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를 찾다

지금의 교계는 수많은 교파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뜨거워 보이지만 은혜되는 설교가 없으며 신자들의 영혼은 갈급하기만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시기와 질투, 분쟁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들 속에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필자의 체험에 따라 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난날의 회억(回憶)

10여 년 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서 공허하고 외로웠습니다. 나중에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교회를 나가는 게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매우 은혜가 됐고, 주일날이면 교회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신앙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예배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다들 모여 앉아 서로의 체험을 나누며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증했고 기쁨을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집이자 가장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저도 조금씩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전도 활동에 참여하며 교회에서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를 찾다

의문스럽고 답답한 마음, 교회가 어쩌다 세상처럼 되었는가?

그러나 언젠가부터 교회의 열기가 점점 식어갔습니다. 젊은 교역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에서도 거리낌 없이 애정 표현을 하며 성도의 품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당연하다는 듯 교회를 데이트 장소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정말 싫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 예배에서 A 장로가 교회의 그런 모습을 놓고 지적했습니다. 세상의 시류를 좇는 이방인들처럼 살지 말고,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 교회를 어지럽히지 말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다른 두 장로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A 장로에게 그렇게 설교하면 젊은이들이 싫어한다며, 젊은 사람들을 생각해 주어야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도 두 장로는 A 장로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심지어 교인들 앞에서도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정의감이 있는 A 장로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며 저는 ‘A장로님의 말씀이 맞지 않은가?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니 당연히 바른 자세로 임해야지! 여기는 세상도 아니고 데이트 장소도 아니잖아! 형제자매들이 세상의 악한 흐름을 쫓아 가는 모습은 사람도 못 봐줄 정도인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A 장로님의 권고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잖아! 근데, 두 장로는 A 장로를 지지하기는커녕 배척을 하다니, 이건 죄를 방임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장로가 떠난 후, 다른 장로가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 내용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오래 참으며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국가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라고만 가르쳤고, 아무런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목사님들을 초청해 예배를 하기도 했지만 전부 먹고 마시고 노는 세상의 일, 세상의 시류, 부자가 되는 비결 등의 이야기만 할 뿐,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장로들은 교회에서 학력이 높은 박사나 명망이 있는 사람들을 강단에 세웠고, 그들은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근을 했습니다. 결국, 예배는 국어 수업을 듣는 느낌만 들었고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갈수록 불법이 성해졌고, 황폐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예배에 온 사람들도 대부분은 졸거나 휴대폰만 들여다 보았으며, 예배가 끝나면 돌아가기 바빴습니다. 장로들은 교회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두려워 홍콩에서 설교 mp3를 구해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게다가 주일날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장로 부부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심방을 다녔고, 설날이나 명절이면, 케익, 빵 등의 선물을 들고 찾아다니며 감언이설로 달래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물도 받았고, 장로 부부의 ‘특별한 배려’를 받으니 교회에 오면 헌금을 두 배씩 했습니다. 저는 은혜가 되는 교회를 찾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괜스레 장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확실히 변질되었고, 목자와 성도들 사이는 영적으로 붙들어 주는 관계가 아니라 육적 이익을 유지하는 관계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떠나기도, 그냥 눌러 앉기도 그렇고, 마냥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런 상태면 과연 주님께서 이 교회에 거할지, 이런 믿음을 과연 주님께서 인정하실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뜻밖의 기회, 교회가 황폐한 원인을 알다

