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크리스천으로서 직설적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 돕기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자기 체면을 조금 구기게 되자 그 자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대하게 되고, 사사건건 그 자매에게 반대합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자신이 이기적이고 악독한 사탄의 패괴 성품을 가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자신이 미워 그녀는 후회하고 자책합니다. 나아가 작은 착한 행실은 성품 변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경험해야만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진정한 회개와 변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다들 성경에 적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다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곧 강림하실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한복음 4:7~10, 13~26, 28~29)
[성경 공부]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위의 성경 내용을 통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린 이유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다
처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방비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상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몇 마디 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비범하다고 생각했고 그 후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고 일반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금의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속사정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일일 뿐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와 전혀 만난 적 없었던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문에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으며 예수님에게 어디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냐며, 산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 이렇게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한 마디가 여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실천의 길도 알려 주시어 하나님께 경배할 때 표면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는 말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은 크게 기뻐하며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동네로 달려가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짧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은 즉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속사정도 드러내시며 자신의 타락함도 드러내시고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와 곤혹도 해결해 주셔서 명확한 실천의 길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말세의 사역은 각 부류별로 나누는 사역이자 하나님이 경륜을 끝내는 사역이다. 이는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 즉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은 때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날에 이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받아들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인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말씀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말세]하나님이 심판 형벌 사역을 하시는 의의
『형벌과 심판 사역의 본질은 인류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자 최종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없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를 모두 정결케 하고, 형벌과 심판을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 이로써 구원할 수 있는 사람과 구제 불능인 자를 모두 구분해 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자를 모두 구분해 낸다.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케 되어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서 땅에서 제2의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며,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과 심판을 받고서 본색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뒤에 모두 멸망하여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이런 부류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부류의 자들은 최종의 안식처에 들어갈 자격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을 맞이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의인이 아니라 징벌받을 대상이자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말씀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시대를 끝내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으로 나타난다. 온갖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이라야 시대를 끝낼 수 있다. 말세가 되었으니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나뉠 것이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결말은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서만 오롯이 드러나고, 사람은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본색이 드러난다. 사람은 악한 자는 악한 자끼리, 선한 자는 선한 자끼리 각기 그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형벌과 심판을 통해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착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 이로써 만인은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었고 패역이 너무나 심해서,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로써 모든 불의한 자들을 강력히 징벌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ㆍ사역 이상 3> 중에서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이 어떠하든 그것은 다 사람이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형벌이나 심판,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 감동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원은 거래적인 구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백배로 주는 전제하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너희를 구원하는 지금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마지막 때이다. 그러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말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그저 매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얼마나 크든 너희가 받는 것은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은 전혀 없고,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구원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자비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런 형벌과 심판 앞에서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너희가 처음부터 줄곧 누려 온 것이 모두 구원이 아니냐? 너희는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를 알았고, 더욱이 매질과 징계도 여러 번 겪었지만 또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어느 누구보다 큰 복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생각해 보아라. 만약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정죄하고 징벌하러 왔다면 너희의 날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느냐? 죄에 속하는 육적인 너희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겠느냐? 단순히 너희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성육신하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큰 사업을 벌일 필요가 있었겠느냐? 너희 같은 무명소졸을 징벌하려 한다면 말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굳이 너희를 정죄한 뒤에 멸망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긍휼과 자비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을 완전히 순종하게 하는 데 더 유리하지 않으냐? 사람을 더욱 온전히 구원할 수 있지 않으냐?』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사실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조상을 저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심판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고 사람에게 인생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계속되는 심판이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 모든 심판은 사람의 운명에 직접 관련된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여 사람이 그런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인생과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알게 되며, 사탄이 패괴시킨 인류도 알게 된다. 이런 형벌과 심판은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찌를 수 있고, 사람의 영을 불러 깨울 수도 있다. 심판의 목적은 아주 깊이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속은 사람의 마음과 영을 깨우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이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영이 이미 오래전에 죽어 하늘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 줄도 모르며, 더욱이 자신이 죽음의 나락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 찬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자신의 썩은 시체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죽음의 음부에 떨어진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지상 만물이 이미 인류에 의해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오늘날, 창조주가 땅에 와서 구원 가능한 패괴된 사람들을 찾고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온갖 연단과 심판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시종일관 무감각하여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람은 너무도 타락하였다! 이러한 심판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자비한 우박과도 같겠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이로운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고 고해의 심연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을 음부에서 건져 내기 힘들다. 사람의 마음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사람의 영이 사탄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극도로 타락한 너희들을 구원하려면 온 힘을 다해 불러 깨우고 심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차디찬 너희의 마음을 깨울 수 있다.
