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 3:21~22)
2.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말로써 인자를 거스르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마 12:31~32, 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 가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으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게 되면 너희보다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도다”(마 23:13~15, 중국어성경 직역)
‘성경’을 언급하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으로 무릇 크리스천이라면 기본적으로 성경책을 갖추고 있고 영적 생활을 하고 예배드릴 때도 성경을 보며, 복음을 전하고 설교할 때는 더더욱 성경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크리스천의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의 일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 끝의 마지막 시기로,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들은 벌써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들림 받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영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더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결같이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복음을 전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각자가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을 사람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틀림없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주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많은 형제자매님들은 자신이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이미 죄 사함을 받았고, 게다가 늘 봉헌하고, 설교하고, 헌신하면, 마지막에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기독교 신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행위가 있게 되었지만, 사람과 접촉할 때 여전히 혈기와 화를 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낼 수 없고, 또 늘 세상의 조류를 따르고 세속을 그리워합니다. 비록 우리가 매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질병이 재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온 몸이 죄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문제에 대해 우리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맞기는 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이 영구불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바뀌고 사역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의 실질이 바뀌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영구불변한 것이다. 네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구불변하다면,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날 수 있겠는가? 너는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항상 새롭다는 것을 네가 아는가? 그의 사역이 영구불변하다면, 그가 인류를 오늘까지 인도할 수 있었겠는가? 영구불변한 하나님인데, 왜 이미 두 시대의 사역을 하였겠는가? 그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의 성품을 차츰차츰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인데, 나타내는 것은 모두 그의 고유한 성품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에게 숨겨진 것이었고, 그가 지금까지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아 사람이 그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역사를 통해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차츰차츰 나타내는데, 그가 이렇게 역사한다고 해서 결코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역하는 시대가 다름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의 고유한 모든 성품을 차츰차츰 사람에게 나타내어 그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원래 특정된 성품이 없었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시대가 다름에 따라 그의 성품도 차츰차츰 바뀐다는 것은 그릇된 인식이다. 그는 고유한 특정된 성품, 곧 그의 소시를 사람에게 나타내는데, 시대가 다름에 따라서 나타내는 것이지,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발표해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새롭다’는 이 말은 그의 사역을 놓고 말한 것이고,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고유한 소유소시를 놓고 말한 것이다. 어쨌든 너는 6천년의 사역을 한 부분에 정해 놓거나 한 마디 고정된 말에 맞춰 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우매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한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마치 여호와라는 이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대체할 수 없고, 하나님이 또 예수라는 이 이름으로 역사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징이다.』ㅡ<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지금 말세에 다시 오시는 주님에 대한 예언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졌어요.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오셨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어요.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는말씀을 보고는 이 말씀을 근거로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주님이 오셨다고 전해도 찾고 구하지 않고 알아보지도 않아요. 이런 관점이 맞나요? 주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고 만약 주님이 오셨는데도 아무도 모른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따르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또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을까요?
지금의 교계는 수많은 교파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뜨거워 보이지만 은혜되는 설교가 없으며 신자들의 영혼은 갈급하기만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시기와 질투, 분쟁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들 속에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필자의 체험에 따라 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1. 지난날의 회억(回憶)
2. 의문스럽고 답답한 마음, 교회가 어쩌다 세상처럼 되었는가?
