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2)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3)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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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여호와 이름을 취하신 의의

   성경 참고: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 3:15)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여호와 이름을 취하신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여호와’,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역사할 때 내가 취한 이름이다. 그 원뜻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고, 또 사람을 인도하여 생활하도록 하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의 선민)의 하나님이고, 큰 능력이 있고,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고 모세의 하나님이며,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유대 족속을 제외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하여 제단 위에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바란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었다. ……‘여호와’ 그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있게 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역사에서 나의 이름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대표적인 의의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마다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신이 경배하는 하나님에 대한 존칭이다……』

<‘구주’는 이미‘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율법시대에는 여호와, 이 이름으로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하였고, 땅에서 1단계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단계에 한 사역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것은 땅에서 그의 사역의 근거지를 전개한 것이다. 그 근거지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하였는데, 바로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후의 사람은 모두 점차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여호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사역을 밖으로 확장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한 첫 번째의 성지이다. 하나님이 맨 먼저 땅에서 역사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것인데, 이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여호와 이름을 취하신 의의 (2)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계명을 정하여 모세에게 그를 따라 애굽 땅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포하라고 하였다. 그 계명은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지, 애굽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여호와는 계명으로 그들에게 요구하였는데,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등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삼아 죄로 정하거나 의롭다고 칭하였다. 그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고, 어떤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고,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이 계명을 지키는지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그에게 임하였다.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그가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는 기간에 사람이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갓 태어난 그 인류를 율법으로 제어한 것은 이후의 사역에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하신 사역에 근거하여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고 칭하였다.』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 즉 그가 정식으로 역사한 것은 모두 2천 년이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외에서 동시에 역사한 것은 모두 5백 년인데, 합하면 2천 5백 년이 된다. 그 기간에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를 섬김에 있어서 성전을 건축해야 하고, 제사장 옷을 입어야 하며, 새벽부터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의 신발이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면 불이 성전 위로부터 그들에게 내려 그들을 태워 버리기에 그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분을 함으로 여호와의 안배에 순복하였고, 성전 안에서 여호와께 기도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는데, 즉 여호와가 말씀한 후 백성들을 인도하여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여호와는 또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고, 여호와의 때, 즉 여호와의 유월절에 초태생의 송아지와 어린양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제단에 바쳐 여호와를 섬기라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을 단속하여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그 율법을 지키게 하여 여호와께 충성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여호와 이름을 취하신 의의 (3)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주라고 하였다. 당시에 그들은 여호와를 일가의 주인으로 여겼으며, 이스라엘 온 땅은 하나의 대가족으로 되어 모두 그들의 주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여호와의 영은 때때로 사람에게 나타났고 사람에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였으며, 구름기둥과 음성으로써 그들을 인도하여 생활하게 하였다.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영이 직접 인도하여 사람에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였는데, 사람이 본 것은 구름이었고 들은 것은 우렛소리였다. 바로 이렇게 몇천 년 동안 그들을 인도하여 생활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오직 이스라엘 사람만이 줄곧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역사 이상 (2)>에서 발췌

  『이스라엘에서 역사하고 말씀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이스라엘 온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더 나아가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가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에게 그의 생명이 있게 할 수 있고, 또 사람을 흙에서 소생시켜 피조된 인류가 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또 인류를 불사르고 저주하고 형벌의 채찍으로 인류를 관리할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면서 밤과 낮의 시간에 따라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단지 피조물에게 사람이 본래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에서 왔고, 또한 여호와가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더욱더 이스라엘 외의 각 나라, 각 족속들(사실 이스라엘 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그 조상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인 이방의 나라와 족속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복음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전 우주 아래의 피조물이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고 크게 높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구약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땅에서 생활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그의 선민이고 그가 땅에서 택한 그의 뜻에 맞는 첫 무리의 사람들이고 그가 친히 인도한 첫 패의 사람들임을 증명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가 바로 여호와가 택한 첫 패의 선민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 여호와의 사역이 끝날 때까지 줄곧 그들의 몸에 역사하였다.』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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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 ⇒ 생명 양식 ♠

파경에 직면한 결혼 생활, 어떻게 돌이켰는가

남편의 배신으로 깨져 버린 행복했던 결혼 생활

  어려서부터 로맨스물을 좋아했던 저는 연애와 결혼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커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며 끝까지 함께 늙어가길 바랐습니다. 20세가 되던 해, 동료의 소개로 저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잘생기고 큰 키를 가진 남편은 제게 관심을 보이며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언제나 할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제 배우자로 삼고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께서 남편과의 교제를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제 말에 무조건 따랐고 우리의 사랑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낳게 되었고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졌습니다. 저는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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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삶의 가치

