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예언은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예언의 참뜻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영적인 위인들조차도 예언을 추측하고 추정할 뿐이지, 이해하고 있는 것과 예언에 담겨 있는 참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예언)을 마주하여, 우리가 예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베드로후서 1:20~21),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베드로후서 3:16),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린도후서 3:6)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언은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야만 비로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머리와 상상에 의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 바로 자기 뜻을 고집하며 문자 의미대로 예언을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언을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언을 잘못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남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현혹시키거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은 메시아 강림의 예언을 대할 때 자기 뜻대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세상에 오시기 전에, 유대 바리새인은 이사야 7장 14절, 9장 6절 및 미가 5장 2절의 예언대로 주님이 오실 때의 상황을 머리에 다 상상해 놓았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왕궁에서 자라고,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예언이 이루어졌을 때, 이는 사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언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한 마리아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예수라 지었고, 나사렛에서 태어나 목수의 집안에서 자랐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는 예언의 문자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욕하며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어 영원히 주님의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리새인이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머리로만 상상하고, 예언의 문자 의미에만 매달렸던 것이 그들이 실패를 초래한 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성경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2천년이 흐른 지금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바리새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며 주님의 재림에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아주 많아서 우리가 성경의 문자 의미대로 이러한 예언들을 해석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어떤 예언에는 주님이 밤중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계시록 16:15, 마태복음 25:6 참조). 우리는 문자 의미대로 주님이 밤중에 오셔서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독교인들은 밤에 자면서도 외투를 입고서 주님이 오셨을 때 단정한 모습으로 들림 받아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언에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다고 나와 있습니다.(계시록 1:7 참조) 우리는 또 문자 의미대로 주님이 대낮에 구름 타고 오셔서 만인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또 온종일 고개를 쳐들고 구름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공중의 구름을 타고 우리 가운데로 내려오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종 상상들이 정말 너무 많습니다. 그럼 대체 주님은 어떤 예언을 이루실까요? 여기에는 모두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상상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원칙과 하나님의 뜻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준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너의 관념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기 머리로 주님이 오실 장면을 상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우리도 모르며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이루셨을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모릅니다. 일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은 할 수 있었을지라도 그들도 예언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대해 우리는 자기 머리로 상상하며 맘대로 해석하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겸손히 구하면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주님의 재림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당초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베드로, 요한, 나다니엘 등이 메시아를 영접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진리를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권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메시아의 재림이라고 단정짓고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의 문자에 매달리지 않았고, 예언의 문자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떻게 오셔야 한다며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들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성공적으로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겸손히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증거하면 예언의 문자 의미와 다르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거절해서는 안 되며 직접 구하고 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됩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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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이란]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왕 자매님:

주안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자매님의 메일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메일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나면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고, 주님이 오셨을 때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하지만 어떤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비록 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죄 속에 살면서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고 정결케 되어야만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로 저는 너무나 곤혹스럽습니다.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나면 과연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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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이 궁금해하는 그것은 주 안의 많은 형제자매들이 모두 곤혹스러워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저는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설교자인 이(李) 자매님이 마침 이 부분의 문제에 대해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듣고 난 저는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고 세례와 천국의 관계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은 성경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9~20)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단지 주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의식으로, 우리가 정식으로 기독교인이 되어 주님 앞으로 돌아온 것이고, 주님의 보호와 축복을 누릴 수 있으며 예수님의 속죄제를 얻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듭나서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죄 사함을 받았지만 또 항상 어쩔 수 없이 범죄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명예나 지위를 위해서 항상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면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포용과 인내를 절대 실천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재해와 사람으로 인한 재앙이 닥치고,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부인하고, 논단하며, 대적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명백한 사실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6)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반드시 죄를 벗고 정결케 되어야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도 타락한 성품이 남아 있어 여전히 범죄하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면 정결케 되어 새사람이 될 수 없는데 또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습니까?

