 축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들을 인도해왔는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오셨는지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예수님의 재림을 더 잘 영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취하신 것이 그 시대에 행한 사역과 성품을 나타내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어떤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실까 걱정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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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을 간파하는 ‘비법’

2005년, 저는 다행히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하셔서 중국이라는 무신론 국가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도 교회에서 본분을 했습니다. 제가 자신감이 넘쳐 본분을 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풍파가 한 차례 닥쳐왔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저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저를 보고 싶어하는 줄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갔습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 두 언니(역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가 있었는데 집안은 긴장감이 팽배한 분위기였습니다. 순간, 아버지가 엄숙하게 “너희들이 믿는 것이 ‘동방번개’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맞습니다.”라고 하자 아버지 얼굴이 단숨에 불쾌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너희들 믿지 말아라. 오늘 당원 회의를 했어. 지금 나라에서는 이 교파를 엄하게 단속하고 있단다. 만약 누구 집에 믿는 사람이 있으면 공직에서 파면시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녀들이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고 직장을 구하는 데에도 역시 제한을 받게 돼. 너희 자신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생각해야 돼! 너희들이 대학에 붙지 못한 것도 한이 되었는데, 설마 아이들도 너희들처럼 농촌에서 한평생 힘들게 일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너희들 잘 생각해 보거라…… ”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덜컥’ 했습니다. 속으로 ‘그렇지 않겠지, 하나님 믿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다 사람을 바른 길로 이끌어 가게 하잖아.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나라를 반대하지 않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나라를 반대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요.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른 길을 걷는 것 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시며 “나라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못 믿게 할 거다. 우리의 미미한 힘은 큰 세력을 이기지 못해. 나도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너희 때문에 걱정하게 하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조급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뭐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무신론 정당’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참 하나님을 믿으려면 정말로 너무 어렵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국가가 반대하고, 게다가 엄하게 단속한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쓰러졌습니다. 어머니의 야윈 얼굴을 본 제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어머니는 우시면서 “딸아, 믿지 말아라. 너희들 중에서 네가 말을 가장 잘 들었는데, 이번에 엄마 말을 들어라! 네가 믿지 않겠다고 말하면 엄마 병은 곧 나을 거야. 너는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있니? 엄마를 위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들을 생각해야 돼! 아이들은 네가 키웠는데 너는 아이들이 너와 같기를 바라는 것이냐?”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스러워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병을 얻은 것이니까요. 이전에는 집에서 제가 말을 가장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일이 닥치니 저는 어머니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또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계속 의사 표현을 않자 화가 나서 저를 밀치며 “이 고집쟁이야, 믿지 않으면 안 돼? 너 기어이 나를 화병으로 죽게 하고 싶어? 하나님 믿는 것이 니 엄마보다도 중요해? 내가 이렇게 너 때문에 고통받는 것 볼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머리를 떨구고 울면서 “엄마, 화내지 마. 화병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화병으로 죽으면 차라리 나아! 너희 때문에 속 썩지 않게 말이야. 내가 어떻게 너희 같은 이런 불효자식을 키웠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말을 듣고 제 마음은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날, 그 일이 있고 난 후, 딸이 바닥 옆에 앉아 울면서 “엄마, 믿지 마. 엄마가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고 일 자리 찾는 것을 그르치게 돼. 엄마는 대학에 다니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했잖아. 설마 나도 엄마처럼 집에서 농사나 짓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 엄마, 내가 빌게. 믿지 마. 나와 여동생을 위해 한 번만 외할머니 말을 들어……”라고 말했습니다. 딸아이가 울면서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저는 온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었고 단숨에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딸은 저의 피붙이로 딸의 학업을 위해 온갖 신경을 쓰고 특별히 애쓰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 아이가 정말로 나 때문에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되면 아이의 일생은 내 손에 망가져!’ 저는 마음속으로 점점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계속 하나님을 믿을까 염려되어 저를 집에 가둬 놓고는 교대로 지키면서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해서 저 역시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계략’을 간파하는 ‘비법’

저는 바닥에 누워 아버지가 한 말과 어머니의 병 그리고 아이가 애걸복걸하던 것을 생각하니 단숨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비록 나는 하나님을 믿어도 나라를 반대하지 않고, 우리가 다 바른 길을 가고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은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미미한 힘은 큰 세력을 이기지 못해. 만약 중국 공산당 정부가 아이에게 대학 입학 시험도 치르지 못하게 하고, 일자리도 찾지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할까? 아이의 성적은 아주 좋고 아이도 대학에 붙어 나중에 좋은 직장을 갖기 바라는데, 정말로 아이에게 일하지 못하게 한다면 나를 죽도록 미워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나 역시 대학에 붙어 출세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주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을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지?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만 둘 수 없어. 말세에 하나님이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이 사역을 바짝 따르는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야. 형제자매들과 함께 서로 단순하게 마음을 털어 놓는데, 세상에서 사람들이 서로 암투를 벌이고 서로 뺏고 빼앗으며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과 같지 않았어.’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고, 저는 한 번 또 한 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지금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을 믿으면 또 아이들의 앞날에 영향을 줄까 봐 두렵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힘든가요? 설마 인생의 바른 길을 가고 싶은 것도 안 되는 것인가요? 그들은 왜 저를 속박하려고 합니까? 저는 정말이지 계속 나아갈 수 없어요…… ” 그 순간 저는 체험 찬양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내가 사탄에게 포위 공격 당할 때 당신은 날 선 검으로 나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이때, 제 마음에 한 줄기 밝은 빛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설마 나에게 임한 이 모든 것이 사탄의 포위 공격이란 말인가?’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았고, 가족들이 교대로 지켜 하나님 말씀을 읽을 기회가 없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가족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도망쳐 나왔습니다.

제가 하나님 집 자매를 보았을 때, 서러워 울면서 “저는 정말이지 믿지 못하겠어요. 어머니는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화병이 나셨고, 아이 역시 저에게 애걸복걸해요. 만약 계속 믿는다면 아이의 앞날은 곧 없게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는 웃으면서 저에게 “자매님! 자매님에게 임한 이 모든 환경은 영계(靈界)의 한바탕 싸움이에요. 우리는 사탄의 궤계에 빠지면 안 돼요! 우리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보도록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매가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하여 사탄이 갖은 방법을 써서 참소하는데 이 기회를 빌어 하나님을 공격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로 인해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다만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며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한다. 그런데 사탄은 오히려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자민들에게 또 적지 않게 공을 들여 그들로 하여금 소극적이 되게 하고 뒤로 물러나게 하였으며 심지어 방향을 잃게 하였다.

말씀을 읽고 나서 자매가 교통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사람을 철저히 구원하려고 하시는데, 사탄은 도리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빼앗아 갑니다. 사탄이 보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므로 그것은 갖은 방법을 다해 사람을 시험하고 공격해요. 주위의 인사물을 통해 사람을 교란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구원받는 길을 가지 못하게 해요. 마치 욥에게 임한 시련과 같지요. 겉으로 보기엔 강도에게서 비롯됐지만 실제는 영계에서 사탄이 인정하지 않아 욥을 참소해 초래된 거지요. 욥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간증을 섰기에 나중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탄의 궤계를 깨뜨리지 못해 하마터면 사탄에게 속아 사탄에게 사로 잡혀갈 뻔 했어요. 그러므로 이런 일이 임하면 겉보기에는 마치 사람이 방해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사탄이 방해하고 파괴하는 것이에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매 단계의 사역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같고 마치 사람의 안배에서 비롯되거나 사람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매 단계의 사역과 매사의 배후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내기를 한 것이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을 때 배후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지만 욥에게 임한 것은 사람의 행위이고 사람의 방해인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매 단계 사역의 배후에서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고 있고 배후에는 모두 싸움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것이 바로 영계의 한 바탕 싸움이고, 사탄의 궤계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중국 공산당 정부가 협박하는 수단을 이용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공산당 정부가 아이들에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해서 아이들의 앞날을 망칠까 봐 걱정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앞날과 운명은 중국 공산당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어요. 자매님의 딸이 나중에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지와 좋은 일자리가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사실 하나님께서 명정(命定)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더 분명해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기에 너는 너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 언제나 자기를 위하여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삐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만약 자기의 전망을 알 수 있고 자기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그래 피조물이라고 하겠는가?……사람의 귀숙이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는데, 사람이 어찌 스스로 자기를 장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통을 듣고 난 후, 저는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것이 원래 사탄의 궤계라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하마터면 사탄에게 속을 뻔 했어요. 하나님께서 전에 저를 말씀으로 일깨워 주셨어요.“내가 사탄에게 포위 공격 당할 때 당신은 날 선 검으로 나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하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자매와의 교통을 통해 저는 이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알게 됐어요. 원래 저에게 임한 이런 환경은 다 사탄의 방해와 포위 공격이었어요.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길을 열어 주실 거예요. 제가 참되게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어요. 사탄이 방해하는 것을 통해 저에게 영계의 싸움을 간파하게 하셨고, 저의 믿음이 더 굳세지게 했어요. 사탄이 어떻게 교란하고 어떻게 간계를 부리든 절대 물러서지 않겠어요.” 그때 저의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비록 가족들이 여전히 저를 지켰지만 저는 기회가 있으면 몰래 빠져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를 보름 동안 지켜보다가 믿음을 포기할 뜻이 없음을 보고 나중에는 더 이상 지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고 사탄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일종의 말 못할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여전히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또 남편을 통해 저를 핍박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은 제가 하나님을 믿어 아이들의 앞날에 영향을 줄까 봐 염려가 되어 화가 나서 미친 듯이 자기의 머리를 벽에 박았습니다. 머리를 박으면서 “당신이 하나님을 믿어 아이들의 앞날에 영향을 주는 거야. 이 집구석이 당신 때문에 엉망이 되면 나는 살지 않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울면서 남편 머리를 감싸 안았는데, 남편이 머리를 박아 죽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몸을 빼더니 다시 머리를 벽에 박으면서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 난 죽겠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속으로 ‘남편은 내가 기댈 사람이고 집안의 기둥인데 죽으면 나도 살 수 없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남편이 죽는다면 나는 죄인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두세 시간 동안 등쌀에 못 이겨 저는 지쳐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자매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궤계입니다.” 그래서 저는 손을 풀고 다른 방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탄이 또 남편을 이용하여 저를 교란하고 공격해 당신을 멀리하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의 꼬임에 빠질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 손안에 장악되어 있다……” 저는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지 내 손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 아니야. 남편이 정말로 죽으려고 한다면, 내가 설사 오늘은 지킬 수 있다고 해도 내일은 지킬 수 없어. 나는 지키지 않고 그를 하나님 손에 맡겨 모든 것을 하나님이 배치하고 안배하시게 해야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남편은 제가 그를 상관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벽에 박지도 않고 바닥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겠어. 난 다시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그것은 바로 한 바탕의 영계 싸움이라는 것을 더욱 더 실증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남편을 통해 저를 공격해 저로 하여금 소극적이고 뒤로 물러서게 했는데, 제가 간증을 섰을 때 사탄은 곧 물러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나의 지혜는 사탄의 궤계 위에 세워진다.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면 사탄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의 큰 딸은 순조롭게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일을 경력한 후에 저는 인간 세상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장악되어 있음을 더욱 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바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바둑돌에 불과한데,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권병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재자이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어떠한 사탄 세력의 방해와 통제도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은 권병이 있고 위력이 있으며, 사람이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는 ‘비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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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림 받는 길’이 여기에 있다!