3. 뜻밖의 기회, 교회가 황폐한 원인을 알다
4.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법을 찾고 구하다
지난날의 회억(回憶)
10여 년 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서 공허하고 외로웠습니다. 나중에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교회를 나가는 게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매우 은혜가 됐고, 주일날이면 교회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신앙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예배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다들 모여 앉아 서로의 체험을 나누며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증했고 기쁨을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집이자 가장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저도 조금씩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전도 활동에 참여하며 교회에서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의문스럽고 답답한 마음, 교회가 어쩌다 세상처럼 되었는가?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를 찾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교회의 열기가 점점 식어갔습니다. 젊은 교역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에서도 거리낌 없이 애정 표현을 하며 성도의 품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당연하다는 듯 교회를 데이트 장소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정말 싫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 예배에서 A 장로가 교회의 그런 모습을 놓고 지적했습니다. 세상의 시류를 좇는 이방인들처럼 살지 말고,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 교회를 어지럽히지 말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다른 두 장로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A 장로에게 그렇게 설교하면 젊은이들이 싫어한다며, 젊은 사람들을 생각해 주어야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도 두 장로는 A 장로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심지어 교인들 앞에서도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정의감이 있는 A 장로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며 저는 ‘A장로님의 말씀이 맞지 않은가?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니 당연히 바른 자세로 임해야지! 여기는 세상도 아니고 데이트 장소도 아니잖아! 형제자매들이 세상의 악한 흐름을 쫓아 가는 모습은 사람도 못 봐줄 정도인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A 장로님의 권고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잖아! 근데, 두 장로는 A 장로를 지지하기는커녕 배척을 하다니, 이건 죄를 방임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장로가 떠난 후, 다른 장로가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 내용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오래 참으며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국가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라고만 가르쳤고, 아무런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목사님들을 초청해 예배를 하기도 했지만 전부 먹고 마시고 노는 세상의 일, 세상의 시류, 부자가 되는 비결 등의 이야기만 할 뿐,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장로들은 교회에서 학력이 높은 박사나 명망이 있는 사람들을 강단에 세웠고, 그들은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근을 했습니다. 결국, 예배는 국어 수업을 듣는 느낌만 들었고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갈수록 불법이 성해졌고, 황폐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예배에 온 사람들도 대부분은 졸거나 휴대폰만 들여다 보았으며, 예배가 끝나면 돌아가기 바빴습니다. 장로들은 교회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두려워 홍콩에서 설교 mp3를 구해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게다가 주일날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장로 부부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심방을 다녔고, 설날이나 명절이면, 케익, 빵 등의 선물을 들고 찾아다니며 감언이설로 달래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물도 받았고, 장로 부부의 ‘특별한 배려’를 받으니 교회에 오면 헌금을 두 배씩 했습니다. 저는 은혜가 되는 교회를 찾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괜스레 장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확실히 변질되었고, 목자와 성도들 사이는 영적으로 붙들어 주는 관계가 아니라 육적 이익을 유지하는 관계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떠나기도, 그냥 눌러 앉기도 그렇고, 마냥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런 상태면 과연 주님께서 이 교회에 거할지, 이런 믿음을 과연 주님께서 인정하실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뜻밖의 기회, 교회가 황폐한 원인을 알다
2018년 4월의 어느 날 오후, 버스 정류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엠마(Emma) 자매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도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엠마가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인사도 하고 새 집을 구경도 할 겸 찾아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의 이웃인 천(陳) 형제님을 알게 됐습니다. 천 형제는 설교자였고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자연히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국제 정세를 이야기할 때, 천 형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큰 재난이 있을 거라고 예언하셨죠. 지금 보면 전쟁, 전염병, 기근, 지진, 산사태, 화산 폭발, 홍수 등, 각종 천재와 인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예언이 거의 이루어졌고 주님이 오실 때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이 중요한 때에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 보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소리친다고 했습니다. 그건 주께서 오시면, 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지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증언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인 지금, 주님이 오셨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교제는 매우 새롭고 실제적이었으며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전에는 지금이 주께서 오실 시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의 음성을 아는 슬기로운 처녀가 돼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큰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성경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천 형제님의 깨달음과 견해는 목사님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다니는 교회의 상태와 마음의 고민, 그리고 의문을 털어놓았습니다. “형제님,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한 번 여쭤 볼게요. 지금 우리 교회의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성도들은 세상의 시류를 따라가고, 장로들은 서로 패거리를 짓고 질투하며 분쟁을 합니다. 은혜가 되는 설교를 못하니 계속 작은 선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요. 이제는 죄를 지어도 성령의 징계가 보이지 않아요. 왠지 교회가 변질된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천 형제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자매님, 교회가 변질됐다는 걸 아시네요. 그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세상처럼 변했고 죄를 지어도 성령의 징계가 없다는 건 구약 말기에 성전이 황폐해진 시기와 다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알려면, 성전이 황폐해진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2~1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구약 시기의 성전은 원래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했고, 사람들에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모두 공손한 자세로 임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려는 사람이 없었죠. 게다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그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구약 성경에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제멋대로 분향하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걸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크게 경외했고, 성전에서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 밖에서 새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성전은 우양과 비둘기를 사고 팔고, 돈을 바꾸는 도적의 소굴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징벌이나 징계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실 때는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떠나시니 성전은 곧바로 황폐해지고 도적의 소굴로 변했으며 불법이 성했습니다. 이처럼 뚜렷하게 대비되는 현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불법이 성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건축하고 사람이 많고,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며 뜨거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떠나셨다면, 그곳은 사람이 만든 단체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거짓 교회가 된 것입니다.”