시련을 겪은 후의 욥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욥 42:7~9)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0)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욥 42:12)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 42:17)

욥의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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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육신이 갖는 중요성

  관련된 하나님 말씀:

  『이 육신이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이면서 더욱이 하나님이기 때문이고, 그가 평범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가 땅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는 패괴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인류에게 있어서 그 어떤 가치 있는 사람보다도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완전하게 인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평범하고 정상적이지만 그가 인류에게 기여한 것과 인류의 생존에 대해 갖는 의의를 논한다면 아주 보배롭다. 이 육신의 실제 가치와 의의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육신은 비록 사탄을 직접 멸할 수는 없지만 사역하는 방식으로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쳐 철저히 그의 권세 아래에 굴복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기 때문에 그는 사탄을 물리칠 수 있고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그는 사탄을 직접 멸하지 않고 성육신하여 사역하면서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정복한다. 그러면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고, 패괴된 사람을 더 잘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탄을 멸하는 것보다 더 좋은 증거가 되며 설득력도 더 강하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창조주를 알아 가는 데에 더 효과적이고,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다.』

―<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에서 발췌

성육신,예수님께서 설교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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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송가 듣기 — 진실한 기도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우리 모두가 그 가운데서 깨우침과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말씀으로 교제하면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바로 앞에 있다고 느껴지죠

진실한 기도는 마음이 환해지고

하나님께 할 말이 있고

하나님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며

특별히 격려받게 되죠

기도는 과정을 거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 찬송가 듣기 — 진실한 기도

기도할 때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어

하나님 감동을 받아야 하죠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말씀 보는 것이 기본이죠

진실하게 기도를 하면

평안과 누림이 있게 되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돼요

Oh… oh… oh…

말씀 찬송가 듣기 — 진실한 기도 (4)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 요구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 요구대로 하는 것이죠

요구대로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하며

진리에 인식이 있는 것이죠

기도한 후에 믿음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예요 진실한 기도예요

말씀 찬송가 듣기 — 진실한 기도 (2)

진실하게 기도를 하면

평안과 누림이 있게 되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돼요

Oh… oh… oh…

진실한 기도예요

Oh… oh… oh…

진실한 기도예요

말씀 찬송가 듣기 — 진실한 기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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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  > 찬송가 ♣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싱글맘인 나는 이혼 후에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았다. 생활은 단순하고 즐거웠다. 다만 다섯살배기 딸 아이가 장난이 너무 심하다 보니 점점 통제할 수 없어져 힘들었다.

  하루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방 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반이라 얼른 침대로 가서 한창 자고 있는 딸에게 소리쳤다. “예안아, 어서 일어나.” 아이는 몸을 비틀며 계속 잠을 청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아이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지금 안 일어나면 유치원 지각이야.” “싫어! 나 유치원에 안 가. 잘 거야!” 딸 아이는 화난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나는 머리를 덮고 있는 이불을 잡아당기며 엄하게 말했다. “어젯밤에 일찍 자라고 말할 때는 안 듣더니 거봐 지금 못 일어나겠지? 어서 일어나, 안 그러면 엄마 화낸다!” 딸 아이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지 못해? 어서, 당장!” 나는 소리지르며 딸 아이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어렵게 잠에서 깨웠는데 골치 아픈 일은 뒤에 또 있었다. “이 닦자.” “싫어!”, “세수하자.” “싫어!”, “머리 빗자.” “싫어!” …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비뚤어지게 나와 나는 분통이 터졌다. 이 아이는 어쩜 이렇게 말을 듣지 않을까? 나는 애써 참으며 어르고 달래서 겨우 옷을 입히고 또 세수와 양치를 시키느라 30분을 더 씨름하고 나서야 함께 문밖을 나설 수 있었다.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계속 읽기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 주님의 공중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가

  지금은 말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가끔은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주님이 갑자기 구름을 타고 눈 앞에 나타나시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을 아직까지 맞이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는 크리스천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은 구름을 바라보며 주님을 기다렸던 부부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방법을 찾은 과정에 대해 함께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께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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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편집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엄격한 엄마’가 되고 또 누군가는 ‘엄격한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의 문제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로 교육하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당신은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오늘 이야기 속의 주인공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럼 우리 함께 그녀의 체험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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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오해

    이 겪은 고통스러운 일은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이 직접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욥의 고통받은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욥은 자신이 평소에 마음속에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 평소의 행동 원칙과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전부 드러냈다. 그것은 다 진실한 것이었다. 만일 욥에게 시험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에게 시련을 주기 전에, 욥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말을 했다면, 너는 욥이 매우 위선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아주 많은 재산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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