무더운 오후, 매미는 나무에 붙어 맴맴맴맴 끊임없이 울고, 길가의 화초와 나무는 혹서에 시달려서 모두 힘 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한 주택가에서 한나가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지금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의 모습과 세상의 정세로 봤을 때 말세는 이미 왔어요! 세계 각지에서 지진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고, 국제 정세는 불안하며. 게다가 전쟁이 끊이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고, 집들은 파괴되었어요. 세계적으로 난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근, 전염병, 수해, 가뭄도 점차적으로 만연하고 있고,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어요.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고, 그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과 만날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한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동역자들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딴 생각을 하며 성경을 뒤적이고, 어떤 이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탄식하고, 어떤 이는 귓속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속삭이기도 했다.

이 자매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형제자매들은 주님의 재림이 자꾸 늦어지다 보니 다들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어요! 각처에서 재난이 점점 더 심해지고, 네 번의 핏빛달도 이미 나타났어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아직 들림 받지 못했는데, 누가 연약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장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아이 참! 누가 아니래요! 대재난이 곧 닥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들림 받지 못했으니 대체 뭐가 문제죠? 참, 송 자매님, 자매님은 계속 외지에 있느라 우리 동역자 모임에 어렵게 참석하셨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송가인은 모두를 보더니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기본적으로 벌써 이루어졌어요. 주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다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있어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들림 받지 못했을까요? 이 의문을 가진 전 애가 타서 사방으로 구하러 다녔고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됐어요. 원래 ‘들림 받다’는 우리가 상상한 그런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들림 받는 길’이 여기에 있다!

송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래 무거웠던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져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송가인에게 시선을 보내며 정중하게 말했다. “송가인 자매님,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매사에 성경을 따라야 해요.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어요. 자매님이 ‘들림 받다’가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나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송가인을 향했다….

송가인은 미소를 띤 채 모두를 보며 말했다. “‘들림 받다’가 땅에서 하늘로 끌어올려진다라는 주장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 먼저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찾아봐요. 계시록 21장 2~3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계시록 11장 15절에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셨구요. 이 예언들 중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분명 땅에 있어요.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이건 하나님이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말씀이에요. 예언에 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하셨어요. 이런 예언은 우리가 결국에는 땅에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만약 우리가 ‘들림 받다’를 하늘로 끌어올려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어요? 계시록의 이 예언들이 또 어떻게 이루어지겠어요?” 장 형제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는 뜻이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할 줄이야! 전에 우리는 왜 그 뜻을 읽어 내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데, 우리는 하늘로 들림 받아 가려고만 했어요. 이건 주님의 말씀에 역행하는 거예요!”

송가인이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하나님이 인류를 만드신 후에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땅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가 땅에서 사는 것이지 우리를 하늘로 보내 살게 하려는 게 아니예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았어요. 그때부터 인류의 조상은 땅에서 그들의 범죄 후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범죄 후의 사람이 땅에서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도 당연히 땅에서 이루어지죠.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서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이끄셨어요. 은혜시대,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셨죠. 이런 사역은 다 땅에서 하신 거예요. 또 계시록에 앞으로 하나님이 남아 있는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종착지는 여전히 땅에 있다고 예언했어요.”

임 자매가 손에 든 물컵을 얼른 내려놓으며 감격해서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예전에 저는 우리의 육적인 몸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무거운 몸을 어떻게 공중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보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어요!”

형제자매님들의 한바탕 말에 한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송가인의 나눔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한나: “송가인 자매님, 자매님이 하신 말은 일리가 있지만 성경에는 분명 에녹과 엘리아가 들림 받아 승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하죠?”

송가인은 한나를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8장 39~4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빌립이 하나님의 영에게 이끌려 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고정 관념에 따르면 빌립은 분명 주님에게 들림 받아 하늘로 갔어요. 하지만 사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빌립이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게다가 빌립은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에서 주님의 뜻을 행했어요. 거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다 우리의 고정 관념이고, 사실이 아니예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3:13) 예수님만이 천국의 대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만약 우리의 생각으로 에녹과 엘리아가 하늘로 들림 받았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우리의 상상이 정확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할까요?” 한나는 그동안 추구했던 목표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문했다. 설마 그동안 간절히 바랐던 ‘들림 받다’가 정말 틀린 것일까?’ 마음속에서 한바탕 격렬한 전쟁이 일어난 후, 그는 송가인에게 질문했다. “송가인 자매님, 만약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추구했던 ‘들림 받음’이 틀렸다면 무엇이 진정한 ‘들림 받음’인지 한번 얘기해 보세요.” 송가인은 얼른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이 문제를 속시원하게 나눌 수 있는 한 단락을 적어 왔으니까 여러분에게 읽어 드릴게요.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 택하는 이 일을 의미한다. 즉, 예정되고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놓고 한 말이다. 누군가 장자의 명분을 얻든, 아들의 명분을 얻든, 또는 백성의 명분을 얻든 전부 들림 받을 대상이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미래의 내 집에 분깃이 있는 자라면 전부 들림 받아 내 앞에 올 자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는 들림 받아 내 앞에 온다.』 ‘들림 받다’는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한꺼번에 공중으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율법시대 말기,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들림을 받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말세의 오늘,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받아들이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들림 받음이에요.”

이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진정한 ‘들림 받음’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알겠네요!”

장 형제가 감격하며 말했다. “맞아요! 오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라면 몇 년을 더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진리를 선포하실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듣고 ‘신랑의 음성’임을 알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어요. 이제 우리에게 들림 받는 길이 생겼어요!”