―<말씀ㆍ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중에서
『너희들은 모두 죄악이 넘치는 음란한 땅에 살고 있으며, 모두 음란하고 죄악된 사람이다. 오늘날 너희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형벌과 심판을 받았다. 이런 가장 깊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모두 참된 사랑이며 악의는 조금도 없다. 그는 너희들의 죄악 때문에 너희들을 심판하여 반성하게 하고, 이렇게 큰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원한다. 그는 친히 만든 사람이 완전히 멸망하길 원치 않는다. 지금 또 너희들 가운데 와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구원이 아니겠느냐? 그가 너희들을 미워했다면 또 이렇게 큰 사역을 하여 직접 너희들을 인도하겠느냐? 굳이 이런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들에게 미움도 없고 조금의 악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사람의 패역 때문에 반드시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너희들은 생활할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며, 이 음란하고 죄악된 땅에서 살고 있기에 음란하고 더러운 귀신이다. 그는 너희가 더 타락하는 것이 안타깝고, 너희가 이렇게 더러운 땅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마구 짓밟히고 음부에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오로지 너희들을 얻고 철저히 구원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주된 목적으로, 바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행하는 것이 모두 사랑이고 구원임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그저 일종의 방식일 뿐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의 세계로 돌아가 고통과 고난을 겪으라! 이 흐름 속에서 이 심판과 커다란 구원을 누리고 인간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 모든 복과 이 사랑을 누리고 싶다면, 이 흐름 속에서 고분고분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온전케 되어라. 네가 지금 심판으로 인해 약간의 고난과 연단을 받고 있지만, 이 고난은 가치가 있고 의의도 있다.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연단이고 무정한 폭로이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을 정죄하여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와 육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으로 엄하게 들추어 밝히는 것도 모두 너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직접 체험했지만 하나님이 너희들을 비뚤어진 길로 인도한 적은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은 네가 정상 인성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너의 정상 인성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역은 너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필요한 것을 바탕으로, 너의 연약함에 따라, 너의 실제 분량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하여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 같고, 내가 너를 미워해서 날마다 형벌하고 심판하고 꾸짖는다고 여기지만, 네가 받는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한 사랑이고 커다란 보호다.』
―<말씀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가장 낙후되고 더러운 곳에 임해야 그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전부 드러낼 수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무엇을 통해 드러나겠느냐? 바로 사람의 죄와 사탄에 대한 심판, 죄에 대한 혐오,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원수에 대한 증오를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 내가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죄와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려는 데 있다. 사람의 간사함과 교활함, 사람의 언행 등 그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심판받아야 하며, 사람의 패역은 정죄받아야 한다. 심판을 중심으로 말하는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며 사람의 모든 추한 면모를 밝혀냄으로써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함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상징으로, 그의 거룩함이 곧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오늘날 이런 말들을 하는 배경은 다 너희의 패괴 성품을 빌어 말하고 심판하며,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질적인 사역이며,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전히 부각시킬 수 있다. 만약 네게 패괴 성품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네게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나 더럽고 패역한데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의 불의로 인해 너를 형벌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존재는 근본적으로 죄를 미워하지 않을뿐더러 사람과 똑같이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너를 심판하는 이유는 너의 더러움 때문이며, 오늘 내가 네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너의 패괴와 패역 때문이다. 너희에게 위풍을 떨거나 일부러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러운 땅에 태어난 너희가 더러움에 너무 많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정말이지 인격도 인간성도 잃어버렸으며, 가장 더러운 곳에 태어난 돼지와 다름이 없다. 바로 너희의 이러한 점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또 너희는 바로 이러한 심판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며 거룩한 하나님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거룩하고 공의롭기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패역을 보고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며, 사람의 더러움을 보고 거룩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가 바로 흠 없이 거룩한 존재이자, 또한 더러운 땅에 태어난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다.』
―<말씀ㆍ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중에서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그가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바뀔 수도 없다. 그의 증거와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따라서 그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알게 되고, 성품이 변화되며, 그를 힘 있게 증거하게 된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서 변화된다.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형과 표본이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으며, 하나님 뜻에 맞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들에게 한 요구는 바로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사역을 알라는 것이요,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모든 사역과 사람을 정복하는 모든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증거야말로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사탄을 수치당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어 그를 알게 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하고, 성품 변화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바라지 않고, 그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부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당신은 슬기로운 다섯처녀입니까? 오늘날 빈번히 발생하는 재난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성경 예언]열 처녀의 비유(마태 복음 25장) : 주님을 맞이하는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되는 법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갈수록 많은 재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한 바이러스,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 습격, 호주 화재 등 여러 재난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블러드문도 나타났습니다. 말세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기본적으로 이뤄졌으니 주님은 이미 돌아오신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많은 신도가 어떻게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을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1~4)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서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결국 주님을 맞이했고 천국의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하고, 깨어서 기다리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행하는 자들은 슬기로운 처녀로, 주님이 오시면 천국으로 들림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년간 이렇게 실행해 왔고, 지금 여러 재난이 임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사역하면 정말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해 재난 전에 들림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질문: 목사님은 늘 우리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재난은 커져만 가는데 우리는 아직 휴거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휴거되지 않았으니 아직 주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며 환난 속에서 우리를 천국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합니다. 대체 우리는 환난 전에 휴거되는 겁니까, 환난 중에 휴거되는 겁니까?