자매님은 또 우리와 다음의 대목을 읽었습니다. 『너희처럼 이제 막 구속된 죄인들은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 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구속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대목의 말씀을 보고 또 자매님의 간증을 듣고 나서야 저는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은 구속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원’은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당하거나 처형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우리가 완전히 성결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며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비록 죄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 안의 범죄의 본성이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과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 안의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해결되지 않으면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은혜시대에 예수님은 인류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사람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직 더 깊고 더 높은 진리가 남아 있으며, 우리가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성결해질 수 있는 여러 방면의 진리도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세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 몸의 죄성이 철저히 정결케 되고,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성결해져야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예언의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고 하여 거듭나서 구원받고 새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정결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자매님, 제가 깨달은 부분은 여기까지이며, 자매님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매님도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메일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린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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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 3:21~22)

2.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말로써 인자를 거스르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마 12:31~32, 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 가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으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게 되면 너희보다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도다”(마 23:13~15, 중국어성경 직역)

이상은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두 부분으로, 우선 첫 번째 내용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을 보자.

성경을 보면, 예수와 그가 행한 사역에 대해 바리새인은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고 평한다. 예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거나 터무니없는 상상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의 행사를 직접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이다. 이러한 판단은 정의를 위한 것인 양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논단하는 이러한 오만 방자함은 그들 스스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예수를 향한 광기 어린 증오심에서 그들의 야심과 사악한 사탄의 몰골,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독한 본성이 드러났다. 예수를 판단하는 그런 말은 야심과 질투,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행하는 일의 근원과 말씀과 행사의 본질을 살펴보지는 않고, 안달이 나서 무턱대고, 미친 듯이, 의도적으로 악의를 품고 예수의 모든 행사를 공격하고 비방했다. 심지어 예수의 영, 즉 성령이자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 사역하는 것을 보고 미쳤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본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것과 완전히 같았다. 그들은 타락한 인류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탄의 화신이고,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대변자이자 심부름꾼이며, 사탄과 한 패거리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훼방하는 행위의 본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맞서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질과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 그들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거슬러 진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합당한 결론을 내려 그들의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규정했다. 그 죄는 아래 성경 구절과 같이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한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구절의 실제 함의에 대해 말해 보자. 즉,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이 말씀을 하나님이 어떻게 실현하는지 그 비밀을 밝혀 보자.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우리가 나눈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 있고, 하나님이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 있다. 위의 두 구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두 구절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혹자는 하나님의 분노를 보았다고 말한다. 혹자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았고,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하면 사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구절 말씀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분노와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알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이 두 구절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슬러 진노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실제적인 태도와 처리 방식이 들어 있다. 이 태도와 처리 방식이 바로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할 때가 바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때이다. 하나님은 결론을 하나 내놓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준 결과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마 12:31, 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마 23:13, 중국어성경 직역). 비록 예수가 이런 말씀을 했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예수를 미쳤다고 말한 자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에 기록이 있느냐? 그들이 무슨 벌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있느냐? 분명하게 말하면, 없다. 여기서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상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결말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없다’라는 말은 이러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태도와 원칙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그를 모독한 자, 대적한 자, 심지어는 그를 훼방한 무리를 대함에 있어, 그리고 고의로 그를 공격하고 훼방하고 경멸하는 자들을 대함에 있어,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지 않고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증오했고, 마음속으로 정죄했으며, 나아가 공개적으로 그들의 결말을 선포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함을 알게 하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그가 장차 그런 자들의 결말을 어떻게 결정지을지에 대해서도 알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끝내고 난 후, 실제로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사람은 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판단이나 결론에 대한 원칙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즉,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태도는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는 하나님 사역의 원칙과 관련 있다. 어떤 자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실질적인 벌을 준다. 다시 말해, 죄를 선포하거나 결말을 정하는 대신, 실제 사건을 통해 직접 벌하거나 악행에 대한 보응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실질적인 벌은 사람의 육체를 대상으로 하며,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또 어떤 자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말로만 저주하고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한다. 그들이 받는 벌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결말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벌이나 죽임을 당하는 결말보다 훨씬 더 중하다. 그러한 자들을 구원하지 않기로 뜻을 정한 하나님은 더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지도, 그 어떤 기회를 주지도 않겠다고 결정했기에, 이들에게 방임적인 태도를 취한다. ‘방임’의 의미는 무엇이냐? 이 단어 자체의 의미는 우선 한쪽으로 제쳐 놓고 상대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있어 ‘방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사람의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사탄이 일임하도록 넘겨주어 하나님이 더 이상 책임지거나 보살피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자가 광인이나 백치가 되거나, 살거나 죽거나 혹은 지옥으로 떨어져 벌을 받아도 이 모든 결과가 하나님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그 피조물이 이제는 창조주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두 번째 해석은 하나님이 직접 이러한 자들에게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뜻을 정하는 경우다. 그런 사람을 봉사하게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부각시키는 역할로 쓸 수도 있으며, 또는 특별한 처리나 대응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러한 부류에 대해 정한 처리 원칙이자 태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고 모독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케 하고, 하나님이 준 최저선을 넘어서면, 그 뒤에 오는 결과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한 번으로 영원히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원토록 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는 그 사람이 사탄의 먹잇감이자 노리개가 되었으며, 더 이상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너희는 당초 욥이 사탄에게 시험당할 때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상상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한 상황에서도 욥은 몹시 큰 고통을 겪었다. 하물며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진 자, 사탄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자, 하나님의 보살핌과 긍휼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 창조주의 주재를 잃은 자, 창조주를 경배할 권리를 빼앗긴 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는 피조물이 될 권리를 박탈당한 자, 창조주와 완전히 관계가 끊긴 자들이 받게 될 사탄의 박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욥에 대한 사탄의 박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 사람의 목숨을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면,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소나 나귀로 환생하거나, 더러운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잡히거나 빙의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넘겨진 후, 그들이 맞게 될 파국적 결말이다. 외적으로 볼 때, 당시 예수를 비방하고 훼방하고 정죄하고 모독했던 자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리 방식이 있다.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에 대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전부 명확하게 알려 주지는 않는다. 말씀보다는 직접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말씀이 없다고 결말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어쩌면 말씀이 없는 경우의 결말이 더 심각할지 모른다. 어떤 이들의 말에 대해 하나님이 겉으로는 태도를 밝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그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의 행동과 본성과 본질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려 한다. 직접 그를, 그의 영, 혼, 육을 모두 사탄에게 넘겨주어 사탄이 마음대로 하게 두려는 것이다. 그런 자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누군가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하나님이 그를 보고 싶지도 않아 완전히 포기하고, 나아가 직접 처리하고 싶지도 않아서 사탄이 통제하고 삼키고 마음대로 처리하게 넘겨줄 정도까지 된다면, 그자는 정말이지 끝이 난 것이다.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격, 피조물로서의 자격이 완전히 박탈당한 것이다. 이보다 더 중한 벌이 어디 있겠느냐?