송가인과 동역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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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주를 맞이할 수 있다

진리란 무엇일까요? 진리는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2~13) 계시록 2, 3장에도 여러 차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는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언에서 보시다시피 주께서는 말세에 재림하실 때 또 말씀하실 것이고, 사람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려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예수님께서 처음 오셔서 사역하실 때는 사람들에게 회개의 도를 베풀어 주시고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목양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셨죠. 하지만 성경을 익숙히 아는 바리새인들은 진리가 뭔지도 모르고 예수님이 참람한 말을 한다며 정죄하였습니다. 심지어 진리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해 하나님의 징벌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운명의 결말에 직결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진리를 알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럼 함께 교제하며 논의해 봅시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주를 맞이할 수 있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주를 맞이할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면 우선 진리의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도가 계셨느니라. 이 도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도는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중국어 성경 직역)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도’는 곧 하나님이시고, ‘도’는 곧 말씀이십니다. ‘도’는 곧 진리, 길, 생명이십니다. ‘도’가 ‘육신’ 되심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실체화 되신 것입니다. 즉 진리, 길, 생명이 다 육신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 즉 하늘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인자가 되어 인간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신성의 본질을 지닌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갖추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실체화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곧 진리, 길, 생명이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들에게 길과 생명을 가져다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진리란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지만,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진리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고 인류의 최고 인생 격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하나님 자신이 직접 행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 격언’이라고 한다. 이 격언은 귀납한 것도 아니고 위인의 명언도 아니라 천지 만물의 주재자가 인류에게 발한 음성이다. 또한 사람이 이리저리 연구하고 분석해서 얻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 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모두 진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온전히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 경륜의 비밀, 그리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뜻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진리이며, 이는 우리의 삶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실행 원칙과 방향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생명의 도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생명의 소시로, 권병을 지니고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에 따라 살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종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이끌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가 이룬 성과입니다. 이런 진리는 그 어떤 사람도 선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영적인 유명 인사가 사람에게 덕이 되는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말은 진리가 아닙니다. 단지 진리에 대한 한정된 체험 인식이기 때문에 사람의 관점과 견해, 터득을 대표할 뿐이고, 개인의 분량과 하나님, 그리고 진리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을 대표할 뿐입니다. 인식이 아무리 높아도, 아무리 진리에 맞게 말할지라도 단지 사람을 일시적으로 도와줄 뿐이지, 사람을 구원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사람의 생명이 되는 성과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죄를 짓다 보니 율법을 지키지 못해 모두 율법에 의해 죽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적 유명 인사나 종교 지도자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실행의 길을 가져다주어 사람 생명의 필요를 공급해 줄 수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도를 베풀어 주시고 구속 사역을 하셔서 사람의 죄를 사함 받게 하심으로써 율법의 정죄와 징벌을 면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게 하셨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더없이 크신 사랑을 보게 하셨으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실행의 길을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지며,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는 등의 여러 가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진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모두 새로운 실행의 길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삶과 사람됨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실행 원칙과 방향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면 외적인 행위에 다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게 되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며, 어느 정도 정상 인성도 살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가 사람에게서 이룬 성과입니다.

이로부터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선포하실 수 있고, 사람에게 새로운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실 수 있으며,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어떤 영적 유명인이나 종교 지도자들도 말할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주님을 맞이하는 데 길이 생기게 됩니다. 누군가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적극적으로 참도를 찾고 구하고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 도(道)가 진리의 말씀인지,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본다면,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는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진리를 선포하신다

앞에서 진리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진리를 공급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말세에 사람들에게 또 어떤 진리를 베풀어 주시려고 하시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확실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패괴된 인류의 각기 다른 시기의 필요에 따라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하셨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사람들이 모두 율법을 지키지 못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는 한 단계 사역을 하셔서 사람의 죄를 사함 받게 하시고, 은혜시대 사람들이 진입해야 할 길을 가리켜 주신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에 따라 실행해 외적으로 많거나 혹은 적게 어느 정도는 모두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또 늘 죄를 짓고 있고, 설령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죄의 속박과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에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을 정결케 하시는 사역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직 말세에 진리의 성령께서 오셔야만 이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2~13)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7~4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4: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그리고 계시록에도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런 예언에서 보면, 당시 사람들의 분량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은혜시대에 사탄 본성을 해결하는 길을 가리켜 주시는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오셔서 은혜시대보다 더 많고 더 높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한 단계의 심판 사역을 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사역과 말씀을 통해 우리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진리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드시고, 진리로 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변화하게 하여 죄악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최종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주님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말세에 베풀어 주시는 진리를 얻어야만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들었는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만이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심으로써,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고,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예언이 응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으로 인류는 더 높은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게 되고,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구속 사역으로, 사람의 죄가 사함 받아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짓는 본성과 사탄 성품은 사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늘 주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증오하며, 또 교만하고 잘난 척하며,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을 높이며, 다른 사람을 헐뜯을 수도 있습니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환난과 시련이 임하면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을 때는 또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죄를 짓고 자백하는 것을 반복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의 속박과 통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께서 하신 구속 사역을 기반으로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며, 하나님의 공의, 위엄, 진노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완전히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짓는 근원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십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는 모두 하나님나라시대에 사람들이 갖춰야 할 생명 실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창조하실 때의 마음과 인류를 구원하시는 전체 경륜의 비밀을 모두 밝혀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의 비밀, 각 단계 사역의 내막과 본질, 하나님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탄이 인류를 어떻게 패괴시켰는지,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수단과 간계 등등에 대해 모두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폭로하고 분석하셔서 사람으로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진상과 본질을 알게 하셨고, 사람들에게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는 길 등에 대해서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들에게 사람됨에 있어 인격이 있고, 존엄이 있고,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셨으며,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되는지에 대한 요구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베풀어 주신, 사람이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입니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진리를 얻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에 선포하신 진리를 생명으로 받아들인다면,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되어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진리를 얻은 사람이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의 도를 얻은 사람입니다.

생각해 볼까요? 어느 영적 유명 인물이 이런 진리를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비밀을 분명하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피조물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진리를 발표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되어 찾고 구하고 알아보는 전 인류가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사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 말씀이 바로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하고, 잇달아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면서 패괴 성품들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여러 가지 간증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겪으면서 진실한 회개를 이루어 생명 성품이 변화된 간증, 진리를 실행하여 성실한 사람이 되고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된 간증, 시련 연단 가운데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간증, 그리고 이긴자의 간증 등이 있습니다. 이런 간증도 모두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진리이기에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와 동심합의한 사람들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땅에 임했습니다.

신위(心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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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분별법을 배우고 주님을 맞이했어요

성경에서 예언한 마지막 때의 징조가 기본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신밍 형제는 주님이 오실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미혹하기 때문에 분별력이 없는 자신이 거짓 그리스도에게 현혹당하지 않을까 고뇌하고 불안해했습니다. 그가 과연 분별하는 방법을 찾았을까요? 아울러, 주님의 재림을 맞이했을까요? 신밍 형제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막막함

2016년 11월의 어느 하루, 한 자매님이 위챗 그룹에 <하나님의 큰 공이 이루어졌음을 찬양하네>란 영상을 올렸고 한 전도사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전도사는 그 영상이 ‘동방번개’에서 제작한 것이고 그들은 주의 재림을 전하는 미혹하는 자들이라며, 그 영상을 보지도 말고 공유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호기심이 생기는 바람에 그 영상을 잠깐 보았는데 출연자들의 모습이 생기발랄하고 행복하고 메시지도 긍정적이고 부적합한 면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전도사의 글이 갑자기 생각나서 영상을 끄고, 호기심에 다시 볼까 봐 아예 삭제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교계 목사님들이 설교 때 늘 빼놓지 않았던 주님의 예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 13:21~22) 순간 긴박감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미혹할 테니, 저는 성경을 많이 보고 진리로 무장해 분별력을 키워서 미혹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경을 더 빨리 통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고 영적 서적을 더 샀으며 예배 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진부해서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연민과 사랑과 은혜, 설교 말씀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주님의 재림에 관한 중요한 내용은 일절 없었습니다. 물론, 주님이 오실 때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도 기본적으로 이뤄졌는데, 제대로 된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기만 하고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행여나 미련한 처녀처럼 주님을 맞이하지 못할까 걱정이었습니다.

구하다

2017년, 제가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다양한 루트로 제게 채찍이 될 만한 내용을 찾을 생각으로 유튜브에서 여러 목사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한쪽 구석에는 제가 혹시 잘못된 길로 치우쳐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이단 사설)에 현혹되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개혁 복음 쪽의 말씀을 찾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에서 철학이나 과학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문제를 신학 이론으로 알기 쉽게 분석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지식을 넓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후 저는 어느 정도의 신학 지식을 깨닫고 그럴듯한 지식이 많아진 것 말고 영적으로는 변화가 없었고 공허함과 어둠도 여전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저는 바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공허감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당신께 무얼 부르짖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어요. 하나님, 당신의 뜻을 구하기 원하오니 3일간 금식 기도를 하겠습니다. 당신의 깨우침과 인도를 바라고 저에게 방향을 가리켜 주시기 원합니다.”

찾게 되다

드디어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금식 기도를 마친 다음 날, 페이스북에서 주님을 믿는 한 자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함께 주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나눠 보니 우리는 주님의 때가 이르렀으므로 진리로 잘 무장해 곧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분별법을 배우고 주님을 맞이했어요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분별법을 배우고 주님을 맞이했어요

그리고 루(陸)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 자매님은 성경에 있는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 그물의 비유 등을 예로 우리에게 성경에 기록된 주림의 재림 방식에 관한 이야기와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마지막 때에 주님이 책을 펼치시며 진리를 선포해 하나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신다는 말씀에 관해 교제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성경의 예언을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루 자매님은 계속해서 성경의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라는 내용을 예로 들며 주님이 오시면 친히 그의 백성을 목양하여 만교가 통일되게 하신다고 교제했습니다.