대답: 이 질문은 많은 크리스천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입니다. 주님이 올 때 신도들을 끌어올리는 문제에 관하여 많은 목사님은 환난 전에 주님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신도들도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환난을 겪고 있음에도 믿음 안에 있는 많은 분이 휴거되지 않았으니 아직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면서 재난 중에 오실 것이고 재난 중에 휴거될 테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우리 생각해 봅시다. 주님이 재난 중에 오신다는 이러한 관점이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나요? 성경 예언에 부합되나요? 일부 주님을 믿고 있는 분들이 환난 전에 휴거되지 않았다고 해서 주님이 오시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요?
질문: 저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죄짓고는 회개하는 삶을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화를 많이 내는 편인데, 집이나 직장을 막론하고 남의 말이나 행동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터져 나오는 화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고민이 참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화내는 문제를 해결하여 죄짓지 않고 주님의 교훈에 따라 살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대답: 안녕하세요, 이 문제는 아마 많은 신도가 보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화내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때 화내고 혈기를 보이는 것은 다 우리의 죄성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에게 교만한 본성이 있어 무엇이든 자기 생각이 완벽하고 옳다고 생각해 자기 뜻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따르게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화가 나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성이 있어 뭐든지 자기 잇속을 차리려 하므로 자신이 손해를 볼 때 화를 내며 혈기를 드러냅니다. … 보다시피, 우리가 화를 내고 혈기를 드러내는 것은 죄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죄성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화내는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일에서 화를 억누르면 되겠지 라고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다른 일에서 언제든 터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미 주님께 죄 사함을 받지 않았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 죄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내게 되고,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라고 합니다.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속죄 제물로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죄를 짓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벗어 버리며, 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패괴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하며,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도,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성육신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은혜시대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인류 구속 사역으로, 사람은 예수님의 구속으로 죄 사함을 받아 율법의 정죄와 저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면 주님께 사함을 받았고 동시에 주님으로부터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어디까지나 구속의 사역으로, 사람이 죄 사함을 얻어 율법으로 정죄 받지 않게 되는 것이지 죄짓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은 아닙니다. 죄성은 범죄 행위보다 더 깊고 완고한 것으로, 사람이 죄짓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문제의 근원입니다. 아무리 육을 억누르고 노력해도 주님의 말씀을 살아내지 못하고, 화내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순종이 잘되지 않고,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잘되지 않는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이익이 손해 볼 것 같은 일에서는 거짓말하고, 천재(天災)나 인재(人災), 시련이나 환난이 임하면 하나님께 따지고 대항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등집니다.