이상의 내용들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자, 이 성경 말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제 이해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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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나 역시 강요하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있는 나의 영광을 다른 세계로 옮겨 간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이 또 후회하면 ‘믿음’에 속한 더 많은 사람에게 영광을 보여 준다. 이것이 나의 사역 원칙이다. 영광은 가나안을 떠날 때도 있고 선민을 떠날 때도 있으며, 더욱이 온 땅을 떠날 때도 있다. 따라서 온 땅이 어두워져 빛을 잃고, 암흑으로 뒤덮여 가나안 땅에조차 태양이 비추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믿음을 잃는다. 하지만 모두들 가나안 땅의 향기에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한다. 내가 새로운 하늘땅에 들어가면 그때 비로소 또 한 부분의 영광이 제일 먼저 가나안 땅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칠흑같이 어두운 온 땅에 한 줄기 빛이 나타나고 온 땅이 그 빛을 따르게 된다. 나는 온 땅의 사람으로 하여금 빛의 위력에 힘을 얻게 하고, 나의 영광이 더해지게 할 것이며, 내 영광이 다시 열방에 나타나게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내가 이미 인간 세상에 왔고, 이미 이스라엘의 영광을 동방으로 가져왔음을 알게 할 것이다. 나의 영광이 동방에서 나왔고, 은혜시대에서 오늘날로 옮겨져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떠났고 또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왔다. 동방의 빛이 점점 밝아 올 때 어두웠던 온 땅이 조금씩 밝아지면 사람은 그제야 내가 이스라엘이 아닌 동방에서 새롭게 떠올랐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강림’했다가 이스라엘을 떠난 내가 또다시 이스라엘에 ‘강생’할 수는 없다. 나의 사역은 전 우주를 이끌어 가는 것이고, 번개는 동방에서 나서 서방까지 번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방에 강림하였고, 동방의 백성에게 가나안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온 땅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가나안 땅에서 계속 음성을 발하고 전 우주를 통제할 것이다. 이때 가나안을 제외한 온 땅은 광명이 없고, 사람은 모두 굶주림과 추위에 위협받을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에 영광을 주었다가 거두어 갔다. 또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사람을 동방으로 데려왔으며, 모두에게 ‘빛’을 주어 다시 빛을 만나고, 빛과 사귀고, 더 이상 빛을 찾아다니지 않도록 했다. 나는 빛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빛을 보게 하고 이스라엘에서의 내 영광을 보게 할 것이다. 또 내가 일찍이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왔음을 보게 하고, 뭉게뭉게 떠 있는 흰 구름과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를 보게 할 것이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과 유대인의 ‘선생’과 사람이 간절히 바라 왔던 메시야를 보게 하고, 역대 왕들에게 핍박받았던 나의 전모도 보게 할 것이다. 나는 전 우주의 사역을 행하고,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나의 모든 영광과 모든 행사를 말세의 사람에게 보여 줄 것이다. 또 내 모든 영광의 얼굴을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 온 사람들, 내가 흰 구름 타고 오기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내가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스라엘과 나를 핍박하고 있는 전 인류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로써 내가 이미 영광을 동방으로 옮겨 왔으며, 유대에는 더 이상 영광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할 것이다. 말세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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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출처: 하나님의 약속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꼭 예비해야 할 2가지