형제의 교제를 들으니 놀랍기도 했고 부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악을 미워하는 분이시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라면 분명 성령의 징계가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고, 장로들은 영적인 관계가 아닌 육적인 관계로 교회를 운영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교회는 확실히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휴, 교회라고 해도 주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교회라고 할 수 없구나. 그리고 우리 교회와 같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설마 그 많은 교회가 다 주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거짓 교회란 말인가?’ 저는 놀랍기도 하고 의아해서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법을 찾고 구하다
그래서 형제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형제님,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가 이런 상태입니다. 목사들도 그저 잘 먹고 노는 이야기를 하거나 헌금에 대해서만 많이 강요를 합니다. 그럼 그런 교회는 다 주의 뜻에 합당치 못한 것인가요?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요? 아직 이해가 좀 안 되는데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형제님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참교회가 맞는지를 구별하려면 두 가지를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사람들의 생명이 계속 자라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죠. 따라서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 성령의 깨우침과 감동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되고, 영적으로 충분히 공급을 받게 되며 생명도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점점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교회라면 인원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세 명밖에 없는 곳일지라도 성령이 함께하시면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배 시간에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이 없고 항상 메말라 있어 신도들이 영적 양식을 먹지 못하고 생명이 자라지 못하며, 믿음이 계속 식어 간다면 형식적인 예배 의식을 행할지라도 교회가 아닙니다. 게다가 대놓고 세상의 시류를 좇아 가는데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율법시대 말기의 성전과 똑같이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거짓 교회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교회’는 아무리 사람이 많을지라도 그냥 모임 장소일 뿐, 교회라 칭할 수 없습니다. ”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근거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우리의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지 봐야 한다.’, 맞는 말씀이네요.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이 있을 것이니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갈수록 좋아지겠죠. 근데,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니 예배도 별 의미가 없겠고, 진정한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모두가 다운되고 소심해지겠네요. 그럼, 교회를 떠나는 일도 많아질 것이고 교회는 구약 말기의 성전처럼 불법이 성해지고 도적의 소굴이 될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우리 교회를 보면 그래요. 설교를 한다지만 반복된 구호나 외치고, 툭하면 세상처럼 먹고 마시고 놀기 바쁘고,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근할 뿐, 새로운 깨우침이 없어요. 그래서 설교를 열심히 들어도 밋밋하기만 하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저도 예수님 믿은 지 오래 됐지만 생명은 별로 자라지 못했어요. 지금은 새 신자 때보다 더 못해진 느낌이에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믿음과 사랑과 열의가 다 식어 버렸어요. 이게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이대로라면 우리 교회도 거짓 교회잖아요! 휴, 지금까지 바보처럼 믿었네요. 계속 이런 신앙을 하다간 주님을 잃어 버려도 모르겠네요.”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오늘 친구가 보낸 게시글을 봤어요. 같이 출근하고, 요리하고, 교회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고 코로나가 지나가면 로스앤젤레스의 풍경도 같이 보자는 내용이었어요 .이런 글을 보고 저는 가슴이 찡했어요. 최근 동영상을 봤는데 뉴욕에서 코로나로 인해 매일 수 천명이 죽어가고 있대요.또 필리핀에 있는 언니한테 들었는데 필리핀도 코로나로 심각하다고 해요. 사람들이 출근을 못하게 되니 돈이 없고 식량도 떨어져서 굶어죽기도하고,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기도 한다네요. 이탈리아,스페인에서도 매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데요. 매일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겁고 그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 하루 빨리 주님을 영접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