루 자매님의 근거 있고 일리 있으며 교회에서 들은 설교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교제에 저는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사실 목사님은 허구한 날 은혜받는 법에 관한 주제로만 설교하면서 주님의 재림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지 못하는 종 같아 신자들은 생명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고 그토록 오랫동안 새 빛과 영의 공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루 자매님과 더 많은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계속 예배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분별

그 후 한 예배에서 루 자매님이 이렇게 교제하였습니다. “지금은 말세이기 때문에 주님을 맞이할 중요한 시기란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미혹을 한다고 한 내용이 성경에 있어서 다수의 목사와 장로는 그 내용을 근거로 우리에게 거짓 그리스도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줍니다. 그들은 주의 재림에 관한 내용을 전하는 자들은 다 거짓이고 미혹하는 자이기에 특별히 조심하라고 하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미혹되어 주님의 교훈을 떠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진리를 주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거짓 그리스도를 조심하느라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기회까지 놓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님은 필히 다시 오신다고 예언하셨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실 때 음성을 발하시며 우리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랑을 맞이하지 않는 자들, 거짓 그리스도를 조심하느라 주님이 오셨다고 전하는 모든 사람을 이단자로 생각한다면 미련한 처녀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섣불리 돌아오신 주님을 정죄할 것이며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들어 보니 정말 그러했습니다. 누가 주님이 오셨다고 증거하면, 우리는 듣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으며 경계하기 바빴습니다. 이것은 문 앞에 있는 주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찌 주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자매님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의 특징에 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 13:21~22)” 이처럼 거짓 그리스도는 이적과 기사로 사람을 미혹할 것입니다. 저들은 인류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할 수가 없고,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가리켜 줄 수도 없으며 생명을 줄 수도 없으므로 이적과 기사를 보여 사람을 미혹하고 그리스도를 사칭해 따르게 합니다.”

자매님의 교제가 진리에 합당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그리스도가 저기 있다’라고 할 수 있으니 주님의 재림에 대해 전하면 전부 가짜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적과 기사는 예수님이 은혜시대에 했었던 사역의 일부인데, 왜 말세에 주님은 이러한 행위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하시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생각나는 의문점을 자매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저에게 말씀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날 만약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권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칭 돌아온 예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악령이 가장한 것이고, 악령이 예수를 모방하여 행한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 사람은 하나님이 언제나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항상 예수와 같아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에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예수가 행한 것과 똑같이 말세에도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중복된다. 그러면 예수의 사역은 의의도, 가치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시대에 한 단계 사역만 행한다.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을 마칠 때마다 악령이 곧이어 모방하고, 사탄이 하나님을 뒤따라가면 하나님은 다시 방식을 바꾼다. 너희는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을 마치면 악령이 이를 모방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 > 중에서)

말씀을 읽고 자매님은 교제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새로워 새 사역을 하시지 중복 사역은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나타나 사역하셨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사역을 중복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여는 새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회개의 도를 전하고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등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풍부한 은혜를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죄에서 인류를 구속하여 율법의 정죄와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사역을 하신다면 예수님 때의 사역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사람도 2천 년 전의 상태에 머물게 되기 때문에 사역이 앞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면 은혜시대를 끝마치고 새 시대를 여시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역을 하시게 됩니다. 예언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이를 통해,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면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어 사람을 패괴 성품으로부터 철저히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고,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해 하나님께 얻어지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진리가 곧 성경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인으로 봉해진 책’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본질이 악령이고, 진리가 조금도 없으므로 새 시대를 열고 옛 시대를 마치는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 쫓았던 사역을 모방해 약간의 이적과 기사로 분별이 없는 사람들을 미혹할 뿐입니다. 그것들에게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거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것,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일과 같은 기적은 저들이 모방할 수 없고 범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할 수 없으면서도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는 것은 전부 거짓 그리스도임이 분명합니다.”

자매님의 교제로 저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사역을 하시기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은혜시대의 사역을 중복하지 않을 것이고, 말세에 예수님을 모방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을 미혹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사역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진리를 선포하시어 사람을 정결케 하시며, 그 진리는 은혜시대에 없었던, 인으로 봉해진 책의 내용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음 편 계속)

자매님은 교제를 이어갔습니다.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에 관련된 말씀을 보시면 더 잘 이해하실 겁니다.” 자매님은 대화창에서 아래 말씀을 공유했습니다.

그리스도란 성육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가짜다. 그리스도란 땅에서의 하나님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을 펼치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완성할 특유한 육신이다. 그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들은 언젠가 모두 쓰러질 것이다. 그들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본질은 조금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와 가짜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답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자매님이 계속해서 교제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린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겉모습이 평범해 보여도 그는 신성의 본질이 있는 진리의 화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하심, 하나님의 성품은 다 이 육신에 실제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고, 진리를 선포해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으며, 사람을 구속하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겉모습은 아주 평범하지만, 그는 신성의 본질이 있었기에 회개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고, 자애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원수를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라고 가르치기도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행하고 주님께 기도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 사함을 받았으며,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등 율법시대보다 높은 인성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구속 사역을 통해 얻은 효과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고, 그가 드러낸 것이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하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그리스도는 본질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진리를 선포할 수가 없고 어떤 사역도 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하는 것은 더욱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거나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그럴 듯한 글귀 도리나 규례로 사람을 현혹하고 패괴시킵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지고 혼탁하며 실행할 방향이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잃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으로 사칭하고, 하나님의 옛 사역을 모방해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면, 그는 사람을 현혹하는 악령이 가장한 것이 분명합니다. 돌아오신 주님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주로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이다’는 이 원칙에 근거해 판단해야 합니다. 진리를 선포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실행의 길을 줄 수 있는 분만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원칙을 파악하면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이 될 까 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 자매의 교제를 듣고 마음이 확 트여 너무나 기뻤습니다.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진리에 관해 이렇게 분명하게 교제해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의 교제를 통해 참으로 많이 얻었습니다.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을 알게 되어 더는 미혹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 4:12) 저는 주님을 믿은 후 항상 감미로운 설교를 듣기 바랐지만, 현실은 진부하거나 공허한 신학 이론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교제는 그야말로 저에게 만족감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 외에 사람의 심령을 적시는 생명수가 또 있을까? 오늘의 교제는 성령께서 인도하신 거야. 앞으로도 자매님과 같이 예배를 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등

그 후 자매님은 저에게 더 많은 내용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육의 사역과 영의 사역의 구별 등 내용이었습니다. 자매님의 교제는 바늘에 실을 꿰듯 성경의 미스터리를 관통하였고 얼마나 확실한지 정말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말씀은 그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좋은 말씀이 어디 것인지 너무 궁금해서 대화창의 말씀을 검색창에 넣어 보았습니다. 대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하나님나라복음사이트가 검색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트를 보고 놀랐습니다. ‘루 자매님이 교제한 내용이 동방번개의 말씀이라구? 그럴 수 없어! 다 성경에 근거했고, 아무리 봐도 미혹의 말 같지는 않잖아.’ 그런데 그 말씀은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란 책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을 만나게 되었단 말인가? 주님,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토록 좋은 말씀이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정죄한 동방번개의 내용이었다니, 이게 웬 일입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매님들이 교제한 내용이 진리에 어긋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하도 진정되지 않아서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주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구합니다. 분별의 지혜를 주시옵고 거짓 그리스도에 미혹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분별법을 배우고 주님을 맞이했어요

기도 후, 생각해 보니 요 며칠 동안 자매님이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진리에 관해 분명하게 교제해 주었는데 그 진리를 제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에 참하나님의 사역이면 거기에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점을 파악하면 미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긴장이 좀 풀리고 마음이 안정돼 계속해서 구해 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정녕 주님의 말씀이라면 제가 돌아오신 주님을 맞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루 자매님은 이어서 하나님 이름에 관한 진리를 교제하였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 저는 하나님은 최초에 이름이 없으셨고, 사역의 필요에 따라서 이름을 지으셨으며,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표하고, 시대가 바뀌면 하나님의 이름도 바뀌며, 하나님의 경륜이 끝날 때 하나님은 원래의 신분이신 창조주로 되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들을수록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다 하나님 자신의 심오한 비밀인데, 어떤 사람이 분명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자매님이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그분은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하자 제게는 다시금 내적 갈등이 생겼습니다. ‘루 자매님은 동방번개 사람이 맞았어. 그런데 자매님의 교제가 정말 실제적이고, 성경의 예언과도 맞던데 종교계에서는 왜 그들을 이단이라며 정죄하는 걸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목사와 장로 말대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알아보지 않다가는 주님께 들림 받아 천국에 갈 기회를 놓치고 미련한 처녀가 되는 거잖아? 어떡하면 좋지?’ 저는 마음이 너무나 복잡해 다시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주님, 분별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만일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라면 보게 해 주옵시고 제 마음에 안정을 허락해 주옵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저를 깨닫게 해 주시어 여기에서 넘어지지 않게 해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를 마치자 교회의 금촛대가 옮겨진 것 같다고 했던 한 목사의 예전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학교 다닐 때에도 봤던 광경인데, 많은 큰 교회가 텅 빈 모습이었습니다. 경배하는 사람이 적어서 매주 이삼일은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루 자매님과는 겨우 다섯 번 함께 예배했을 뿐인데, 자매님이 교제한 진리는 제가 주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가졌던 여러 의문을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런 사실 앞에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2)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며 전능하십니다. 사람의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은 너무 제한되어 있으니, 저는 하나님의 새 사역을 대하는 일에서 겸허히 구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받아들이다