지금 세계 각지에서 점점 큰 재난이 일어나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4) 주님은 우리가 깨어서 예비해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비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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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사역자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TO.효정 자매님:

자매님, 안녕하세요!

어제 유형제님한테서 우리 고향에 있는 교회가 더 황량해졌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자매님이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자주 금식 기도를 한다는 것도요. 20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서 쓰러진 적도 있다면서요. 그 얘기를 듣고 빨리 돌아가 자매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교회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갈 수가 없네요. 그래서 이렇게 유형제님 통해서 편지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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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반복되는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청화 자매님:

안녕하세요! 몇 번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예전에 성경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정말 기쁘고, 주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요즘 제 마음이 답답해서 메일로 자매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저는 주님을 믿고 나서 주님이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태복음 5:39~40)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어요. 전 주님이 우리에게 포용하고 인내하며, 남을 나처럼 사랑하며 살라고 하신 것을 알고 있어요. 평소 실생활에서 저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싶었지만 가족이 제 뜻과 다르게 일을 할 때면 저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못하고 화내고, 불평하며, 가족들에게 화풀이도 했어요. 늘 어쩔 수 없이 죄 속에서 살았죠. 겉으로는 애써 자제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미움으로 가득 차서 항상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어요. 성경에서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라고 말씀하셨어요.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저의 삶이 변하지 않는데, 주님이 어찌 항상 죄 속에서 사는 저 같은 사람을 기뻐하실 수 있겠어요? 이 때문에 저는 몹시 괴로워요.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좋은 방법이 있다면 함께 나누며 찾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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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오디오북)

저는 주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매일 같이 기도하고, 성경 말씀 보고, 또 주님을 위해 헌신도 해 왔습니다. 근데 주님과의 관계가 멀게만 느껴졌었어요. 기도하거나 성경을 볼 때는 종종 딴생각에 빠지고 생활 속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방해를 받아서 정말 마음을 주님 앞에 평온히 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몇 년 동안은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별로 깨닫지도 못하고 영적인 생명도 크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근데 제가 최근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우리가 영적인 훈련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데에 진입해야 하더라구요.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어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고, 영적인 삶이 정상 궤도에 들어가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점점 자라날 것입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요? 제가 책에서 얻은 실행의 길을 여러분과 구체적으로 나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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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맞이하려면 중요한 것은 가난한 마음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 이처럼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면 누군가 ‘신랑이 오셨다’고 외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좋은 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주님의 뜻에 합당할 수 있으며, 또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주님은 이미 두 가지 답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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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화 – 경건의 비밀 – 명장면(2)슬기로운 처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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