2018년 4월의 어느 날 오후, 버스 정류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엠마(Emma) 자매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도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엠마가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인사도 하고 새 집을 구경도 할 겸 찾아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의 이웃인 천(陳) 형제님을 알게 됐습니다. 천 형제는 설교자였고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자연히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국제 정세를 이야기할 때, 천 형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큰 재난이 있을 거라고 예언하셨죠. 지금 보면 전쟁, 전염병, 기근, 지진, 산사태, 화산 폭발, 홍수 등, 각종 천재와 인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예언이 거의 이루어졌고 주님이 오실 때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이 중요한 때에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 보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소리친다고 했습니다. 그건 주께서 오시면, 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지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증언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인 지금, 주님이 오셨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교제는 매우 새롭고 실제적이었으며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전에는 지금이 주께서 오실 시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의 음성을 아는 슬기로운 처녀가 돼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큰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성경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천 형제님의 깨달음과 견해는 목사님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다니는 교회의 상태와 마음의 고민, 그리고 의문을 털어놓았습니다. “형제님,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한 번 여쭤 볼게요. 지금 우리 교회의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성도들은 세상의 시류를 따라가고, 장로들은 서로 패거리를 짓고 질투하며 분쟁을 합니다. 은혜가 되는 설교를 못하니 계속 작은 선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요. 이제는 죄를 지어도 성령의 징계가 보이지 않아요. 왠지 교회가 변질된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천 형제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자매님, 교회가 변질됐다는 걸 아시네요. 그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세상처럼 변했고 죄를 지어도 성령의 징계가 없다는 건 구약 말기에 성전이 황폐해진 시기와 다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알려면, 성전이 황폐해진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2~1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구약 시기의 성전은 원래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했고, 사람들에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모두 공손한 자세로 임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려는 사람이 없었죠. 게다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그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구약 성경에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제멋대로 분향하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걸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크게 경외했고, 성전에서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 밖에서 새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성전은 우양과 비둘기를 사고 팔고, 돈을 바꾸는 도적의 소굴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징벌이나 징계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실 때는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떠나시니 성전은 곧바로 황폐해지고 도적의 소굴로 변했으며 불법이 성했습니다. 이처럼 뚜렷하게 대비되는 현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불법이 성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건축하고 사람이 많고,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며 뜨거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떠나셨다면, 그곳은 사람이 만든 단체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거짓 교회가 된 것입니다.”

형제의 교제를 들으니 놀랍기도 했고 부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악을 미워하는 분이시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라면 분명 성령의 징계가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고, 장로들은 영적인 관계가 아닌 육적인 관계로 교회를 운영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교회는 확실히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휴, 교회라고 해도 주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교회라고 할 수 없구나. 그리고 우리 교회와 같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설마 그 많은 교회가 다 주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거짓 교회란 말인가?’ 저는 놀랍기도 하고 의아해서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법을 찾고 구하다

그래서 형제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형제님,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가 이런 상태입니다. 목사들도 그저 잘 먹고 노는 이야기를 하거나 헌금에 대해서만 많이 강요를 합니다. 그럼 그런 교회는 다 주의 뜻에 합당치 못한 것인가요?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요? 아직 이해가 좀 안 되는데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형제님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참교회가 맞는지를 구별하려면 두 가지를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사람들의 생명이 계속 자라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죠. 따라서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 성령의 깨우침과 감동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되고, 영적으로 충분히 공급을 받게 되며 생명도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점점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교회라면 인원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세 명밖에 없는 곳일지라도 성령이 함께하시면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배 시간에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이 없고 항상 메말라 있어 신도들이 영적 양식을 먹지 못하고 생명이 자라지 못하며, 믿음이 계속 식어 간다면 형식적인 예배 의식을 행할지라도 교회가 아닙니다. 게다가 대놓고 세상의 시류를 좇아 가는데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율법시대 말기의 성전과 똑같이 성령의 역사가 없는 거짓 교회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교회’는 아무리 사람이 많을지라도 그냥 모임 장소일 뿐, 교회라 칭할 수 없습니다. ”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근거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우리의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지 봐야 한다.’, 맞는 말씀이네요.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이 있을 것이니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갈수록 좋아지겠죠. 근데,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니 예배도 별 의미가 없겠고, 진정한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모두가 다운되고 소심해지겠네요. 그럼, 교회를 떠나는 일도 많아질 것이고 교회는 구약 말기의 성전처럼 불법이 성해지고 도적의 소굴이 될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우리 교회를 보면 그래요. 설교를 한다지만 반복된 구호나 외치고, 툭하면 세상처럼 먹고 마시고 놀기 바쁘고,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접근할 뿐, 새로운 깨우침이 없어요. 그래서 설교를 열심히 들어도 밋밋하기만 하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저도 예수님 믿은 지 오래 됐지만 생명은 별로 자라지 못했어요. 지금은 새 신자 때보다 더 못해진 느낌이에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믿음과 사랑과 열의가 다 식어 버렸어요. 이게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이대로라면 우리 교회도 거짓 교회잖아요! 휴, 지금까지 바보처럼 믿었네요. 계속 이런 신앙을 하다간 주님을 잃어 버려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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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무지개를 볼 때