자매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시대에 구속의 사역을 하시어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죄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었습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바탕으로 진리를 선포해 하나님 집에서부터 심판의 사역을 시작하시어 사람의 죄짓는 본성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시려 하십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는 신성의 본질이 있으므로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지 알아봅시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고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점을 더더욱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 중에서)

자매님이 이어서 교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다방면의 진리를 선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의 비밀,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 이름의 비밀 등 진리를 밝히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다방면의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실상을 폭로하였습니다. 사람의 교만함, 이기심, 간사함, 흉악함과 사악함, 그리고 사람의 생존과 처사의 근간이 되는 사탄의 독소와 법칙에 대해 폭로하는 말씀과 더불어 성품 변화의 길,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정상 인성을 살아 내는 방법 등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사람이나 일을 통해 우리를 드러내시고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주시어 자신의 사탄 본성과 죄짓는 근원에 대해 알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며, 어떤 사람을 온전케 하고,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체험한 형제자매들은 자신에 대해 알고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시며 거스를 수 없는 성품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나 사탄 본성을 배반하고 하나님 말씀 진리에 따라 하나님께 충성심과 순종이 있는 삶을 추구하기 원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하시고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시어 얻게 된 효과입니다.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대부분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란 책에 수록되어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으며, 전 인류가 알아볼 수 있도록 20여 개의 언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교회 사이트에는 형제자매들이 말세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얻게 된 성품 변화에 대해 증거한 체험 영상과 글이 있습니다. 이긴 자의 간증, 구원받은 간증, 생명체험 간증 등이 있는데, 그 내용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며,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각 종교와 교파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 진리를 깨닫고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을 해결받아 추구해야 할 길과 방향을 깨닫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임을 확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사역이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주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자 돌아오신 예수님, 유일하신 하나님 자신이란 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교제에 저는 공감했습니다. 주님을 믿은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 우리는 성경을 우상으로 대하며 오랜 세월 연구하기만 했고, 그런데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되지 않는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단계별로 심화하였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인류를 한 걸음씩 오늘까지 인도하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자매님은 하나님이 어떻게 진리를 선포해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 교제함으로써 사람은 죄지었을 때 회개해야 하는 것 말고도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자신의 죄짓는 본성을 깨달은 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행해야 하며, 그렇게 추구해야만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진리가 사람의 패괴를 폭로하고, 실행의 길을 제시하고, 새 생명을 주시며, 이 사역은 하나님이 아니면 어느 사람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득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저는 마음속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진리의 성령이고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셨음을 인지하며 어린 양의 발걸음을 따르기 원했습니다.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분별법을 배우고 주님을 맞이했어요

그래서 저는 자매님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빨리 읽어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링크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그 앱에는 하나님 말씀 책이 있었고, 말씀 낭송, 찬송 그리고 다양한 증거 영상과 영화 등 많은 콘텐츠가 있었습니다

어느덧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지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복음을 전도하는 본분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해외 새 신자 형제자매들의 간증도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을 통해 각 나라, 각 종교와 종파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참도를 구하여 모여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전능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례 없던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의 예언이 응한 것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사 2:2) 저는 평생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리라 다짐했습니다. (끝)

신밍(心明)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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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인생길을 찾았다

[마지막때의 징조]환란 전 휴거란 무엇인가?

지금은 말세의 마지막 때입니다. 갈수록 이런 저런 큰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환란 전에 휴거 될 수 있을지, 환란 전의 첫 열매, 곧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을지가 많은 크리스천들의 최대 관심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굳게 지키고, 맡은 사역을 열심히 완수하고, 어떤 고난이나 시련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기는 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환란이 시작될 때, 공중으로 올려져 주를 뵙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것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이러한 견해에 의구심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그렇게 행한 사람들이 많지만 공중으로 올려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휴거란 정말 저 하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것이 맞을까요? 그리고 이상의 내용처럼 실천하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럼 오늘은 ‘환란 전 휴거란 무엇인가? 환란 전 만들어지는 첫 열매, 곧 이기는 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두 가지를 놓고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1.환란 전 휴거(들림받다)란 무엇인가?

환란 전 휴거(들림받다)에 대해 알려면 먼저 휴거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휴거란 주님이 오실 때,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서 바울이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예수님의 뜻일까요? 이 말은 단지 바울 개인의 생각으로 한 말일 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이렇게 증거하신 적도 없기 때문에 이 말은 주님의 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태초에 하나님은 땅에서 흙을 취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땅에서 만물을 다스리며, 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분명 이 지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고 땅에서 인간과 함께할 것이며, 세상의 나라가 모두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계시록의 예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시록 21:3),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시록 11:15) 그러므로, 주님이 돌아오실 때는 사람들을 공중으로 올려 주의 얼굴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처소는 땅에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공중에 올라간다고 해도 거기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들림 받아 하늘에 올라간다는 상상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실과도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상상과 지나친 욕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럼, 들림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같이 아래의 글을 읽어 보면서 그 의미를 알아봅시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 택하는 이 일을 의미한다. 즉, 예정되고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놓고 한 말이다. 누군가 장자의 명분을 얻든, 아들의 명분을 얻든, 또는 백성의 명분을 얻든 전부 들림 받을 대상이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가장다른 부분이다. 미래의 내 집에 분깃이 있는 자라면 전부 들림 받아 내 앞에 올 자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는 들림 받아 내 앞에 온다.』(<제104편> 중에서)

이처럼 들림 받는다는 의미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들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택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택함이란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 들이도록 정하셨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휴거(들림받다)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율법시대 말기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새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당시 베드로, 요한, 마태, 야고보 등의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율법에서 벗어나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올려져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말세에 다시 오실 것이며, 세상에 임하여 말씀과 사역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시록 20:12).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절의 말씀처럼 주님이 말세에 오시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고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심판 사역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진정 들림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환란 전 휴거란 무엇인가?
환란 전 휴거란 무엇인가

2. 환란 전 만들어지는 첫 열매, 곧 이기는 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환란 전에 들림받는 말 그대로 대재앙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인간 세상에 오셔서 그가 예정하신 사역을 하시는데, 우리가 이 시기에 재림주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환란 전 휴거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휴거’에 관한 교제를 마쳤으니 환란 전에 만들어지는 첫 열매, 곧 이기는 자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환란 전의 첫 열매가 되는 것에 관해 알아 보기에 앞서 이기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승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믿음의 신앙인이라면 사탄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긴다고 하면 분명 사탄을 이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들이란 당연히 사탄을 이긴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럼, 사탄을 이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 의해 유혹 당하고 패괴된 후로, 인간은 죄에 빠진 삶을 살게 되면서 온통 사탄의 각종 패괴 성품으로 가득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만하고 스스로를 크게 여기는 것,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간교한 것, 악하고 탐욕스러운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든 사람을 단단히 묶고 있으며 누구나 이러한 독소에 의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을 이긴다는 것은 우리가 사탄의 속박과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독소를 완전히 벗어 버리고 더는 그것에 의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산다면 우리는 이긴 자로 불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진정으로 죄가 정결함을 받아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계시록에는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계시록 3:12),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시록 21:7),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4~5)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재난 전에 온전케 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고, 그리스도에 의지해 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높이 받드는 사람이며, 승리한 남자아이이자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다.』(<제15편> 중에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용에서 보았듯이 이기는 자는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체험함으로써 패괴 성품이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를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는 자는 주님을 믿는 과정에서 많은 고난을 감내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며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시는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죄가 정결함 받고 변화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더럽고 패괴한 것들이 얼마나 정결케 되었습니까? 교만하고 스스로를 크게 생각하는 것,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간교한 것, 악하고 탐욕스러운 것 등, 이러한 사탄의 성품을 아직 벗어버리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를 보면, 하나님의 축복이 보일 때는 순종할 수 있지만 자기가 바라던 것과 다른 일이나 상황이 닥칠 때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설교를 더 잘하는 것 같으면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이익과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남을 속이며 정직한 사람으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란 전에 휴거는 첫 열매 곧 이기는 자가 되려면, 환란 전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아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 사탄의 각종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범사에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나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이긴 자라 칭함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 보기:하나님의 약속

휴거에 관한 성경 구절 — 환란 전 휴거되어 주와 함께 잔치에 참석하는 길

2020년 곳곳에서 갈수록 큰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대환란 전에 휴거 되어(들림받아) 주와 함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렇게 말세에 주님을 맞이하고 들림 받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내용에서 확인하십시오.