[신앙 간증]화 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알고 있나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 11:45),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 8:34~35),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27)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늘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과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말세에 진리를 선포해 하나님 집에서 심판의 사역을 할 필요가 생겼고, 이 사역으로 패괴된 인류가 죄성의 통제를 받는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차츰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고 정결함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예언한 바와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그러므로 화내는 문제를 해결하고 죄의 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돌아오신 주님께서 하시는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죄성으로부터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전능하신하나님교회에서만 예수님이 돌아오셨고 진리를 선포해 하나님 집에서 심판 사역을 시작하였다고 공개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으로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고 정결케 하며 사람을 죄의 매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로 심판하실 거라는 예수님의 예언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심판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고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점을 더더욱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진리의 말씀으로 심판을 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진리로 사탄 성품이 있는 인간을 정결케 하여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합니다. 말세의 심판 사역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 6천 년 경륜의 모든 비밀을 밝히셨고, 사람이 정결함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동시에 사탄에게 패괴된 인간의 본질과 실태와 범죄의 근원을 남김없이 파헤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으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교만함, 사악함, 간사함 등 사탄 성품이 가득하고 전혀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깨달음으로 진실한 회개를 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달갑게 받아들이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진리를 추구해 성품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사탄 패괴 성품의 속박과 매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이 이룬 성과입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언행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도 혈기를 드러내고 나오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매번 화내고는 왜 참지 못했을까 하며 후회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또 그런 상황이 생기면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화내는 것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 여동생이 해고당해서 몹시 힘들어하길래 제가 발품 팔아서 일자리를 하나 구해줬습니다. 동생이 좋아할 줄만 알았는데 자기는 힘들지 않고 많이 버는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며 제게 말도 없이 제가 구해 준 곳의 연락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는 화가 치밀어서 동생에게 제가 그렇게 힘들여 일자리를 구해 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사리분별을 못 하고 제 의견도 묻지 않고 거절하다니 언니가 물로 보이냐며 훈계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저도 괴로웠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동생에게 그렇게 화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어떤 위치에 오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트집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이유 없이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어떤 자리에 오르지 못한 패괴된 인류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항상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항상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쏟아 내고 교만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표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여기에는 불순함, 음모와 계략, 패괴와 사악함, 심지어 야심과 욕망이 가득하다.』
[신앙 간증]화 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알고 있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저는 패괴된 인류가 자꾸 화내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기거나 체면이 구기면 명리와 지위를 위해 불만을 표하느라 본연의 혈기를 드러내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이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다 교만한 패괴 본성에 지배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교만한 본성이 있어 유아독존식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원하고 자신의 명리와 지위를 무엇보다도 크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언행이 자신의 체면이나 이익이나 지위와 상충하면 화내는 방식으로 불평을 드러내고, 그것으로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며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동생에게 화를 낸 이유도 동생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제 뜻을 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랑 상의도 없이 일자리를 거절한 것은 저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여 더욱더 화가 나서 훈계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것이 교만한 성품에 지배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성품 때문에 저는 자신을 높이 보며 제 말에 따라 주기를 바랐던 것인데, 그런 권위적인 면이 채워지지 않으니 화를 내게 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 저는 맘에 들지 않는 일을 마주했을 때 화가 나면 즉각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화가 나는 이유를 찾아 반성하였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어 육을 배반하고 진리를 이행할 힘이 생겼습니다. 비록 큰일은 아니었지만, 이 일을 겪으며 저는 사람의 패괴 성품이 절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말세 하나님의 심판 사역만이 사람을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여 정결함 받고 변화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내고 혈기를 드러내는 문제를 해결해 죄의 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말세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정결케 되고구원을 얻는 유일한 경로입니다.
코멘트: 이 글을 통해 화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으셨지요? 더 많은 내용을 알아보고 싶거나 다른 곤혹스러운 문제가 있다면 아래 온라인 채팅창을 통해 연락주세요.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시편 96:13)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편 1:5)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사도행전 17:31)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47~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복음 5:22)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요한복음 5:2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베드로전서 4:17)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다니엘 7:10)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시록 20:11~12)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시록 14:7)
[성경 공부]하나님의 말세 심판에 관련된 성경 구절 23가지
하나님의 말세 심판과 천국 가는 것의 관계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2~4)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스가랴 13:8~9)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다니엘 12:9~10)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시록 22:1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1:3~4)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시록 11:15)
관련된 하나님 말씀: 『말세의 사역은 각 부류별로 나누는 사역이자 하나님이 경륜을 끝내는 사역이다. 이는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 즉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은 때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날에 이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을 받아들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인 것이다. … …‘심판’이라는 말을 언급하면, 너는 여호와가 만방에 알린 말씀이 떠오르고,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꾸짖은 말씀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씀들이 엄하긴 해도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서로 다른 상황, 즉 서로 다른 배경에서 하나님이 한 말씀일 뿐이다. 그런 말씀들은 말세의 그리스도가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타락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를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타락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안녕하세요! 어제 저는 한 교우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예전에 몰랐던 성경의 많은 비밀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듣고서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가 목사와 장로의 행동을 폭로하고, 목사와 장로가 바로 당대의 바리새인이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약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교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목사와 장로를 비판하는 것이고,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주님께 정죄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그러나 교우는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분별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결부시켰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태복음 7:15) 교우는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본질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듣고 난 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분별이고, 무엇이 비판일까요? 형제자매님들이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소란 자매
소란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게 돼서 기쁩니다! 무엇이 분별이고 무엇이 비판인지에 관해서 저의 깨달음을 나누어 드릴 테니, 우리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분별할 줄 아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누가복음 12:1) 2천 년 전을 돌이켜 보면, 유대 백성은 바리새인을 분별하지 못해서 맹목적으로 바리새인의 말을 믿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의 실패로부터 우리는 분별하지 않으면 사람을 따르고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질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 우리 곁에 있는 외식하는 자를 경계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많은 비유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분별하는 비유 등은 우리가 진짜 신도와 가짜 신도, 진짜 목사와 가짜 목사를 분별할 줄 알게 해서 사람에게 현혹되거나 지배를 당하지 않고, 이용당하거나 통제받지 않으며, 진실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음 15:14) 분별할 줄 모르면 쉽게 잘못된 길로 빠지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따르고 경배해서 결국에는 구덩이 속에 빠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별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열심만 있다고 해서 온전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에게는 체험과 인식이 필요하다. 일할 때도 원칙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역사를 얻어야 한다. 너에게 체험이 있으면 많은 일을 분별할 수 있고, 선과 악, 정의와 사악, 혈기에 속하는 것과 진리에 속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것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너의 실제 분량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분별하는 것일까요?