이른 아침, 저는 해변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습니다. 방금 비가 한바탕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해변의 오솔길에는 행인들이 드물어 아주 고요해 보였습니다. 저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때 바닷바람이 살며시 불어왔고 파도는 해안을 살며시 때렸는데, 마치 소곤소곤 대는 것 같았습니다. 갈매기 떼들이 바다 위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는 아침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이때 멀리 보이는 해수면 위로 무지개가 저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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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2015년 8월 12일, 톈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 제 5길 서해 국제 물류 컨테이너 부두에 있는 위험물 보관 창고에서 강렬한 대폭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피해 지역이 광범위했으며 사상자도 막대했습니다. 저는 이번 재난 가운데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아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생생하게 나타났음을 체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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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간증ㅡ「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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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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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교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제를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제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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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후,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남편은 밖에서 장사를 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결혼하고 2년 동안, 남편은 편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나와 상의했다. 나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남편이 자상하게 나와 상의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릴 적 소원이 이루어져서 이 집안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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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주면서 내 신분증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우물거리며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며칠 동안 그가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알고 어디를 다녀오냐고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법인데, 감히 날 속이려고! 안 되겠다.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지. 당신 나 몰래 무슨 일을 저질렀다간 두고 보라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동서의 집에 2만 위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동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동서 앞에서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척 호의를 베풀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나는 얼른 돈 문제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빌려주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요, 당신이랑 같이 동생한테 가서 물어보자고요.”라고 하자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여자인 주제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남자들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당신은 집안일이나 잘하면 돼.”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너무 괴롭고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내가 힘들게 집안을 위해 일하는데 남편이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안일이나 잘하면 된다니 그럼 난 고용된 가정부와 다를 게 뭔가?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남편이 똑같이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눈에 나는 가정주부로, 집안일만 하면 되고 바깥일은 신경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자기 집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 하는데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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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어린 시절, 깊은 모녀의 정

  따스한 3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한 시골집 정원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은은한 꽃내음이 부지런한 꿀벌과 오색찬란한 나비를 유혹해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던 신이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갖고 장난치고 있었습니다. “신이야, 엄마 머리카락 갖고 장난 그만 치렴. 네 손 더럽잖니.” 그러자 신이는 헤헤하고 웃으며 장난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다시 엄마 뒤로 와 머리카락을 갖고 장난치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야, 엄마 머리카락으로 장난 그만 치래도. 엄마 지금 털실로 네 스웨터를 뜨고 있잖니. 여기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나비랑 꿀벌 모양을 넣어줄 건데 자꾸 장난치면 겨울에 예쁜 스웨터 못 입게 된다!” 몇 번이나 타이른 끝에 신이는 장난을 멈췄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신이는 하품을 하며 졸린다고 칭얼댔습니다. 엄마는 손에 있던 스웨터를 내려놓고 신이를 재웠습니다. 서서히 신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꿈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때 신이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엄마를 좋아했으며 엄마도 신이를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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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장거리 연애가 날 불안하게 하다

   “두 분은 오랫동안 못 만나는데 남자친구한테 다른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요?” “두 분은 전화로만 연락하는데 감정이 오래갈 수 있나요?” “장거리 연애는 오래 못 가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제가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이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들입니다.

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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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한 농가의 뜰 안에서는 서연 일가족이 태어난 아기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10일 된 아기를 보고 있는 서연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서연은 기쁨과 동시에 외손자를 얻기 위해 겪어온 쓰라린 추억들을 떠올렸습니다….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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