1.휴거의 징후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

관련 구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마 24:6)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 24:32)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마 24:3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4)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마 24:38)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9)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1)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0)

2.진정 휴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말세에 주님이 오시면 성도들은 공중으로 올려져 주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과연 정말 그러할까요? 지금 재난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만난 사람이 없을까요? 휴거는 무엇을 말할까요? 아래의 내용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휴거에 관한 성경 구절 — 환란 전 휴거되어 주와 함께 잔치에 참석하는 길
휴거에 관한 성경 구절 — 환란 전 휴거되어 주와 함께 잔치에 참석하는 길

관련 구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2~3)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관련된 말씀: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 택하는 이 일을 의미한다. 즉, 예정되고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놓고 한 말이다. 누군가 장자의 명분을 얻든, 아들의 명분을 얻든, 또는 백성의 명분을 얻든 전부 들림 받을 대상이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미래의 내 집에 분깃이 있는 자라면 전부 들림 받아 내 앞에 올 자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는 들림 받아 내 앞에 온다.』(<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104편> 중에서)

안식에 들어간다고 해서 만물이 활동하지 않거나 만사가 발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더 이상 사역하지 않거나 사람이 더 이상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바로 사탄이 멸망하고, 사탄과 한통속인 악인들이 모두 징벌받아 멸절하며, 하나님과 적대하는 모든 세력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인류가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전 인류가 하나님의 빛과 축복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이 패괴시키는 일도 없고, 불의한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두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인류가 구원받고 사탄이 멸망하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이 모두 끝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더 이상 사역하지 않고, 사람 역시 더 이상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게 됨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바쁘지 않게 되고, 사람 또한 더 이상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게 되며, 하나님과 사람이 동시에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사람 또한 저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이것이 전체 경영이 끝난 뒤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해당되는 서로의 종착지이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돌아갈 곳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있다. 하나님은 안식하면서도 전 인류가 땅에서 살아가도록 계속 인도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늘의 유일한 참하나님을 경배한다. … 사람이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사람이 진정한 피조물이 되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정상적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더 이상 거역하지도 대적하지도 않고, 처음에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삶으로 회복함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안식에 들어간 후 각자가 누리는 삶과 종착지이다.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끝낸 뒤에 안식에 들어가고 사람이 철저히 구원받아 안식에 들어가는 것 또한 필연적인 추세가 되었다. 사람이 안식하는 곳은 땅이고 하나님이 안식하는 곳은 하늘이다. 사람은 안식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은 살아남은 인류를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인도하면서 안식한다.… 하나님과 사람이 안식에 들어가고 나면, 사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악인들 또한 사탄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사람이 안식에 들어가기 전에 땅에서 하나님을 핍박했던 악한 자들과 땅에서 거역했던 하나님의 원수들은 멸망되었을 것인데, 말세에 일어난 대재난으로 멸망한 것이다. 그 악한 자들이 철저히 멸망한 뒤에 사람들 가운데 더 이상 사탄의 방해가 없어야 인류가 철저히 구원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사역 또한 완전히 끝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3. 환란 전 휴거 되어(들림받아) 주와 함께 잔치에 참석하는 길

예수님은 분명히 예언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처럼 주께서 재림하시면 말씀하시는 것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게 되면 환란 전 들림 받아 주와 함께 잔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관련 구절: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 2~3장 참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 25:6~10)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계 19:9)

관련된 말씀: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주 안에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대신 하나님의 자취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글귀나 이치만을 고집스레 지키는 자는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도태될 자이다. 하나님이 시기마다 새 사역을 전개하므로 시기마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어느 한 시대에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바짝 따라간다면, 사람이 어찌 성령에 의해 도태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사람이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멈추지 않으며 그의 발걸음도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는 늘 바쁘게 보내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더 많은 내용 보기:하나님의 약속

참 진리와 거짓 진리,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참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말씀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질은 사실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믿는 이유도 그 육신이 하나님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믿는 것은 역시 영을 믿는 것이다. 영과 육신이 서로 구별되긴 하지만, 그 육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그러므로 참 진리를 구별하려면 먼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다음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리란 정상적인 인성이 지닌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으로, 모든 정상적인 인성(이성,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말씀을 통해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적인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그 진리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갈수록 정상이 된다. 또한 사람의 인성과 이성은 갈수록 온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적 생활이 갈수록 질서를 갖추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이것들이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사역과 진리를 체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갈수록 가까워지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참 진리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말씀이 초자연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인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갖춘다면 그 말씀이 참 진리인지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뜻은 너희가 이후에 체험하는 과정에서 다른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고, 이후에 또 새 시대의 사역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너희에게 오늘날의 말씀이 참 진리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오늘날의 사역을 꿰뚫어 보지 못하여 반신반의하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확신하였음에도 여전히 흐리멍덩하게 따르고 있다. 그런 확신은 원칙이 없는 것으로, 이런 자들은 조만간 도태될 것이다. 아주 열성적으로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확신은 30%에 불과하고 의심은 50%나 된다. 이것이 바로 토대가 없는 행실이다. 너희는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토대가 지나치게 얕은 탓에 분별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반복되거나 비현실적인 사역은 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에게 파격적인 요구도 하지 않고, 사람의 이성 범위를 벗어나는 사역도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의 범위 내에서 사역을 하고, 정상적인 인성의 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정상적인 필요에 따라 사역을 한다.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고, 또한 인성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탄의 타락 성품과 사람의 본질에 대해 갈수록 더 잘 알게 되며, 갈수록 더 진리를 사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명은 갈수록 더 성장하고, 사람의 타락 성품은 갈수록 더 변화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본래의 뜻이다. 그 말씀이 사람의 본질적인 것들을 드러낼 수 없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더욱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수 없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인성이 나빠지게 하고 이성이 비정상이 되게 한다면, 그것은 참 진리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거나 케케묵은 말씀일 것이다. 어쨌든 성령의 현실 역사는 아니다. 너희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는 원칙과 참 진리를 구하는 원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은 이 일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말에 맞장구만 친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참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이런 자들이 또 어떻게 참 진리를 찾을 수 있겠는가? 네가 중요한 몇 가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어쨌든 미혹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자는 모두 성령의 함께함과 징계가 있지만,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는 모두 사탄의 지배를 받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동역하는 사람들이다.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역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 시기에 요구한 진리 또한 실행하지 못한다면, 징계를 받게 되며, 심한 경우 성령께 버림받게 된다.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성령의 흐름 속에서 살면서 성령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있고 심지어 징벌도 임한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진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기꺼이 그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의 축복을 받지만, 그를 거역하고 그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징벌을 받게 된다. … 그러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들이니 성령의 징계나 책망 같은 것은 아예 말할 것이 못 된다. 그들의 삶은 온종일 자신의 육체와 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성령의 새 사역에서 나온 요구가 아니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도 아니라 그들의 머리로 분석하고 연구해 낸 이치이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함께함이 전혀 없으며, 축복이나 보호 같은 것은 논할 수도 없다. 그들의 언행은 대부분 지난날 성령의 역사에서 나온 요구에 따른 것으로, 이치이지 진리가 아니다. 그런 이치와 규례들은 그들의 집합체가 종교일 뿐 선민이나 하나님이 사역하는 대상이 아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의 집합체는 종교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뿐, 교회라고 칭할 수는 없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왜 교회당에 다니는 사람들의 실행이 뒤처졌다고 하겠느냐? 바로 그들이 실행하는 것이 지금의 사역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는 그들이 실행한 것이 옳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사역이 바뀌면서 그들의 실행은 점점 시대에 뒤떨어졌다. 새 사역과 새 빛으로 말미암아 뒤처지게 된 것이다. 성령의 사역은 기존 사역을 바탕으로 몇 단계나 더 심화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기존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이전의 실행과 깨달음을 고수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3년 혹은 5년 내에도 아주 큰 변화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2천 년이란 시간에는 더욱 큰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새로운 빛과 실행이 없는 것은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의 실수이다. 예전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사람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해서 새 사역의 존재가 부인되지는 않는다.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발전한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해야지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사역을 모르는 자들만이 예전의 사역에 정체되어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패역한 자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한다. 사람이 성령의 새 사역을 따라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 실행은 분명히 지금의 사역과 동떨어진 것이고, 또한 틀림없이 지금의 사역에 방해가 된다. 그와 같이 뒤떨어진 자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도 없다. 게다가 전체 경영 사역 역시 그런 무리에게서는 끝날 수 없다. 이전에 여호와의 율법을 지켰던 사람들과 십자가를 위해 고난받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헛되고 쓸데없는 것이다. … 사람이 어떤 상태에 멈추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빛에 닿지 못했다는 증거다.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들은 늘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던 사역을 일찍이 중단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사역할 대상을 이미 다른 사람들로 바꾸었고, 그들에게서 자신의 새 사역을 이루려고 한다. 종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과거의 옛 사역만 지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새 사역을 행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동역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사람의 실행 수준 또한 끊임없이 높아지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역하고 있고, 사람 역시 언제나 필요한 것이 있기에 이 둘의 관계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은 큰일이 이루어졌다는 표시이자 전체 경영의 최종 결과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참 진리와 거짓 진리,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사람의 교통 참고:

『참 진리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인정받아 진정한 처소의 길에 들어서게 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참 진리입니다. 만약 누가 스스로 참 진리를 믿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이런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짓 진리이지 참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어떻게 분별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 하나님이 사람에게 갖추라고 요구하신 것,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은 다 긍정적인 것입니다. 사람에게 내치고 배반하라고 하신 것과 하나님이 정죄하신 것이라면 부정적인 것입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가늠할 때,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진짜와 가짜를 검증하는 시금석이자 유일한 기준입니다. 어떤 것이 참 진리이고 어떤 것이 거짓 진리인지 어떻게 가늠할까요? 진정한 인생을 가져다주고, 광명을 보여 주고, 사탄의 타락과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게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참 진리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습니까? 타락한 인류가 구원에 이르는 데에서 갖추어야 할 모든 진리를 가져다주고, 인생의 바른길을 가져다주어 인생의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또 하나님이 창세 이래 예정해 놓으신 크나큰 구원의 은혜와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가져다주어 사탄에게 타락되고 사탄에게 속한 인류에서 진실로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진리를 갖추고 인성이 있는 진정한 인류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의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세 사역으로 이룬 효과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다면, 우리는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타락한 성품도 해결될 수 없으며, 영원히 인생의 광명을 볼 수도 없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받은 모든 복은 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겪고 순종한 것으로 얻게 된 효과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참 진리라면 들어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적습니까? 참 진리라면 믿는 사람도 많아야 되잖아요? 전 인류가 다 와서 믿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전 인류가 타락되어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갈수록 적어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집니다. 사람은 어떤 신앙을 받아들이든지 간에 무엇보다 먼저 이익이 있는지를 봅니다. 따라서 참 진리를 믿는 사람은 적고 거짓 진리를 믿고 은혜와 이익이 있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많다는 것이 결정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는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지도 않고, 떡으로 배부르게 하지도 않으며, 은혜를 받게 하지도 않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침 받게 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는 진리에 별도로 한 가지 더한다면, 즉 어떤 재난이 닥쳐도 죽지 않는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믿을 것입니다. 현재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면, 죽지 않을 것을 보증한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죽지 않을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건 잘 몰라요.”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제가 그분을 믿어도 쓸데없죠.”라고 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뭘 얻을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진리를 얻을 수 있죠.”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진리를 얻어서 뭐하나요?” “살아남을 수 있어요.” “누가 봤어요? 누가 보증할 수 있어요? 뭐가 진리를 얻는 건가요?” “모르겠는데요.” “그럼 저는 안 믿을래요.”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에,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할 때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후, 믿으면 믿을수록 참되고 믿을수록 힘이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것은 진리를 깨닫고 얻게 된 효과입니다. 진리를 깨달을수록 더욱 참 진리이고 하나님의 역사임을 느끼게 되며, 진리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너무나 실제적이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구원받고, 성품이 변화되고, 진정한 인류가 되고, 정상 인성의 진정한 인생을 살 수 있어. 이 진리가 너무 의미 있어.”라고 하면서 진리를 얻는 것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병이 고침 받고 떡으로 배를 불리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더 가치 있고 더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은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주어도 그것을 소중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진리를 얻는 것을 소중히 여기죠. 참 진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달아난 사람이 있습니까? 설령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지라도 말씀을 몇 년 동안 들은 사람이 물러나려고 하겠습니까? 아무도 물러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은 ‘이것이 참 진리야. 내가 최대한 힘을 내고 본분을 잘 이행하기만 하면, 살아남게 되고 죽지 않을 거야. 죽지 않는 것이 너무나 소중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죠. 지금은 사람들이 죽지 않는 것에 이르려면 어떤 기준이 있는지를 모르는데, 그 기준을 알게 된다면 다 믿을 것이고 더욱 힘이 넘칠 것입니다.』

<설교 교통(6)ㆍ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함에 있어 진입해야 할 4가지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서 발췌

『만약 온 교계의 적대시함과 반대를 받지 않는다면 참 진리가 아닙니다. 기억하세요. 참 진리라면 다수 사람들의 반대, 심지어 세상의 반대까지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도하며 사역하기 시작하셨을 때 온 유대교가 다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시기 시작할 때는 타락된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게 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고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기 때문이고, 또 사람이 터득 능력이 없는 데다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역사가 아니라면 사람은 모두 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약 교계의 반대도 없고 세상의 반대와 적대시함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임이 증명됩니다. 인류가 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을까요? 첫째, 사람은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속합니다. 물질적인 것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습니다.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다’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영과 영계의 활동과 각종 영의 활동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계에 있어서는 소경입니다. 물질세계에서 눈만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눈을 뜨면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물질세계입니다. 사람 몸에 어떤 영이 와서 어떤 일을 하는지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와서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가끔씩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쇄된 것을 볼 수 있어도, 그 말씀을 하나님이 언제 말씀하셨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여전히 모릅니다. 음성을 들을 수는 있어도 음성의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고, 하나님 말씀이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은 볼 수 있어도 무슨 뜻인지는 모릅니다. 사람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의 근원을 더듬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인류가 너무 심히 타락되어 안에는 각종 사탄 독소와 각종 지식이 가득 찼습니다. 사람이 각종 사탄의 철학과 지식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면 영원토록 무엇이 진리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없다면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류의 본능을 놓고 말하면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탄의 철학과 지식이 가득한 데다가 진리를 분별할 줄도 모릅니다. 따라서 참 진리가 핍박받을 수밖에 없고, 참 진리가 사람에게 저버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왜 사탄의 철학과 지식을 쉽게 받아들일까요? 첫째,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고 사람의 육체 이익에 부합되며 사람의 육체에 유리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면 내게 유리하고, 또 승진할 수 있고, 형통할 수 있고,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면 일을 성사시킬 수 있고, 내게 이런 지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봐.’라고 여깁니다. 보세요. 사람에게 유리하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 타락된 인류가 이 지경까지 타락되어 그 자체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도 없는데,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인류의 저버림과 반대와 정죄를 받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현상이 아닙니까? 만약 세상과 인류의 정죄와 반대를 받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된다면, 사람이 정죄할 리가 있겠습니까? 대적할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복음전도에 관한 상면(上面)의 교통 설교>에서 발췌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교회이고,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것이 있어야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만 성령 역사가 없는 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선민은 이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

참된 교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이래야 교회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 오직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야만이 교회입니다.』

<총집(2)ㆍ각지 교회에 나타난 혼란스러운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해결하는가>에서 발췌

『교회는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참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고, 교회는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성령 역사가 있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교회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데, 이야말로 교회입니다. 만약 한 무리 어중이떠중이들이 있고 모두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령 역사가 없으며, 종교 의식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본다면,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성령 역사가 없는 교회라면 교회가 아니라 종교 장소인데, 종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지,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교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교회이지, 절대로 악인들의 교회가 아닙니다. 악인은 교회에 속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 한 무리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다면, 이것이 교회일까요? 그러면 무엇일까요? 종교 장소 또는 오합지졸이라고 합니다. 한 교회로서는 반드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성령 역사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한 교회를 가늠하려면 첫째로 이 무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봐야 하고, 둘째로 그들에게 성령 역사가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교회에 성령 역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교회가 아닙니다. 만약 한 교회에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전혀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그럼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하는 한 사람이 계속 이런 교회를 고수하고 있다면 이 사람이 구원받겠습니까?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빨리 어중이떠중이들을 떠나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이 교회에 3~5명의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3~50명의 사람들이 다 어중이떠중이들이라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이 3~5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야 합니다. 이 3~5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도 역시 교회인데, 인원수가 가장 적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순결한 교회입니다.』

<설교 교통(7)ㆍ최후 시기에 교회에 대한 진정한 함의를 깨닫는 것과

교회 사역의 5가지 원칙에 따라 사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오히려 큰 교회당을 숭배하고 종교 목사를 미신하다가 결국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였습니다. 종교 도리와 종교 의식과 행실만 좀 얻었을 뿐 진정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생명 성품에 조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종교 지도자들과 목사들이 한평생 하나님을 믿고 한평생 설교해도 진정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으며, 여전히 바리새인들처럼 지위와 밥줄 때문에 그리스도를 심하게 대적하고, 참 진리를 정죄하며, 하나님의 선민을 농락하고 통제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하나님의 양 떼를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잘 보살피는 척하는 까닭은 완전히 그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마치 가게에서 이윤을 남기고 큰돈을 벌기 위해 고객을 왕으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계의 모든 행위는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고 다 종교 의식이니, 조금의 진리 실제도 없고 성령 역사는 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보다시피, 교계에서 경배하는 것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 상상 속의 막연한 하나님이며,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종교 도리와 성경의 글귀 지식이고 전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계는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없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으며, 더욱이 사람을 진리 실제로 이끌어 들어가 구원받게 할 수도 없습니다. 교계의 지도자들과 목사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성령께 온전케 되어 양성받은 것이 아니라 신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교계의 지도자와 목사가 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와 인치심이 전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조금도 없으며, 입만 벌리면 신학 지식과 이론뿐이고, 실제 체험을 털끝만치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전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어찌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교만하게 행세하고 성경 지식을 자랑하며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하나님께 정죄와 혐오를 받고 성령 역사를 잃었는데,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교계가 왜 그리스도의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정말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은혜시대에는 유대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말세 하나님나라시대에는 교계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판단하며, 말세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버릴 뿐만 아니라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고 훼방하고 모독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말세의 그리스도를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교계가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사탄 세력으로 타락되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교계는 절대로 하나님이 주권 잡은 곳이 아니고 더욱이 진리가 주권 잡은 곳도 아니라 전적으로 타락된 인류가 주권 잡고 적그리스도가 주권 잡은 곳입니다.