무릇 진리로 사람의 영적 상태와 행위를 해부하고, 진리에 완전히 합당해야 하고, 사실에 부합되며 속셈과 목적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나눔이 바로 분별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게 하고 현혹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28) 바리새인은 겉으로는 좋은 행동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경건함을 나타내려고 옷가지에도 경문을 가득 수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서 전혀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이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해, 예수님의 사역이 율법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로마 정부에 넘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바리새인의 행위로 볼 때 그들이 외식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가리켜 한 말씀이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드러내 보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에 부합한다면 이는 비판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목사와 장로에게 대입시켜 본다면, 그들은 겉으로는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포용과 인내를 가르치고 연약한 신도를 돕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들었을 때만은 전혀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진리를 구하고 알아볼 때, 그들은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손아귀 안에 통제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해 위협하며 진리를 구하고 알아보는 신도들을 백방으로 가로막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는 형제자매들을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이런 모습들을 볼 때, 하나님의 눈에 그들이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이 한 모든 일을 칭찬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행동이 바리새인과 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합니다. 우리가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들을 분별하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실제적이고 정확하며 매우 적절해서 전혀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의 행위를 분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입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평가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이 비판하는 것일까요?
사람을 비판할 때는 모두 속셈이 있습니다. 개인의 비열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르고, 과장된 말을 하며, 모든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 따라 분석하고,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함부로 규정하고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며 남을 모함해서 사람들에게 고통과 타격과 상해를 가져다줍니다. 예를 들면, 욥이 시련을 겪을 때, 그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도 전에 함부로 욥을 비판했습니다. 성경 욥기 4장 6~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이 말의 속뜻은 욥이 이런 고통을 받게 된 것은 분명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했기 때문이니 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과 연단을 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했기 때문에, 욥을 함부로 비판하고 공격해서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결국 욥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린 후에야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기 42:7~8)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해서는 안 되고, 함부로 정죄하고 마음대로 비판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미움만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욥을 본받아 입으로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고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시련 중에 굳게 섰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세의 오늘날, 우리 곁에는 온갖 비판과 비방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대세에 따르면 안 되고, 반드시 사실과 진상을 알아본 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란 자매님, 이런 나눔이 자매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메일로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말씀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이 생명의 본질을 지니고 있고 생명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자 끝없이 솟아나는 생명수의 원천이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은 생명의 활력을 가진 많은 사역을 했고,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많은 사역을 했으며, 사람이 생존하게 하기 위해 숱한 대가를 치렀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이고 사람을 부활시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 순간 사람의 마음속에 있고, 시시각각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사람이 생존하는 근본이 되었고, 또 사람이 후천적으로 생존하는 데 있어서 풍부한 자원이 되었다. 그는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 안에서 꿋꿋이 살아가며 그의 힘과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생명력에 의지해 한 세대 한 세대 이어 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가진 힘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사람들을 지탱해 주고 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치른 적이 없는 대가를 치렀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압도할 수 없다. 그의 생명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눈부신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다. 천지가 크게 변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생명은 계속 존재한다. 하나님은 만물이 생존하는 원천이자 만물이 의지해 살아가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하늘은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땅도 역시 하나님의 생명력을 원천으로 생존한다. 생기를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날 수 없고, 활력을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인물이든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너는 생명을 몹시 얻고 싶을 수도 있고, 진리를 몹시 얻고 싶을 수도 있다. 어쨌든 너는 하나님을 찾고 싶어 한다. 네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 네게 영생을 부여하는 하나님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네가 영생을 얻고 싶다면 먼저 영생이 어디에서 오는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방금 나는 하나님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이고, 하나님께만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명이라면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고, 하나님만이 생명의 말씀이라면 하나님 자신이 곧 영생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너는 먼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영생의 말씀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이 두 문제를 따로 떼어 교제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