사탄에게 속한 악마와 적그리스도가 주권 잡고 통제하는 그런 종교 장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그저 종교 도리를 알고 종교 의식과 규례를 지킬 줄만 알 뿐, 영원토록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없으며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종교 장소에는 전혀 성령 역사가 없고,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고 정죄하고 저주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종교를 인정하신 적이 없고, 더욱이 칭찬하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교계는 하나님께 정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성령 역사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성령 역사가 있는 곳이야말로 진정한 교회이고, 진정한 교회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 사역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방식입니다.』

<총집(1)ㆍ참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서 발췌

더 많은 내용 보기:하나님의 약속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를 찾다

지금의 교계는 수많은 교파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뜨거워 보이지만 은혜되는 설교가 없으며 신자들의 영혼은 갈급하기만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시기와 질투, 분쟁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들 속에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필자의 체험에 따라 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난날의 회억(回憶)

10여 년 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서 공허하고 외로웠습니다. 나중에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교회를 나가는 게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매우 은혜가 됐고, 주일날이면 교회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신앙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예배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다들 모여 앉아 서로의 체험을 나누며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증했고 기쁨을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집이자 가장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저도 조금씩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전도 활동에 참여하며 교회에서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를 찾다

의문스럽고 답답한 마음, 교회가 어쩌다 세상처럼 되었는가?

그러나 언젠가부터 교회의 열기가 점점 식어갔습니다. 젊은 교역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에서도 거리낌 없이 애정 표현을 하며 성도의 품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당연하다는 듯 교회를 데이트 장소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정말 싫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 예배에서 A 장로가 교회의 그런 모습을 놓고 지적했습니다. 세상의 시류를 좇는 이방인들처럼 살지 말고,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 교회를 어지럽히지 말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다른 두 장로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A 장로에게 그렇게 설교하면 젊은이들이 싫어한다며, 젊은 사람들을 생각해 주어야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도 두 장로는 A 장로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심지어 교인들 앞에서도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정의감이 있는 A 장로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며 저는 ‘A장로님의 말씀이 맞지 않은가?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니 당연히 바른 자세로 임해야지! 여기는 세상도 아니고 데이트 장소도 아니잖아! 형제자매들이 세상의 악한 흐름을 쫓아 가는 모습은 사람도 못 봐줄 정도인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A 장로님의 권고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잖아! 근데, 두 장로는 A 장로를 지지하기는커녕 배척을 하다니, 이건 죄를 방임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장로가 떠난 후, 다른 장로가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 내용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오래 참으며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국가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라고만 가르쳤고, 아무런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목사님들을 초청해 예배를 하기도 했지만 전부 먹고 마시고 노는 세상의 일, 세상의 시류, 부자가 되는 비결 등의 이야기만 할 뿐,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장로들은 교회에서 학력이 높은 박사나 명망이 있는 사람들을 강단에 세웠고, 그들은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근을 했습니다. 결국, 예배는 국어 수업을 듣는 느낌만 들었고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갈수록 불법이 성해졌고, 황폐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예배에 온 사람들도 대부분은 졸거나 휴대폰만 들여다 보았으며, 예배가 끝나면 돌아가기 바빴습니다. 장로들은 교회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두려워 홍콩에서 설교 mp3를 구해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게다가 주일날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장로 부부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심방을 다녔고, 설날이나 명절이면, 케익, 빵 등의 선물을 들고 찾아다니며 감언이설로 달래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물도 받았고, 장로 부부의 ‘특별한 배려’를 받으니 교회에 오면 헌금을 두 배씩 했습니다. 저는 은혜가 되는 교회를 찾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괜스레 장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확실히 변질되었고, 목자와 성도들 사이는 영적으로 붙들어 주는 관계가 아니라 육적 이익을 유지하는 관계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떠나기도, 그냥 눌러 앉기도 그렇고, 마냥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런 상태면 과연 주님께서 이 교회에 거할지, 이런 믿음을 과연 주님께서 인정하실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뜻밖의 기회, 교회가 황폐한 원인을 알다

2018년 4월의 어느 날 오후, 버스 정류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엠마(Emma) 자매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도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엠마가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인사도 하고 새 집을 구경도 할 겸 찾아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의 이웃인 천(陳) 형제님을 알게 됐습니다. 천 형제는 설교자였고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자연히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국제 정세를 이야기할 때, 천 형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큰 재난이 있을 거라고 예언하셨죠. 지금 보면 전쟁, 전염병, 기근, 지진, 산사태, 화산 폭발, 홍수 등, 각종 천재와 인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예언이 거의 이루어졌고 주님이 오실 때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이 중요한 때에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 보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소리친다고 했습니다. 그건 주께서 오시면, 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지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증언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인 지금, 주님이 오셨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교제는 매우 새롭고 실제적이었으며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전에는 지금이 주께서 오실 시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의 음성을 아는 슬기로운 처녀가 돼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큰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성경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천 형제님의 깨달음과 견해는 목사님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다니는 교회의 상태와 마음의 고민, 그리고 의문을 털어놓았습니다. “형제님,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한 번 여쭤 볼게요. 지금 우리 교회의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성도들은 세상의 시류를 따라가고, 장로들은 서로 패거리를 짓고 질투하며 분쟁을 합니다. 은혜가 되는 설교를 못하니 계속 작은 선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요. 이제는 죄를 지어도 성령의 징계가 보이지 않아요. 왠지 교회가 변질된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천 형제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자매님, 교회가 변질됐다는 걸 아시네요. 그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세상처럼 변했고 죄를 지어도 성령의 징계가 없다는 건 구약 말기에 성전이 황폐해진 시기와 다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알려면, 성전이 황폐해진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2~1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구약 시기의 성전은 원래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했고, 사람들에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모두 공손한 자세로 임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려는 사람이 없었죠. 게다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그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구약 성경에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제멋대로 분향하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걸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크게 경외했고, 성전에서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 밖에서 새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성전은 우양과 비둘기를 사고 팔고, 돈을 바꾸는 도적의 소굴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징벌이나 징계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실 때는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떠나시니 성전은 곧바로 황폐해지고 도적의 소굴로 변했으며 불법이 성했습니다. 이처럼 뚜렷하게 대비되는 현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불법이 성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건축하고 사람이 많고,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며 뜨거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떠나셨다면, 그곳은 사람이 만든 단체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거짓 교회가 된 것입니다.”

형제의 교제를 들으니 놀랍기도 했고 부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악을 미워하는 분이시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라면 분명 성령의 징계가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고, 장로들은 영적인 관계가 아닌 육적인 관계로 교회를 운영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교회는 확실히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휴, 교회라고 해도 주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교회라고 할 수 없구나. 그리고 우리 교회와 같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설마 그 많은 교회가 다 주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거짓 교회란 말인가?’ 저는 놀랍기도 하고 의아해서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법을 찾고 구하다

그래서 형제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형제님,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가 이런 상태입니다. 목사들도 그저 잘 먹고 노는 이야기를 하거나 헌금에 대해서만 많이 강요를 합니다. 그럼 그런 교회는 다 주의 뜻에 합당치 못한 것인가요?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요? 아직 이해가 좀 안 되는데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형제님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참교회가 맞는지를 구별하려면 두 가지를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사람들의 생명이 계속 자라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죠. 따라서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 성령의 깨우침과 감동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되고, 영적으로 충분히 공급을 받게 되며 생명도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점점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교회라면 인원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세 명밖에 없는 곳일지라도 성령이 함께하시면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배 시간에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이 없고 항상 메말라 있어 신도들이 영적 양식을 먹지 못하고 생명이 자라지 못하며, 믿음이 계속 식어 간다면 형식적인 예배 의식을 행할지라도 교회가 아닙니다. 게다가 대놓고 세상의 시류를 좇아 가는데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율법시대 말기의 성전과 똑같이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거짓 교회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교회’는 아무리 사람이 많을지라도 그냥 모임 장소일 뿐, 교회라 칭할 수 없습니다. ”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근거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우리의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지 봐야 한다.’, 맞는 말씀이네요.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이 있을 것이니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갈수록 좋아지겠죠. 근데,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니 예배도 별 의미가 없겠고, 진정한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모두가 다운되고 소심해지겠네요. 그럼, 교회를 떠나는 일도 많아질 것이고 교회는 구약 말기의 성전처럼 불법이 성해지고 도적의 소굴이 될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우리 교회를 보면 그래요. 설교를 한다지만 반복된 구호나 외치고, 툭하면 세상처럼 먹고 마시고 놀기 바쁘고,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근할 뿐, 새로운 깨우침이 없어요. 그래서 설교를 열심히 들어도 밋밋하기만 하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저도 예수님 믿은 지 오래 됐지만 생명은 별로 자라지 못했어요. 지금은 새 신자 때보다 더 못해진 느낌이에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믿음과 사랑과 열의가 다 식어 버렸어요. 이게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이대로라면 우리 교회도 거짓 교회잖아요! 휴, 지금까지 바보처럼 믿었네요. 계속 이런 신앙을 하다간 주님을 잃어 버려도 모르겠네요.”


기독교 영화 – 경건의 비밀 – 명장면(2)슬기로운 처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슬기로운 처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당신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습니까? 슬기로운 처녀처럼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찾고 알아보시겠습니까 아니면 피동적으로 주님의 계시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영화 바로보기:「경건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